절대 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渴望], 혹은 집착뿐인 욕망이었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원하는 것들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남아있는 것은 허무함, 외로움과
가슴 속부터 타오르는 분노와 광기[狂氣]뿐.
....그리고 난, 그를 만났다.
아스피린[aspirin] 외전
- 열망[悅望], 갈망[渴望], 그리고 광기[狂氣] : 홍해아 편 -
by. cliffe
" 저 아이가 후계자라지요? 세상에.. 어려보이는 데. "
"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구. 홍해아 저 녀석, 저래뵈도 수재소리를 듣는 데다가.. "
" 어쩐지....기업을 꾸려나갈 사람이니 이제부터라도 잘 보여두는게...... "
시끄러워, 탐욕스런 돼지들..이라는 생각과는 정반대로 다 들릴 정도로 수근거리는 그네들에게
이제는 습관이 되어 버린 듯 그럴 듯한 미소를 지어주고는 그 자리를 피했다.
항상 부드럽게 웃고 있는 얼굴, 사고 한 번 치지 않고 공부 잘 하는 모범생, 건실한 태도.
이제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 그리고 그 틀에 익숙해지는 자신의 두꺼운 가면 뒤에서 꿈틀거리는 검은 그림자에 구역질이 난다.
항상 그래왔어야만 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업경영을 꾸려나가야 할 그럴 듯한 후계자로써 17년 동안이나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슴 속 깊숙한 곳에 쌓여가는 무언가에 대한 갈망[渴望]에 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 홍해아.. 이런데서 뭐 하고 있니? "
" .....옥면. "
" 사람들이 찾고 있단다.. 네 아버지도. "
구역질 나... 라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 나오려는 것을 억누르며 눈 앞의 옥면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푹 패인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의 입가에는 언제나 늘 그렇 듯 재수없는 조소를 흘리고 있다.
그녀의 미소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잘 알고 있기에 난 다가오는 그녀를 말없이 내려다 보았다.
붉은 매니큐어를 발라 손과 함께 셔츠 단추를 풀어내리는 그녀의 손톱이 마치 정지된 필름처럼 천천히 움직인다.
구역질 나, 추잡해. 추잡해. 추잡해.
"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니? "
" ...........빨리 볼일이나 끝내고 나가시지 그래요, 옥면. "
" 여전히 어머니라고는 불러주지 않는구나. "
내 어머니는 한 분 뿐이었다.
언제나 상냥하던 어머니, 아직도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손길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 날 희롱하는 이 더러운 것이 아닌.
오로지 날 사랑으로만 대하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나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 버린 지 오래.
내 앞의 이 더러운 여자로 인해, 어머니는 비명횡사 하셨고, 어머니 자리는 이 여자가 꿰찬 채, 난 혼자 남겨졌다.
" ..훗, 역시 젊은 게 좋다니깐. "
" ....읏.. "
늘 정해진 순서처럼, 옥면이 입을 맞춰왔고 난 눈을 감았다.
기다려, 가면을 쓰고 기다려. 언젠가 내가 아버지의 뒤를 이었을 때..이 모든 추잡한 짓들도 막을 내릴 것이다.
이 여자를 어머니처럼 비참하게 죽이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했다......선[善]의 가면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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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악!!!!!!! "
우윽- 발 끝으로 손뼈가 으스러지는 게 느껴졌다.
피범벅이 되어있는, 사람이라는 이름의 고깃덩어리에 다시 한 번 발길질을 가하니, 듣기싫은 괴성이 울려나온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머리를 짓누르니, 튀어오르는 핏줄기와 함께 비릿한 피냄새가 온 몸을 감돌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날 즐기게 해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몸을, 마음을 지탱할 수가 없단 말이다. 조금만 더, 피에 젖게 만들어 줘!!
" 그만해라. "
" ........독각시. "
" 그 녀석, 이미 기절했다구. 그렇게 팼다간 죽어 버릴 지도 몰라. "
" ... "
어느샌가 이성을 잃고 기절한 녀석에게 발길질을 가한 모양인지 독각시가 고갯질을 하며 날 붙들었다.
아스팔트 바닥에 고여있는 핏웅덩이들과 함께 아직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는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다 난 고개를 들었다.
일진에 들어 미친 듯이 일을 벌이는 게, 이제는 취미라도 되어 버린 듯 손에 피를 묻혀왔고, 어느샌가 나는 이 일대를
주름잡고 있었다. 낮에는 철저한 모범생의 얼굴을,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나의 유일한 친우[親友]독각시 뿐이었다.
" 나 먼저 간다, 뒷처리 좀 부탁해. "
" 맘대로 하셔, 언제나 귀찮은 건 내 차지지.. "
작게 투덜거리는 독각시를 뒤로 하고 비틀거리며 골목을 빠져 나왔다.
밤 하늘에 섞여나오는 아까의 열기가 깊숙한 곳에 억눌려 왔던 검은 그림자가 울렁이며 용솟음친다.
가면 속에 억눌려 왔던 응어리들은 광기[狂氣]라는 이름으로, 내 온 몸을 휘감고 있었다.
" 하아.....오늘은 무슨 핑계를 대 볼까. "
손에 묻은 피자국들을 손수건으로 닦아 내리며 흐느적거리는 몸을 담벼락에 기대었다.
집에 가봤자,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와, 구역질 나는 새어머니, 그리고 끝없이 재잘거리는, 귀엽지만 별 도움이 안 되는 배다른 여동생 뿐.
몸을 타고 올라오는 혈향[血香]에 조금 식었던 몸이 다시 뜨거워 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골목 끝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순간, 달빛이 비추는 듯한 착각.
열악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걸어나오는 한 인영[人影]의 머리카락은 아름다운 금빛으로 반짝였다.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아서였을까, 그는 내 쪽으로 의아하단 듯이 고개를 돌렸다.
마주치는 동시에 느껴지는 보랏빛 시선.
아름다움과 동시에 그의 눈빛 속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무엇이었을까. 가슴 속 깊숙한 광기[狂氣]를 더욱 불태우는 듯한 시선, 그리고 깊숙한 곳에서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동질감이라는 느낌.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나와 너무나도 닮고, 너무나도 다른 인간형.
나와 같은 어둠의 냄새가 느껴지면서도 그의 보랏빛 눈동자는 어둠의 길을 택한 나와는 다른,
강인한 빛을 띄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 빛마냥.
이미 더러워진 나로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무.언.가에 마음이 급격히 흔들렸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 저.것을 미치도록 갈망[渴望]한다.
절대로 손에 넣을 수 없는 저것을, 난 미치도록 원한다. 아니, 보랏빛 눈동자에 난 이미 미쳐 버렸다.
" 이봐.. "
" .........뭐지? "
" 이름이.. "
" ............강류.라고 하는데. "
몸 속의 광기[狂氣]가 미치도록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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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류!! "
" 홍해아, 앗...머리카락 건드리지 마.
사내자식이 왜 그렇게 스킨쉽을 좋아하는 거냐. "
" 예쁘잖아, 이 머리카락. "
미치도록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억누르고 웃음을 지어보였다.
반년동안이나 쫓아다니고서야 겨우 얻어낸 이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키스하고 싶은 충동을 참아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금빛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는 일 뿐.
오늘도, 웃는, 친구라는 이름의 가면을 쓰고 널 대한다.
불타오르는 열망[悅望]과 광기[狂氣]를 억누르며. 언젠가 손아귀에 네가 들어올 그 날을 위해 난 웃음으로서 널 대한다.
난, 너에 대한 광기[狂氣]로 불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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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번 쯤 써보고 싶었던 홍군 외전편-_-;맘에 드셨는지요.
홍군의 성장배경과 강류와의 첫 만남 수록편입니다아.
배경음악은 김윤아의 City of Soul
http://saiyuki.co.kr/zbxe/novel/999024/c19/trac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