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스트 감상입니더..-ㅁ-a
  • 이번 베스트 감상은 리카의 단독 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리카의 글이 많이 뽑혔습죠...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결과...

    리카의 글을 이곳에 한꺼번에 올려놓기로 했습니다.

    리카가 글을 많이 쓰고 많이 뽑혔다 하더라도 포인트는 한번만 받으니 괜히 기대하지 마십쇼!!!-ㅈ-

    그럼...리카 축하한다...

    감상 뽑혔다..-ㅁ-^[리카야 포인트 받고 싶으면 공지글읽고 코멘트 남겨라..-_-]




    [Real Master]_writen by. 금빛추종아피    리카



    우니동에 와서 수많은 사람을 사귀고 팬픽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을 꼽으라면

    -물론 하나하나의 인연 모두는 저에게 소중하지만요-

    다섯 손가락 안에 자신있게 꼽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리얼마스터 작가, 아피님이십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이렇게 감상을 쓰는건 그런 개인적인 친분의 이유는 절대 아닙니다.

    무엇보다 지금 저는 언니동생사이가 아니라,

    작가와 독자라는 관계 하에 글을 쓰고 있는것이니까요.

    -지금 존칭어를 쓰고 있는 이유도 그런것이지요.-



    리얼마스터. 아마도 아피님이 유기전래동화(일명 유전동)을

    연재하다가 그것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어 추천을 받아

    아피님의 개인소설방이 생기고 난 후에 연재해 온 첫 연재작

    '빛의 그림자가 되기 싫어' 가 하필이면 완결이 나지 못한 채

    9편까지만 나와있었을 때, 작가님이 새로 들고 오신것이 바로

    지금 감상을 쓰고 있는 '리얼마스터'지요.



    뭐랄까요, 작가님의 필체가 많이 성숙해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피님이 이제까지 해 오셨던 패러디와 달리, 창작은

    팬픽의 모든 세계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구상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아피님께서는 그때까지만 해도 패러디 위주로 써 오셨던지라

    -'빛의 그림자가 되기 싫어'를 제외한 상태에서-

    무언가 미흡한 점이 한두가지는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았지만

    그런 저의 생각을 깨버리고, 작가님께서는 유감없이 자신만의 색이 배어있는

    유려한 필체를 리얼마스터에서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예. 제가 리얼마스터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나왔네요.

    "자신만의 색." 이 소설 속에 드러난 다는 것. 한마디로 작가의 개성이지요.

    한번이라도 써 본 분들은 모두 아시겠지만, 쉬울 듯 하면서도

    작가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이 바로 개성, 즉 '색'입니다.

    -물론 모든 분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피님은 그런 '색'이 있습니다.

    제 딸리는 언변으로 무어라고 확실하게 규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리얼마스터를 한번이라도 보신 분이라면 확실히 알아챌 수 있는

    그런 개성이 소설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살아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리얼마스터의 설정은 그렇게 특이한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니, 오히려 수많은 팬픽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흔한 패턴일 수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뒤집어 말하면 가장 인기있는 패턴이라고도 할수 있겠지요-

    하지만 리얼마스터와 비슷한 주제의 기타 소설들을 아무리 섞어놓아도,

    사람들은 아피님의 소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누구나가 아피님의 소설을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은 뒤집어서 아피님에게는

    다른 사람과 다른 무언가가. 즉 '색(개성)'이 있다는 겁니다.

    만약 아피님에게 작가로서의 '개성'이 없었다면, 그것은 아마 불가능했겠지요.



    물론 그런 리얼마스터에도 아쉬움이 남지 않는 건 아닙니다.

    약간은 자세하게 묘사해 주었으면.. 약간만 더 파고들었었으면..

    같은, 아직은 약간 부족한 부분들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요.



    하지만, 그렇기에 저는 오늘도 아피님의 소설을 봅니다.

    왜냐구요? 아직 아피님에게는 이뤄야 할 목표가 있으니까요.

    자신의 단점을 극복해서, 좀 더 나은 소설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까요.

    아직, 아피님의 소설은 완전하고 완성된 소설이 아니니까요.



    사실, 완벽하다는 것은 무엇 하나 빠짐없이 고루 갖추고 있단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자신에게 있어 달성해야 할 목표가 없다는 것을 말하지요.

    '목표가 없다'. 이것은 좋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예, 누구나에게 있어 뚜렷한 목표가 없는 것은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발전이 없는 것은 곧 퇴폐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아피님의 소설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완벽하지 않기에

    아피님에게는 나아갈 길이 있고, 꿈이 있고, 목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아피님의 소설에서 유감없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되고 있습니다.' 는 과거형이 아니라 진행형이지요-. 오늘로써 끝이 아닙니다.

    오늘에서 내일로, 내일에서 또 그 다음날로.. 계속 이어져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제보다 나아진 오늘, 오늘보다 나아질 내일의 리얼마스터를 기대하며

    전 오늘도 여전히 아피님의 개인 소설방에 조심스레 들어가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__)(--)





    [最遊記] _ writen by. KAZUYA MINEKURA    리카





    오랜만에 책방에 가서 최유기를 빼들었습니다.

    아..얼마 되지 않은시간이었지만, 상당히 오랜만이더군요.

    아마 제가 최유기를 가장 처음 접한게 작년 10월 중순이었을테니까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봐도, 최유기란 녀석과 저는

    참...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네요-.



    예..사실 저는 상당히 만화를 좋아합니다.

    만화만큼이나 그 특별히 독립된 세계에서 배어있는

    작가의 가치관과 생각이 잘 드러나는 매체가 또 있을까요-.

    그렇게 수많은 장르를 불면하고 보던 가운데 제 눈에 띈게 바로 최유기입니다.



    최유기가 다른 만화책과 달랐던 점은... '찾은' 게 아니라, '띄었'던 것 입니다.

    그 당시 인기있었던 모 만화책을 빌리려다가 한권도 없어

    고개를 돌리다가 무심코 본 책이 바로 최유기였으니까요.

    아마도 이 때 안 만났다면 전 평생 최유기라는 것을,

    그리고 이 우니동의 여러분을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참 우연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꽃혀있는 책이라면 무심코 지나갔을 저였기에.

    띄인 것도 그냥 띄인게 아니라, 그 때 언니가 책장에서

    누군가가 반납한것을 '끼워넣을 때' 봤었거든요.



    '최유기(最遊記)' 라.. 첫 느낌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라고나 할까요?

    아아, 서유기의 패러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거기에 있던 다섯 권을 빼들고 집에 왔습니다.



    그 때가 봉신연의에 나름대로 빠져있었던 시기였기에,

    패러디작품이라는 것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었으니까요.

    [실망한 경우도 적잖아 있지만 말입니다. 최유기 다섯 권, 어찌보면 참 과감했어요..^^;]

    그렇게 최유기 다섯 권을 한장 한장 넘기며 결국은 다섯권 모두를 보고 나서도,

    전 아무런 다른 점 없이 평소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하죠? 평소에는 책에 미쳐서 아무런 공부도 놀이도 안하고

    몰입했을 제가 만화책을 보고도 그렇게 멀쩡했다는게 저 자신도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 최유기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무언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고자 하는것도, 바로 그 '무언가' 입니다.



    사실, 저는 상당히 변덕이 심합니다.

    그래서 불탄듯이 화르륵-하다가 또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고..

    또 무언가에 화르륵-하다가 또 시간이 지나면 역시나 시들해지고..

    그래서 어느 하나에 미치면 전 거기에만 몰입하다가

    곧 하루, 일주일, 한달...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 마련이었죠.



    그런데 최유기는 그게 아니더군요.

    최유기는 불타는 그런 매력이 아니라, 오히려 은은한 매력입니다.

    화려한 중국의 황녀가 아닌, 한국의 저고리를 차려입은

    여염집의 규수같다는 느낌이랄까요? 정갈하고, 은은합니다.

    제가 최유기에서 가장 많이 하는 비유가 '물' 같다는 거지요.



    '물'은 한시도 가만있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어디론가 흘러가고, 흘러갑니다.

    고여있으면 증발하고, 트여있으면 흘러갑니다. 무언가가 있으면 스며들지요.

    가만히 정지한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합니다.

    그렇기에 같은 강물이라도, 어제의 강물과 오늘의 강물은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어제 흐르던 물도 물이고, 오늘 흐르고 있는 물도 물이지만,

    오늘 흐르고 있는 물은 어제 흐르는 물과 다르다는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최유기 그 '무언가' 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보았던 최유기도 최유기이고, 오늘 본 최유기도 최유기입니다.

    하지만 어제 보았던 것과 오늘 본 것이 주는 느낌은 서로 다릅니다.

    느낌만 다른가요? 아니요. 감상도 교훈도, 심지어는 대사의 뜻마저도 달라보입니다.



    그렇게 자꾸만, 자꾸만 반복해서 몇 번인지도 모르게 아무생각 없이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아' 라는 탄성과 함께, 최유기의 숨어있는 오의(悟義)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최유기에 물들어갑니다.

    그런 '은은함'의 매력이 최유기 곳곳에 스며있지요.



    제가 이제까지 본 다른 만화들이 검은 잉크라고 한다면, 최유기는 물감입니다.

    검은 잉크는 물들여지는 매개체를 검게, 점점 더 검어지게 만듭니다.

    결단코 그 고유의 색이 바뀌는 일은 없습니다. 더 진해지면 진해졌지, 연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물감은 그런 잉크와는 다릅니다. 도대체, 뭐가 다를까요.

    딱 한가지. 물감은 매개체의 색에 따라, 질감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지는 겁니다.

    연해지기도 하고, 진해지기도 합니다. 거칠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같은 장면이라도 최유기의 독자들은 여러 방면에서,

    서로 다양한 '색'을 생각하며 읽을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교훈과 느낌을 받으면서 최유기를 읽을 수 있다는 겁니다.

    작가가 그린것은 하나의 장면이지만 독자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해낼 수 있다..라는 것은.

    그 장면이 뜻하는 바가 한가직 아니라, 수 십개 아니, 수 백개라는 것입니다.



    물론 최유기에는 전체적인 큰 틀은 짜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틀에 의해 어떠한 장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들의

    옳고 그름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거죠.

    즉 이것은 뒤집어 말해서 '모든 사람이 받은 느낌과 교훈에 옳고 그름은 없다'라는 것이 됩니다.



    예. 작가는 다만 최유기를 '그려낼' 뿐입니다.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사건의 시작과 계기.

    즉 '발판' 을 마련해 줄 뿐, 나머지 몫은 독자의 몫입니다.

    최유기를 외면하든, 사랑하든, 교훈을 받든, 받지 못하든, 즐거워하든, 싫어하든간에.

    그것은 최유기를 읽는 독자의 몫이라는 것이지요.



    살며시, 숨겨진 기억의 조각들을 조심스레 꺼내어봅니다.

    얼마만이던가요, 이런 책을 접한 것이-.

    모든 것을 독자에게 맡기고, 작가는 아무런 도움말도 해석도 하지 않는-

    그럼에도 독자와 작가의 진정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이런 책을 본 것이.









    [Mononoke Hime] _direction. Hayao Miyazaki   리카





    그 동안 쓸까, 말까 하면서 상당히 고민했었던 작품중의 하나가 '모노노케히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령공주로 많은 분들에게 알려져 있죠? ^^a]

    모노노케 히메. 올 상반기에 개봉되었던 극장 애니메이션 중 국산 애니로 사람들의 기대를 불러일으켰던

    '원더풀데이즈', '오세암'과 함께 극장가에서 개봉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이라고도 일컫어지는 미야자키 하야오님의 명성을 제쳐두고서라도

    애니메이션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면서 볼 수 있는 대단한 애니메이션이기에,

    과연 그 감상을 제 글로 표현하다가 되려 망치는게 아닌지 상당히 걱정했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을 진정 좋아하는 분이라면,

    아니 한번이라도 본 분이라면 잊을 수 없는 일본 애니계의 거장이지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의 토토로...

    작품 하나하나가 애니메이션계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주옥같은 걸작들이지요.



    수많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우리 주변에 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미야자키 하야오님의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물론 아름다운 그림도 한 몫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작품의 모든 부분에 흐르는 주제의식과 그것을 받혀주는

    작품 일부분이 아닌 '전체'의 완성도가 큰 몫을 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의미없는 폭력과 자극적이기만 한 선정성이 아닌 대자연의 포근함과 그것의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인간의 가능성을 내세우고 있는 그의 작품을 대할 때면,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들판에 불어오는 산들바람, 맑은 소리를 내며 흘러내려가는 깨끗한 물,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

    마치 한폭의 풍경화같은 아름다운 풍경이 '모노노케히메'에서는 살아숨쉬고 있습니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보여지는 아름다운 화면 속에 모든 기법을 동원하여 권력,

    그리고 폭력에 대항하는 '이상향'사회의 건설이라는 약간은 이상주의적 주제와 함께

    거대한 자연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지요.



    사실 인간에 대한 경고메시지는 미야자키 하야오님의 전 작품에서도 여러 번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노노케 히메'에서는, 그가 이것이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 만큼,

    종전과는 해결 방법이 약간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 차이일까요?

    사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잔혹한 유혈의 현장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좀 더 숭고하고 희생적이며, 풍자와 회화를 거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하지만, 주인공 아시타카의 저주받은 팔이 만들어내는 유혈이 낭자한 잔혹한 현장을

    감독은 한치의 필터없이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노노케 히메의 다른 곳에서도 힘들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이런 장면들은,

    미야자키감독님에 다른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평화적인' 해결방법과는

    반대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인간들 -확대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은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칼을 휘두르고 창으로 찌르고 총과 철포를 쏘지요.

    그리고 그와 맞서는 자연도 이를 드러내고 피를 자아냅니다.



    아마도 감독님은 이 작품에서 좀 더 강렬한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전달하고 싶으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결코 한쪽에서 치우친 메시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때는 인간의 면에서, 한 때는 자연이 편에 서서. 때로는 둘의 사이에 서서...

    미야자키 하야오님은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을 무조건 죽이지도, 그렇다고 살리지도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연도 그것을 조건없이 받아들이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대항하지도 않지요.



    .......자연과 대항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대항하는 자연을 철저히 파괴하며 이용할 것인가.

    이것은 아마도 인간이 이 땅에 살아오면서부터 가지고 온

    가장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그리고 당연한 갈등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갈등을 담아내는 제 3자적 인물이 바로 주인공 '아시타카' 입니다.

    그는 이 원령공주 속에서 제 3의 인물인 동시에

    자연과 인간의 사이에서 역할을 찾기위해 몰두는 캐릭터입니다.

    이는 곧 뒤집어 말하면, 그는 자연 속에도 강하게 속해있는 동시에 인간에게 철저하게 속해있지요.

    -물론 이 이야기의 주 캐릭터인 산과는 다른 의미에서-



    아시타카는 고뇌합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주어진 작지만 무한한 힘으로 노력합니다.

    사실, 그에게 내려진 재앙신의 저주는 가혹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단지 그가 하고자 했던 '마을을 지키는' 소박한 믿음에 대한 저주라기에는 너무나 큰 시련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시련은 단지 죽음에 대한 공포나 불안감이 아닙니다.



    그 상처가 '시련'이라고 불리워지는데에는, 그 상처로 인해 '평범한' 한 인간 아시타카가

    인간과 자연의 싸움 한 가운데로 불러졌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공존하지 못하고

    처절하게 두편으로 갈라져 싸우는 인간과 자연의 모습...이지요,.



    그리고 아시타카와 대칭을 이루며 작품의 큰 축을 지지하는 '산'.

    '아시타카'는 자신과 너무도 반대인 들개의 무리 중의

    '산'이라 불리우는 히로인의 존재를 부각시킨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아시타카가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철저히 속해있는 캐릭터라면

    산은 인간이면서 또한 인간임을 부정합니다.

    자연을 파괴하는 자에게 가면을 써서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고 '신의 대리인'으로써 저항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손에 들린 무기가 바로 인간이 창조해낸 무기-

    바로 '검' 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보면, 약간은 아이러니컬한 일이지요.



    약간은 서툴지만, 이것을 좀 더 확대해석하면 인간과 자연 사이에 놓인 채 방황하는

    산의 혼란스러운 입장을 대변해주는 동시에 그녀가 '지극히' 인간적인 캐릭터

    아시타카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결정적인 매개체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산과 정 반대의 인물이 작품에 존재하니, 그녀가 바로 '에보시 고젠' 입니다.

    철포와 화승총과 함께 숲의 신을 몰아내고 인간이 살기 좋은 이상향을 구축하고자 하는 그녀는

    따지고 보면 일반적인 대립구조의 '주인공' 에게 대항하는 '적'인 '악'의 이미지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녀는 너그러우며 활달하고, 한편으로는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지도자로써의 소양을 모두 갖추고 있는 여성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남녀를 불문하고 '아씨'라고 불리는 것만 보아도 그녀가 얼마나 존경을 받는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시타카와 함께 우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커다란 비극을 목격합니다.

    바로 인간이 만들어낸 총에 의해 사슴신의 목이 잘리는 순간을 보는 것이지요.

    인간이 저지른 우매한 행동의 결과는 순식간의 주변에 있는 모든 생명을 거두어가는

    '죽음의 신'으로써 구체화됩니다. 빠른 속도로 숲을 파괴해나가는 검은 형체 위에서

    숲의 생명인 고다마가 눈처럼 내립니다.

    그리고 그것은 동물신으로 대변되는 신의 숲의 생명이 마감됨을 알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처참하게 죽어나가는 현장.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또다른 모습을 발견합니다.

    바로 아시타카와 함께 시사신에게 두 손을 높이 쳐들어 목을 돌려주는 산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지요.

    인간이며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산, 인간과 자연에 속해있는 아시타카와 함께

    '모노노케히메'를 보던 모든 관객들이 '인간'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장면은, 그때까지 무력하던 아시타카가 처음으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낸 순간이기도 합니다.



    결자해지. 숲을 죽인것도 인간이지만, 숲을 살리는 것도 인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에게 공격당하고 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자연이  인간에게 돌려주는것은

    복수가 아닙니다. 오히려 꽃으로 만발한 숲이자 대자연이지요.

    생명 그 본연의 존재이자 삶과 죽음을 동시에 가진 존재.

    미야자키 감독이 우리에게 펼쳐놓은 푸른 숲과 넓은 들판과 자연이라 불리우는

    그 거대한 무대 위에서 우리는 이런것들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것입니다.



    앞에도 말했듯이, 초기에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님의 은퇴작이라 거론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모든 분들이 아시다시피 그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작품을 안고

    -아마 2002년인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다시 한국 극장가를 찾았지요.

    우리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되찾은 자연의 모습을 모노노케 히메에서 보았습니다.

    물론 다시 꽃을 만개하게 하고 숲을 만드는 것은 '사시가미' 입니다만,

    적어도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모노노케 히메 안에는 깔려있습니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보면, '판도라의 상자' 라는 말이 있지요.

    세상을 어지럽히는 모든 악이 빠져나갔어도, 희망은 여전히 그 상자 안에 남아있습니다.

    '모노노케 히메'. 뭐라 한마디로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작품입니다만,

    희망이라는 단어가 '판도라의 상자'의 안에 남아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깨우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__)(--)


댓글 3

  • [레벨:5]플로랜스

    2003.07.27 17:17

    크윽~>_<♡ 역시 리카님☆
    꺄악~존경의 대상>_<☆[퍽]
  • [레벨:24]id: KYO™

    2003.07.29 15:22

    리카의 글은 무섭도다....=_=
    하지만...진짜 잘 쓰는 것 같아서 부러운....
  • Angelica

    2003.07.30 13:35

    남겼다! 포인트 줘! [뻐억]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레벨:8]미서년살앙 800 2003-07-27
569 [레벨:4]타이 801 2003-06-15
568 [레벨:3]츠바사 802 2004-02-13
567 [레벨:24]id: KYO™ 806 2003-06-01
566 린유z 807 2004-02-13
565 [레벨:3]세비니 807 2003-05-12
564 [레벨:4]새드플루 808 2003-11-14
563 삼장☆최유기 809 2003-07-31
562 우니 811 2003-08-28
561 [레벨:3]아피[잠수해제] 811 2003-05-05
560 [레벨:3]세비니 812 2003-04-26
559 [레벨:4]타이 813 2003-06-09
558 [레벨:4]새드플루 814 2003-11-14
557 [레벨:1]£「체리삼장º 818 2003-05-02
556 ㄷИㄴ1얼♡ 818 2003-12-28
555 [레벨:24]id: KYO™ 819 2003-06-27
554 [레벨:3]세비니 819 2003-04-26
553 [레벨:3]세비니 819 2003-09-09
552  DJ센츠 819 2004-03-31
551 [레벨:3]아피 822 2003-08-22

SITE LOG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