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Sad Valentine‥ for. 유에
  • 조회 수: 807, 2008-02-10 14:49:08(2004-02-13)




  • 발렌타인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냈던 마지막 메세지,

    당신의 발렌타인으로부터.











    "헤헷, 이제 내일이면 발렌타인 데이네-"

    생기발랄한 소년의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렸다. 꽤나 배치가 잘 된듯한 방이였다. 하지만 역시나 소년 혼자 사는 곳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보이기라도 하듯이, 잡지를 보며 싱글벙글하는 소년의 주위에는 옷가지하며 먹다 남은 음식들이 지저분하게 흩뿌려져 있었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것은 역시나 모두를 들뜨게 하고 있는 발렌타인데이 특집.

    "흐응- 역시 직접 만들어주는게 낫겠지?"

    즐거운 상상을 하는듯 소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일어나서 머리도 감지 않은 듯한 몰골과 아직도 잠옷차림인 그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

    "기뻐해야 할텐데-"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당황한듯 약간 상기된 볼이 열려진 문틈 사이로 보여졌다. 역시나 발 디딜틈도 없는 아주 지저분한, 거실이라고 보기엔 좀 작은 곳. 그리고 쌓여진 설거지감. 소년은 그런것은 신경도 안쓰는 듯이 그저 싱글벙글하며 나갈 채비를 하는 중이였다.

    "에에- 일단 재료를 사오고,, 정리부터 해야지!"

    급하게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은뒤, 머리를 말리지도 않고 옷을 갈아입은 그는 재빨리 현관을 나섰다. 요즘은 좀처럼 재미있어 보이지도 않았던 덕지덕지 붙어있는 광고들도, 또 자신을 기다리게 하는 엘리베이터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 기분이 이런 것일까, 소년은 혼자 신이 나서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땡-

    도착음이 울리고,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소년은 곧바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오는 누군가에 의해 저지되었다. 자신의 조그마한 몸집과는 달리 큰 키. 그리고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보이는 얇지만 강한 팔. 소년은 조심스레 고개를 올려 부딪힌 사람을 확인했다.

    "아아, 이제 왔어?"

    "어디 가냐?"

    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하자 그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답했다. 소년의 오렌지빛 머리카락이 흠칫 놀라면서 흔들렸다. 블루블랙의 머리를 가진 청년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소년의 고개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어디 아파?"

    "아, 아니. 그냥 뭐 좀 살게 있어서. 그럼 나 갈게, 엘리베이터 문 닫히겠다-"

    속사포처럼 쏟아진 말들을 뒤로 하고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소년은 청년이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문을 닫아버렸다. 1층 버튼을 누르고는, 조용히 등에 닿아오는 차가운 엘리베이터의 감촉을 느끼며 소년은 머리를 식혔다.

    "우우.. 당황해 버렸잖아. 눈치채면 어떡하지?"

    그런 소년의 당황과 어쩔줄 몰라하는 듯한 표정이 무색하듯이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했다는걸 알려주었다. 문이 열리자 뭔가를 생각하고 있던 소년의 눈가가 비쳐들어오는 햇빛에 의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투덜댈 새도 없이 소년은 거리로 나섰다.


    "헤에- 엄청 많네..."

    역시 거리는 발렌타인 열풍으로 붐볐다. 이리저리에서 초콜릿을 팔고,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도 다 초콜릿을 한개씩 품에 안고 있었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한 대형 판매점으로 들어갔다.

    "저기요-"

    "네, 손님."

    소년은 지나가는 한 판매원을 불러세웠다. 그리고 초콜릿 만드는 재료가 있는 곳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판매원은 이런 경우가 많았던지 쉽게 초콜릿 판매대를 찾더니 설명까지 해주었다. 곧 문으로 한손 가득히 재료를 안은 소년이 나왔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헤헤, 이제 청소하고 만드는 일만 남았다-"

    소년은 기분좋게 문을 열어제꼈다. 문을 잠그는 것도 까먹을 정도로 들떠있었나 하는 생각에. 하지만 곧 이어 펼쳐진 광경은 소년의 생각을 곧바로 중단시켜버렸다.

    "어? 왔냐?"

    자신을 바라보는 청흑색 눈동자.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추스르며 소년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왔어?"

    "당연히 문으로 들어왔지. 얼마나 급하게 들어갔으면 문도 안잠가놓냐?"

    "아하하..."

    약간 멍한 웃음을 지으며 소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 반짝반짝 빛나는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아주 깨끗한, 정말 먼지 하나도 없을것만 같은 자신의 집.

    "다... 치운거야?"

    "어. 좀 치워놓고 살아라."

    살짝 미소지으며 말하는 그의 얼굴이 소년의 눈에 클로즈업 되어 비춰졌다. 그리고, 확 달아오르는 얼굴. 그는 약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소년의 손에 들린것을 보고는 물었다.

    "어? 그거 뭐냐?"

    "아...엑!! 아무것도!!!!"

    엄청 당황한듯한 목소리. 그리고 재빨리 등뒤에 숨겨진 봉지. 그 안에는 그에게 만들어줄 초콜렛 재료가 다 들어있는데...

    "...그러냐?"

    그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소년은 겨우 진정한듯 약간 의아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 안에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살짝 아쉬움도 첨가하며.

    "가게?"

    "어. 가면 안돼냐?"

    "가!!! 누, 누가 가지 말랬어!!!"

    그에게는 항상 본심을 들켜버린다. 그래서 그를 보면 당황하게 되고, 또 심장이 떨려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단순히 자신이 감정을 잘 드러내는 타입이라서 그런가. 자신의 등 뒤로 나가며 들리는 목소리에 소년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럼 나 간다. 무슨 일 있으면 불러."

    "...후우"

    그리고 탁 하고 닫히는 문. 소년은 한참동안 그렇게 서있다가 시야에 들어오는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에엑-?! 벌써 시간이!!!"

    허겁지겁 서둘러서 봉지를 풀고는, 식탁에 재료를 쫘르륵 나열한 소년은 소매를 걷어붙히며 씨익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힘차게 들리는 기합소리.

    "아자-!! 그럼 만들어볼까!"



    .........라고 했건만. 도통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야 만들것 아닌가. 겨우겨우 요리책의 도움을 받아 만들긴 했다. 모양새도 그럭저럭 이쁜 것 같고, 문제는... 맛,이다. 자신이 장장 5시간에 걸쳐서 만든 초콜릿에 혀가 살짝 닿았다. 그리고 동그랗게 떠지는 눈.

    "우와아- 맛있다!"

    그는 좋아하며 사온 포장지로 열심히 포장을 했다. 잡지에서 여겨봐 둔 포장법. 하지만 비교해보니 왠지 좀 어색하고 이상하게 보이는건 역시 처음이라서 그런거야- 라고 자신에게 변명을 하던 그는 뿌듯해하며 시계를 보았다.

    "어라... 벌써 12시가 넘었네."

    12시가 넘었다는 소리는 지금이 14일이란 뜻. 그렇다면 발렌타인이라는 뜻도 되고, 지금 줘도 발렌타인데이에 주는것이나 다름없다- 라는 것이 머리에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내일이면 또 바쁠테니까 시간이 없을지도 몰라- 하며 합리화 시키며, 소년은 바로 앞집의 문을 두드렸다.

    "문 열어봐..."

    몇번을 두들기고 열어달라고 해봐도, 안에서는 묵묵부답. 서서히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가운데, 손잡이를 돌려보니 찰칵하고 너무 쉽게 열리는 문. 약간의 불안함을 가진채로, 여전히 깔끔하고 깨끗한 그의 집에 발을 내딛었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그가 신고 다니던 운동화. 그리고 여전히 아무런 장식이 없는 단조로운 거실. 마지막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정적. 불안함은 순식간에 증폭되어 평정을 잃게 만들었다. 신발도 대충 벗어놓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코에 살짝 와닿는 이상한 냄새.

    "...자는 거야?"

    살짝 열린 방문 사이로 이상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불안감은 이미 그의 정신을 포박해 버렸고, 몸은 서서히 열어서는 안될지도 모를 그 문을 열기 위해 다가갔다. 살짝 떨리는 손. 그리고 손에 와닿는 차가운 금속. 소년은 살짝 문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믿고 싶지 않은 풍경. 흰 벽에, 피로 쓰여진 글자보다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그가 보였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년은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섬뜩한 느낌. 들리지 않는 숨소리. 그리고 이미 침대 위를 흠뻑 젖게 만든 피바다. 소년은 믿기 힘들다는듯, 아니 믿기 싫다는듯 고개를 마구 흔들며 외쳤다. 그의 소리에 깰 다른 주민들은 생각도 나지 않은채로.

    "일어나라구, 응? 나 초콜렛 만들어 왔는데 먹어봐야지- 맛있었는데!"

    그리고 타고 흘러내리는 차가운 액체. 눈물은 소년의 턱에 잠깐 머물렀다 이내 피바다 속으로 떨어져버렸다. 한참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자각된 흰 벽. 그리고 피로 쓰여진 글자. 주체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을 이미 피에 젖은 손으로 애써 털어내버리며 소년은 눈을 찌푸리며 그 글씨를 읽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푹-

    피와 피가 엉켰다. 서서히. 쓰러지는 몸. 좀 더 일찍 말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어째서-

    그리고 끊긴 의식, 그걸 마지막으로 발렌타인은 끝나버렸다.




댓글 2

  • [레벨:3]츠바사

    2004.02.13 16:27

    아......그런겝니까...아픈현실이군요..[주르륵]
  • [레벨:3]/Say[세이]

    2004.02.13 17:49

    .. 아아.. 역시나 린유상 글빨은 끝내줘어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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