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sweetheart
  • claudia
    조회 수: 833, 2008-02-10 14:49:09(2004-02-14)


  • 차가운 밤공기사이로 희미한 빛이 느껴질때면 나도 모르게 눈이 떠지곤 했다.
    인간이나 요괴의 온기가 아니더라도 옷깃에 스쳐지나가는 공기의 흐름에서조차
    신경이 곤두세워졌다.
    그것은 내가 정한것도 원하는 것도 아니다. 내 몸이 반응하고 있을뿐.
    '과거'라는 그림자가 발끝에 머물러있는 한, 끝나지 않을것이라는걸 알고있다.

    ==

    [오능. Happy Valentine]

    [하지만 난 아무것도...]

    작은 하트모양의 선물상자.
    서툴게 매어진 붉은리본이 낯설지가 않다.
    분명 짙은감색의 달콤한 것이 가득 들어있을것이다.
    기분좋은 상상에 나는 조용한 미소를 지었다.

    [별것도 아닌데, 너무 좋아하지마.]

    발그레한 두 볼에 환한 웃음이 그려져있다.
    창가에 쏟아지는 햇살과 비교할 수 없도록 눈부시게 환하다.
    감미로운 목소리와 사락거리며 천천히 다가와 시린 목을 감싸는 감촉과
    그녀의 따스한 체온까지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언제나처럼, 구름에 가려진듯한 태양같은 눈동자를 향해 고백하고 싶다.
    당신을...

    [화남...]

    순식간이었다.
    아니, 그 순간은 매우 오랫동안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의 손을 잡아끌세가 없었고,
    내 손은 커다락 쇳덩어리를 달아놓은것처럼 무겁기만 하여 움직일수가 없었다.
    날카로운 귀를 지닌 흉칙한 모습의 요괴들이 여기저기에 튀어나오는 것은 삽시간에 이뤄졌으며
    내게서 그녀를 떼어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까지는 견딜수없을정도로 시간의 흐름은 늦추어져있었다.
    나의 생명, 죽음보다도 더 큰 가치를 지닌 여인의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 무의 공간속에 나를 버린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안개는 고요한 환청을 안아 서서히 서서히 사라져간다.
    그리고 어둠의 정막은 주위를 휘감고 나는 우주의 공간속에서 산산조각난 체 흔적없이 부숴져간다.

    ==

    "이봐!"

    "..."

    "왠일이야? 늦잠이라니...
    여튼 이것좀봐."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는 공간속, 손에서 느껴지는 것은 작은 선물상자였다.

    "벌써 한건했지. 아! 여기 주인집 막내딸 알지? 흑발미녀말야. 이놈의 인기란 어쩔 수 없다니까."

    "..."

    "난 단건 흥미없으니까. 자."

    다르다는건 알고있지만 그의 눈동자는 매우 붉다.
    거울앞으로 다가가 머리를 매만지는 그를 지나쳐 창가로 눈을 돌렸다.
    늦게 맞은 아침의 햇살은 무척이나 희다.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눈앞을 흐리게 한다.

    "빨리 먹지않으면 원숭이녀석한테 몽땅 뺏긴다구. 사양하는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말야."

    "..."

    "이봐. 팔계."


    알고있었다.
    창가의 햇살과 함께 마주앉아있던 탁자와 작은 액자까지 어둠속에 묻혀져 모두가 사라지는 순간
    허상속에서의 짧은 유희였던것을... 커다란 손바닥위의 하찮은 장난감이 되버린것처럼
    모든것이 허무해지는 순간.
    반복되는 고리의 첫시점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팔계..."

    어깨의 들썩임도 없다. 흐느끼는 소리는 물론, 그저 고개를 숙여 잠시 명상을 하는 것 같다.
    가려진 얼굴을 들어올려 볼을 쓸어내려봐도 조금 미열이 느껴지는 감촉뿐이다.
    아마, 감겨진 두 눈이 뜨여지면 짙은 초록의 눈동자가 일그러지게 눈물이 고여있겠지.
    소리없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가는 것이 그것일테다.
    미동조차 느껴지지 않는 그의 몸을 내게 기대였다.
    비록 쓸모없는 것이지만, 그 움직임을 들려주고 싶었다.
    살아있는 존재의 증거로 네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뼈가 도드라지는 어깨는 한손에 쉽게 감겨왔다.
    이윽고 가슴 한구석에 뜨거운 물기가 닿아 내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좀 더 힘껏 그를 안아주는것 뿐이다.
    지칠때까지 소리없는 울음을 내뱉어 또다시 괴로울지모를 잠에 빠져들때까지 말이다.



    "이야호!"

    "어허! 이거 안보여? 출.입.금.지! 하긴 네 눈높이엔 좀 높긴하지."

    "쳇! 초콜렛도 못받았음서!"

    "혹시 길에서 주은 돌멩이를 착각한건..."

    "아냐!! 누나가 줬단 말야! 머리 이만큼 길어가지고 항상 찰랑거리는..!"

    "그래그래. 삼장한테나 자랑하셔."

    "핏! 그럴거다 뭐! 삼장하고만 먹을꼬야!!"

    "훗..."


    오공이 땅에 미약한 진동을 일으키며 저멀리 사라지는것을 보며
    방문에 몸을 기대어 담배한개비를 입에 물었다.
    불씨가 붙은 담배에서 쌉싸름한 연기를 한껏 빨아들인다.
    어떤 초콜렛보다도 달콤하게 입안을 감싸는 연기는 잠시동안 내게 평안을 안겨주었다.
    팔계의 눈물, 저오능이라는 과거를 거머진 여자,
    그 둘의 끊이지 않는 연결의 끈에 서슴없이 발을 내딛어버린 나.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뒤섞여진 관계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먼지속의 티끌만큼도 되지 않았다.
    한낱 담배연기가 사라지듯, 나 또한 소리없이 그 틀안에서 밀려나 있을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팔계의 과거속으로 저오능에게로 다가가려한다.
    어둠속에 갇히는 순간 그의 손을 이끌어주어야 하고
    사라지지 않는 영상앞에 나타나 그의 얼굴을 가슴에 안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감겨진 눈꺼풀속에 가득 머금어진 눈물을 토해내게 할 사람은
    나 뿐이라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댓글 1

  • 촌놈J

    2004.02.14 03:35

    훌륭합니다! 뭔가가 멋져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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