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너에 대한 여섯가지 기억들.
  • 조회 수: 776, 2008-02-10 14:49:09(2004-02-14)
  • [첫번째 기억. 너는 빛났다.]



    “와~ 날씨 좋네요”


    오정과 팔계는 거리로 나와 산책 중이었다.
    그들의 귀여운 애완 강아지와 함께.


    “으아악~!!”

    [쿠당탕-]


    강아지가 앞장 서서 가고 있었는데
    그 바로 옆으로 자전거가 끼어들었다.

    하마터면 그자리에서 쥐포가 될 뻔한 강아지는 놀란 듯 성깔있게 짖고 있었다.


    그리고 자전거의 주인은 간발의 차로 강아지를 살리고
    한 몸 희생하여 길을 닦고 있었다.

    “아야야~~ (데굴데굴)”

    “... 안 쪽팔리나?”
    “저...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아! 쳇-”


    그가 고개를 들었다.

    햇살 때문이였을까, 팔계는 눈이 부셨다.



    “...”
    “... 팔계? 왜 말이 없어?”


    “네? 아.. 저, 어디가 아프신지...”

    “으악~ 껌 붙었다!”

    “...”
    “...”



    ... 오정이 입을 열었다.


    “바-보.”

    “(쿠궁)무, 뭐시라?!”
    “오정 말이 이번엔 심했어요-”

    “엄청 산만하구만. 꼬맹아, 뭘 바래?”
    “(씨익)”

    “...?”



    “돈.”




    [두번째 기억. 너는 가난했다.]



    “(와구와구)...”
    “... 진~짜 잘 먹는다-”


    질린 표정과 감탄한 표정을 섞어놓은 얼굴로 오정이 오공을 멍하니 바라봤다.

    팔계는 음식을 더 내오고 있었으며,
    오공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소년은 밥그릇 비우는 일에 열중이었다.

    돈을 받아내겠다는 명의로 팔계와 오정을 따라와서는
    식탁까지 씹어버릴 듯한 기세로 밥을 해치우는 것이다.


    “너 한 삼일 굶은 사람 같다.”
    “맞아.”

    “뭐?”


    오공이 잔의 물을 다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아~ 잘 먹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틀 반을 굶은 거지만, 어쨌든 삼일은 삼일이야.”



    “...”


    오정과 팔계는 말문이 막혔다.


    “뭐하는 앤데 그렇게 굶어? 나이도 어려보이는구만.”

    “내가 하는 일?”


    “(끄덕끄덕)”


    “음.... 어디보자~”


    오공이 손가락을 들었다.

    “─신문배달, 봉투 붙이기, 다람쥐 눈 붙이기,
    전단지 돌리기, 도로 공사, 빌딩 청소 정도? 방학 땐 열 개가 넘어.”


    “헉... 대단한 놈이였군.”
    “어째서 그렇게 많은 일을 하죠?”





    [세번째 기억. 너는 어른스러웠다.]



    오공이 고개를 푹 숙였다.


    “난... 죽어라고 벌지 않으면 안돼. 엄마가 아프거든.”

    “...”


    “헤헤, 밥 잘 먹었어!
    돈 받는 거 대신에 시간 나면 여기 와서 밥 먹는걸로 하지. 어때?”

    “언제든지-”



    오공을 배웅해준 뒤에, 팔계는 강아지를 안고 TV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멍하니 앉아있었을 뿐이다.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오공의 웃음, 오공의 모습, 오공의 말들...



    “(털썩-)씩씩한 놈일세, 안 그래?”

    “네? 아... 네...”




    [네번째 기억. 너는 감정을 속이는 데에 익숙치 못했다.]



    오정과 팔계의 집에 와서 저녁 끼니를 때우는 오공.

    팔계는 요리를 하고 있었고
    오정은 며칠 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오공의 맞은 편에 앉아 정 떨어진다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 넌 삼일을 굶든 밥을 먹었든 언제나 많이 먹는구나?”
    “땡큐!”


    “(대체 뭐가 땡큐라는 거야)...”

    “(쩝쩝)내일은 발렌타인 데이라서 초콜릿 배달 알바가 많아.
    그러니 많이 먹어둬야지~♡”



    “... 발렌타인 데이?”



    그러고보니 발렌타인 데이다.


    “그러고보니 그렇네요. 요 근래 너무 바빠서 챙길 생각을 못했는데.”


    “여자애들처럼 발렌타인 데이는 무슨-”

    “그러면서 은근히 바라고 있는 거 다 알아요.”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는 팔계의 말에 오정은 다시
    엄청난 위장을 가지고 있는 소년을 구경하기에 나섰다.


    ... 오공이 입에 밥을 잔뜩 문채로 큰 눈을 뜨고
    팔계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 아- 너 모르는구나? 팔계랑 나랑 그렇고 그런 사이야.”

    “그 쯤은 이미 눈치 까서 다 알고 있네요, 뭐~”


    핀잔을 주고는 다시 밥 먹기에 여념이 없는 오공.
    오정은 그 붉은 눈을 거만하게 뜨고 목석처럼 오공을 보고 있었다.


    ... 녀석이 설마...?




    ...



    “여기, 과일 먹고 있어요.
    팩스가 온 것 같으니까 잠시 자리 좀 비울게요?”



    팔계가 방으로 들어갔고,

    사뭇 진지한 분위기가 감도는 식탁.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응? 뭘?”

    “꼬맹이 너... 팔계 좋아하냐?”


    “...”

    대답을 잇지 못하고 애꿎은 과일 접시만 보고 있는 오공.


    “... 난 너랑 안 좋은 사이 되기 싫다...”

    “나도 알아. 내 마음 왜 이러는지 나도 몰라.

    하지만...
    오정하고 팔계 사이에 끼어들진 않을거야. 걱정 마.”

    “... 그래, 고맙다.”



    자기 자신이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오정.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팔계는 오공보다는 자신에게 더 소중한 존재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다섯번째 기억. 너는 날 택하지 못했다.]



    “오정, 여기요.”

    “어랏! 진짜 주는거야?”


    팔계가 내민 초콜릿을 받고 마치 뜻밖이라는 듯 기쁘게 웃어보이는 오정.


    “날이 날이니 만큼... 그래도 뭔가 있긴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고마워- 내가 다음에 한턱 쏘지!”

    “괜찮아요.”

    “근데 그건 뭐야?”

    “이건 오공 몫이예요.
    오늘 오공 어머님도 모시고 오라고 초대했어요. 밤엔 시간이 있다 그러길래.”

    “그렇군~ 그래서 오늘 저녁밥 준비가 많이 분주했구나? 말하지 그랬어, 도와주게-”


    [띵동-]


    현관 밖에서 나 왔어,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여느 때보다 약간 기운 빠져있는 오공이였다.

    [달칵-]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아... 이 분 들이시냐, 오공아?”

    “응, 엄마.”



    오공의 어머니는 오정의 손을 잡았다.

    “믿음직한 사내구나.... 키도 크고, 분명 얼굴도 잘생겼을테지...”


    따스한 웃음을 짓는 여자.
    뒤이어 팔계의 손도 잡았다.

    “손이 아주 부드럽구나... 마음도 부드러운 분이실게야, 그렇지?”


    “하하- 감사합니다. 안으로 드세요.”



    오공의 어머니는 앞이 안 보이는데다
    한 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절단해야 한다는데 그 수술 비용을 위해 오공이 그렇게 기를 쓰고 돈을 버는 것이었다.

    오정과 팔계가 도와서 일요일에 수술 예정이 잡혀 있었다.


    오늘은 토요일.
    저녁 대접하기에 좋은 날이고, 좋은 때이며 좋은 시이다.


    “음식이 맛있구나...”

    “많이 드세요, 그래야 수술이 수월하죠.”





    식사가 끝나고, 팔계가 선물을 내어 왔다.


    “오공, 이건 발렌타인 데이 선물이구요-”


    그리고 주방 구석쪽에서 바퀴가 달린 물체를 꺼내오는 팔계.
    오정도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어머님 수술하시고 나면 쓰시라고... 준비했어요.”

    “우와~! 엄마, 휠체어야-”



    모든 것이 잘 되고 있었다.
    내일 오공 어머니의 수술이 성공하는 일만이 남아있었다.



    ... 모자가 집에서 나갔고, 팔계는 식탁을 정리하고
    오정은 샤워를 하고 있었다.

    아까보다도 한참 늦은 밤이였다.


    [띵동-]

    “누구세요-”
    “나야...”


    팔계가 현관문을 열었다.
    달려왔는지 약간 상기된 얼굴의 오공이 서있었다.

    하지만 표정은 우울했다.


    [슥-]

    오공이 팔계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아까 팔계가 선물한 초콜릿.



    “나... 이거 못 받아.”

    “?”

    “... 미안... 나 팔계 좋아해.”

    “... 아, 저...”


    “알아. 안 좋아할 수 있어.
    그런데 이거 받으면 나 팔계 진짜로 좋아할 것 같단 말이야-”


    약간의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오공은 말을 이었다.

    “난 팔계를 좋아하지만 좋아하면 안된다는 것 쯤 알아.
    난 오정도 좋아하고, 난 누굴 좋아하면서 살 여유 같은 거 없는 사람이잖아...”

    “오공...”

    “자...”


    억지로 팔계의 품에 초콜릿을 안겨주고는 뒤돌아가는 오공.
    이제 밝아진 목소리였다.


    “휠체어는 받을게. 엄마 선물이니까!

    그리고 나 계속 밥 먹으러 와도 돼지?”


    “네-...”

    “내일 올거다~!”




    팔계는 말없이 서있다가
    손에 있는 초콜릿을 한번 보고는 현관문을 닫았다.


    욕실에서 오정이 물었다.

    “누구야?”
    “집 잘못 찾아온 사람이예요-”





    [마지막 기억. 너는 죽었다.]



    “수술... 잘 됐겠죠?”

    “잘 돼야지.”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팔계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팔계, 나야...


    “오공? 수술은 어떻게 됐어요?”

    -...


    “... 오... 공?”

    -죽었어. 우리 엄마...


    잠시의 침묵 후, 전화가 끊겼다.

    무너진 듯한 팔계의 표정을 보고는 결과를 짐작한 오정.




    “... 뭐야... 그 녀석... 불쌍하잖아...”

    “...”


    “하늘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응?
    잘 살겠다고 악바리 쓰는 놈인데...

    녀석 어머니까지 데려가면 안 되는 거 아냐? 그렇지 팔계?”

    “...”

    “... 안 되는 거잖아...”


    “영안실... 갈까요 우리...”




    ... 그 일요일은 마치 무섭도록 평온한 지옥 같았다.




    오공은 한동안 울적해 있었고 발걸음도 뜸했으며,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것 같았다.










    오공은 조용한 단칸방 안에서 혼자 앉아있었다.

    멍하니 방 한켠에 놓여있는 휠체어를 바라보며...




    “엄마...”







    [며칠 후]


    「18세 소년 가장, 한강에 뛰어들어…」

    「손 군은 평소 행실이 바르고 성격이 밝아…」

    「장례는 친하게 지내던 ○○동 두 청년의 손으로…」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자살 사건의 주인공.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정과 팔계의 옆에서 웃고 있던 소년이다.



    오공을 강물에 뿌리고 집으로 돌아온 저녁.

    무서우리만치 조용한 집안.


    “... 팔계, 그거 아냐?”

    “... 뭐가요...?”


    “(피식)... 그 자식, 너 좋아했어.”

    “알아요...”

    “알았구나... (한숨)... 그런데 말이지-”

    “?”


    “널 좋아하지 말아달라고 했던 게, 난 왜 자꾸 후회 될까?”

    “...”



    “어쩌면... 그 녀석은 나보다 더 널 좋아했을지도 모르는데...”



    그 해 발렌타인 데이는

    그들의 곁에 잠시 머물렀던 소년의 기억으로 채워졌다.




    [첫번째 기억. 너는 빛났다.]
    [두번째 기억. 너는 가난했다.]
    [세번째 기억. 너는 어른스러웠다.]
    [네번째 기억. 너는 감정을 속이는 데에 익숙치 못했다.]
    [다섯번째 기억. 너는 날 택하지 못했다.]
    [마지막 기억. 너는 죽었다.]
    [너에 대한 여섯가지 기억들. End]
    ------------
    하하...;; 원래 이번 이벤트엔 참여 안할 생각이였는데-_-)... (삘이 안 받쳤다) 결국 별 의미도 없는 씨잘 데 없는 글 나부랭이를 새벽 4:30이라는 시간이 되도록 끄적거렸다;; 문체가 약간 바뀐 것이... 밖에 눈도 아닌 비가 와서 내가 좀 울적해졌는가비네=_=그리고 삼장이 출연을 안했구나/두둥/ 이렇게 하자 많은 소설 쓰는 데에 한시간 반정도 걸렸나? 내가 이렇지 뭐... 하하ㅠㅠ;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하구요, 추천은 아니더라도 감상이 담긴 코멘트라면 전 족합니다.^^
    행복한 발렌타인 되세요~!

댓글 1

  • 린유z

    2004.02.14 20:49

    아,,,,, 촌놈상, 슬프고,,,멋집니다,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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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J 776 200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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