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廢亂心深 - 6. 저는 웃는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천하의 위선자입니다.







  • “ 아 진짜 나 좀 보내달라니까! 나 사장이라 해봤자 일은 전부 다 형이 해결하잖아! ”
    “ 어허, 그러시면 안 되죠. 그러시면 사장 자리를 놓고 해임하던가. ”












    「 완벽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세상 사람들보다 더 허술한 사람입니다.
    오히려 그런 가면을 쓴 채 허울 좋은 처세술만 늘어놓는 난 정말 나쁜 사람이지 않습니까? 」














    “ 아, 진짜 나 화낸다? ”
    “ 유현빈씨. 저번에 도망갔던 건 내가 차마 잡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절대 그냥 보내지 않을 겁니다. ”

    저 게으른 놈. 시간만 나면 저렇게 도망갈 생각만 하다니.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성격 많이 좋아지긴 했지.
    저렇게 밝은 빛을 풍기며 생글생글 웃는 걸 보니. 현화씨만 불쌍한 거지.

    “ 아, 연원형. 그건 그렇고 현화 바이올린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
    “ 네가 염려하던 것보다 더 잘 배우더라. 아직 어린애라서 그런지 배우는 속도도 빠르고.
    현화씨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바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
    “ 누가 바보라서 걱정하나 뭐. ”
    “ 전에 이야기 들었는데 바이올린 사러 같이 안 가 줬다면서? ”

    은근히 떠보듯 물어본 질문에 얼굴이 빨개진 채 소리치듯 말하는 현빈.

    “ 아 진짜, 그것도 말했어? 솔직히 그 자리에서 취기 올랐으면 덮칠 뻔했다고. 아오, 그냥 덮칠걸 그랬나? ”
    “ 말 한번 참 잘한다. 실천도 못 할 놈이. 현화씨 아끼는 거 다 아니까 괜히 아닌 척 하지 마라.
    근데 바이올린 이야기 하다가 왜 이야기가 이상한 쪽으로 흐른 거지? ”
    “ 형 때문이지 뭐. 바이올린 사러 가자고 한 날이 바로 다음날인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가자’ 라고 말할 수 있겠어?
    아무리 내가 낯짝 두꺼워도 그건 힘들다고. ”
    “ 자식, 알긴 잘 아네. ”

    거의 10cm 남짓 차이 날 정도로 멀대 같이 크기만 하지 아직 정신연령은 현화씨보다 더 못하다. 왠지 커다란 곰을 보는 것 같다.
    생긴 건 늑대같이 능글맞게 생겼으면서 하는 짓은 곰보다도 더 둔하니 밉게 보고 싶어도 밉게 볼 수가 없다. 귀여운 자식.



























    “ 악! 징그럽게 머리카락은 왜 쓰다듬는 거야! ”
    “ 귀여워서 그런다. 이만 가 봐라. ”
    “ 아 진짜? 형 완전 사랑해! ”
    “ 그래그래. 아, 나 사장실 좀 빌린다. ”
    “ 맘대로 해. 무튼 나 간다! 그 지은씨인가? 그 사람 부르려고 그러지? 잘 해봐, 현석형도 그 사람 맘에 두는 것 같던데.
    아 그리고 오늘 현화 레슨 있다던데 빼먹지 말고 먼저 레슨하고 초대하시죠. 무튼 수고. ”

    현석형이? 그 일벌레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별일이네. 지은이가 예쁘긴 꽤 예쁜 건가.
    하긴, 학교 다닐 때도 쫓아다니던 남자들 많았으니 이해는 한다만 현석형까지 반하게 할 정도였다니.
    뭐,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다만. 사장실 호출기 너머로 카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 나 올라가요. 수업 있는 거 까먹은 건 아니죠? 」
    “ 기억하고 있었어. 빨리 올라와. ”

    이윽고 ‘달칵’ 소리와 함께 작은 아이가 들어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아이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비정상적으로 까맣게 느껴진다.
    덕분에 피부까지 희다 못해 비친다고 느껴질 정도니까.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저 아이 눈과 머리카락에는 마력이 깃든 것 같다.
    밤에만 만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까만 마녀같이 느껴진다.
    이런 어린 마녀의 마력에 홀려버린 현빈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되는 듯하다. 적어도 그놈이 로리타 콤플렉스라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됐으니.
    당연하다는 듯 소파에 앉아 테이블에 바이올린 가방을 올린 채 지퍼를 열고 바이올린을 꺼낸다.

    “ 오늘은 왠지 ‘봄’이 듣고 싶어요. 연주해 줄 수 있어? ”
    “ 기꺼이 원한다면. ”

    바이올린을 들고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악보를 꺼냈다. 음이 잔잔하게 퍼질 수 있도록 활을 놀렸다.
    악센트를 주는 부분에는 과감히 강하게 놀렸다. 현화씨는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음을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을 뜨고 말한다.

    “ 그만해요. 내가 원하는 ‘봄’이 아니야. ”
    “ 연주가 맘에 안 들었던 건가? ”
    “ 아뇨. 훌륭했어요. 내가 싫다는 건 베토벤이 표현한 봄이라는 거예요. 그는 봄을 너무 화사하게만 표현했어.
    봄이라는 건 아직 녹지 않은 대지가 깨려고 하는 것을 너무 활동적으로 표현했어. 잔잔하고 약간은 졸리게 표현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너무 악센트가 강했어. 차라리 초반에 아주 잔잔하게 표현하다 후반부에 여름의 느낌을 살짝 넣어주었으면 좋았을 건데.
    너무 계절을 4가지로 딱딱하게 나눴어. 내가 음악을 잘 모르기에 이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냥 맘에 안들어. ”
    “ 그런가. 그건 그렇고 현화씨, 오늘은 별로 바이올린을 켜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

    내 말에 아주 살짝 양 입 꼬리를 올리는 현화씨.

    “ 어떻게 알았어? 나 오늘 기분이 왠지 씁쓸해.
    아, 오늘 학교에 가 봤더니 어제 새벽에 만나서 같이 놀던 애가 오늘 아침에 거의 반 주검이 되서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들어서 그런가.
    왠지 기분이 안 좋아. 지은 선생님은 울었는데 왜 나는 눈물이 안 났었어. 그래서 나 자신에게 화났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
    “ 지은이가 울었나? ”
    “ 응. 엄청 많이 울었지. 그리고……지은 선생님이 울었는데 그 사람이 위로 해줬다는 것도 맘에 안 들고.
    왠지 그 사람이 지은 선생님 주변에 얼씬거리는 게 맘에 안들어.
    차라리 내가 눈물 닦아줄 수 있다면 맘이 놓이는데, 그 사람이 주변에 얼씬거리니까 내가 더 안정이 안 된단 말이야. ”
    “ 그 사람이 누구지? ”
    “ 현석 선생님. 왠지 눈에 띄기만 해도 짜증나는 사람. ”
    “ 지은이가 좋은 건가, 아님 현석이가 좋은 건가? ”
    “ ……모르겠어요. 지금 내가 알기로는, 지은 선생님이 더 좋아.
    그렇지만 바보같이 현석 선생님을 보고 있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버렸어. 망할 현빈씨. ”

    현석형이 벌써부터 작업에 들어간 건가? 이 아이, 지은이에게 모정을 느끼는 건가.
    아니면 부부는 닮는다고, 나이차이 많이 나는 사람에게 관심가지는 건가. 쿡, 재밌겠는데 이거.

    “ 현석형 한데 마음 있는 거 아니야? ”
    “ 전혀. 아니 난 잘 모르겠는데 현빈씨가 그런 것 같다더라. ”
    “ 만약 좋아한다면, 잡은 생각은 있어? ”
    “ 음……아니. 현석 선생님 지은 선생님 좋아하니까.
    그리고 나하고 현석 선생님하고 17살  차이 나는걸. 이거 완전 원조교제잖아. ”
    “ 어때서. 현빈이는 남자애랑 사귀는데. ”
    “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
    “ 음, 상관없지 않나? 사람 좋아하는데 이유 없다고 하잖습니까. ”

    현화는 내 표정을 살피는 것 같았다. 저 아이 또 마녀 같은 미소를 짓는다. 저 아이, 크면 저 표정으로 남자 몇 명은 울리겠는데.
    방법이나 느낌은 다르겠지만, 제 2의 지은이를 보는 것 같다. 서서히 입을 떼는 현화.






























    “ 사람 좋아하는데 이유 없다는 거. 다 핑계야. 나 예전에 좋아하던 드라마에서 그러더라. 이유도 없으면서 좋아할 수는 없다고 말이야.
    그 사람 웃는 모습이 좋았기에 말투도 좋아하게 되었고, 말투가 좋았기에 그 사람 눈동자도 좋아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그 사람 전부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이야.
    근데 난 아닌 것 같아. 난 현석 선생님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거든. 그러니까 좋아하게 될 이유가 없잖아.
    단지 내가 싫은 건, 그 사람이 지은 선생님 옆에 있다는 게 싫은 것일 뿐이야. ”
    “ 그 사람이 내가 된다고 해도 싫어할 건가? ”

    표정은 그렇지 않지만, 꽤나 놀란 듯한 현화. 항상 무표정만 고수하는 저 아이에게서 표정을 찾는 거란 정말 힘든 일이었으니까.
    도와줄지 도와주지 않을지는 저 아이가 결정할 문제겠지. 뭐, 도와주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말이야.

    “ 나한테 궁극적으로 뭘 바래? ”
    “ 현화씨가 도와줬음 해. 나 원래 돈이라든지, 명예라든지 남들이 흔히 원하는 것에는 그렇게 갈망하지 않거든.
    그런데 나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빼앗기는 거 정말 싫어하거든. 그게 내가 정말 원하는 거라면 말이야. 지은이가 그 중 하나라고 해야 하나.
    정말 진심으로 원하니까. 자격지심이라든지 욕심 같은 것이 아닌, 나 자신이 스스로 원하고 있어. ”
    “ 어차피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어도 나 혼자 할 수 있었어.
    둘 사이 떼어 놓는 거. 근데 이건 어쩔 거야? 지은 선생님, 현빈씨 맘에 두고 있어. ”
    “ 현빈이 그 자식 로리타 콤플렉스라서 거들떠도 안 볼걸. ”
    “ 현빈씨 로리콤 이었어? 어쩐지 정상은 아닌 것 같더라. ”
    “ 자자,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말고요? 그 자식 마음 다 잡은 것 같으니까 하는 말이지, 설마 진짜 로리콤 이겠어? ”
    “ 응. ”

    이 아이,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도대체 집에 어떻게 했기에 저렇게 확신하는 거지?
    현빈이 그 자식, 그렇게 건전하게 살지는 않은 것 같다.

    “ 무튼, 도와주겠어. 현석 선생님만 잡으면 되는 건가?
    지은 선생님 마음이 연원씨 에게 간 후로는 더 이상 협력하지 않겠어. ”
    “ 좋으실 대로, 마녀님. ”
    “ 마녀? 나빴어! 적어도 현빈씨는 전에 고양이라고 해 줬단 말이야.
    나 갈 거야. 어차피 오늘 수업 안 할 거지? ”
    “ 그래, 잘 가요, 마녀씨. 빗자루 타고 가다 추락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쿡쿡. ”

    현화씨에게 끝까지 마녀라고 놀리자 뒤도 안 돌아보고 소리 나게 문을 닫고 나갔다.
    왠지 저 아이가 나서면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빈틈이 없는 아이니까 실수 같은 건 하지 않을 것 같다.





































    대충 사장실을 청소한 후 지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컬러링이 잠시 이어지더니 이내 이 아이 특유의 밝은 목소리가 들린다.

    「 여보세요! 어라? 연원선배, 무슨 일이에요? 」
    “ 지금 시간 되나? ”
    「 네에. 먼저 연락한 건 오늘 처음인 거 아시죠? 」
    “ 앞으로 자주 연락할게. 오는 길은 알지? ”
    「 선배 회사건물 제일 위층, 맞죠? 사장실인데 자주 빌려도 되는 거예요? 」
    “ 뭐, 실질적인 일은 전부 내가 하니까. 그리고 허락 맡았으니까 부담 안 가져도 될 걸? ”
    「 뭐, 선배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빨리 갈 테니까 기다려요! 」

    아까까지도 현화의 얌전하고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를 듣다 지은이의 살짝 들뜬 듯한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까지 들뜨는 것 같다.
    이 아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역시 이 아이의 밝은 모습이 좋은 건가.
    그냥 이 아이 웃는 모습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니까 이 아이 전부가 좋아진 건가.
































    ‘달칵’

    “ 아, 선배! 야~ 항상 느끼지만 되게 깨끗하네? ”
    “ 온다고 서둘러 치운 거야. 자, 와인 어때? ”
    “ 와인은 부담 돼서 못 먹겠어. 아, 얼음 있어?
    나 마트 들려서 맥주랑 먹을거리 사 왔는데 같이 먹어요! 나 먹는 속도 느리지만 맞춰 줄 수 있지? ”
    “ 그래, 되게 많이 사왔네? ”
    “ 에헤, 먹는 속도는 느려도 많이 먹으니까. 자자, 캔 따요~ ”

    지은이는 얼음을 가득 채운 통에 맥주를 채워 넣었다. 우리는 ‘딸깍’하고 캔을 딴 후 가볍게 캔을 부딪쳤다.
    얼음통에 채워놓지 않은지라 약간 김이 빠진 듯 했지만 지은이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마시기에 군소리 않고 마셨다.

    “ 아직도 다 못 마셨어? ”
    “ 응. 나 원래 음식 같은 거 되게 느리게 먹잖아. 아까 속도 맞춰준다면서 이제 와서 또 다른 말 하기야?
    아, 나도 다 마셨다. 나 캔 하나만 더 꺼내줘요. ”

    소파 옆에 놓인 얼음통에서 맥주를 꺼냈다. 잠시 두었을 뿐인데 캔 외부는 아까보다 시원하게 느껴졌다.
    원래 영화에서 고백하는 한 장면으로는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른 뒤 고백하는 것이 있지만
    역시 현실은 영화와는 다른지 지은이 주량이 장난이 아니다.
    하긴, 대학 다닐 때에도 거의 마시기보다는 목구멍으로 집어넣는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퍼마셨으니까.
    그렇게 거짓말 약간 보태서 물독으로 몇 동이 마신 후에야
    배가 부른 건지 취한 건지 모를 표정을 지으며 내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렸으니.
    내가 데리러 왔을 때 정말 기쁘다는 표정을 지었었지.
    그래, 나 그때부터 평생 동안 너를 집까지 데려다 줄 사람이 되고 싶었지. 내가 지금 그 말을 하면 넌 내 부탁을 허락해줄까.








































    “ 지은아. ”
    “ 아, 선배. ”

    영화 같지도 않은 현실에,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 왠지 기분이 좋지 않다.

    “ 너부터 말해봐. ”
    “ 있죠……. 나 왠지 선배라면 진지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현화도 어른스럽지만 역시 어른과 이야기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고나 할까. 선배라면 이해해 줄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나 도와줄 거라고 믿어. ”

    그런 표정 지으면서 말하지 마라.
    지금 네가 무슨 말 할 거라는 거 다 아니까 내 앞에서 그런 행복한 표정 지으면서 말하지 마라.

    “ 나……현빈씨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 아, 비밀이에요.
    선배니까 말 한 거야. 가까이 있고, 자주 만나고, 내가 부탁할 수 있는 사람 중에서는 가장 친하기도 하니까…….
    현화한테도 부탁해봤는데 왠지 역시 어린애다보니까 약간 걱정된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선배한테 부탁하는 거예요. 나 도와 줄 거죠? ”

    괜히 너보고 먼저 말하라고 한 것 같다. 내가 먼저 말 했으면 이런 말 듣지 않았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마음에도 없겠지만 내 고백을 들어 줬을 수도 있는데. 나 바보같이 네가 무슨 말을 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 왜 막지 못했을까.
    바보같이 왜…….

    “ 그래. 아끼는 후배 부탁이니 도와 줘야지. 다음에 만날 때는 현빈이도 같이 부를까? ”
    “ 아, 정말요? 고마워요 선배! 역시 선배한테 말하길 잘 한 것 같아요.
    선배가 옆에 있어서 왠지 힘이 되는 것 같아. ”
    “ 그래. 아, 나 오늘 다른 일 있었던 걸 까먹고 있었네. 오늘은 이쯤 헤어질까? ”
    “ 에에~ 선배도 까먹는 일이 있는 거예요? 아쉽지만 할 수 없죠. 맥주 사 둔거 넣어두고 현빈씨랑 같이 먹어요.
    그럼 나 먼저 가볼게요. 안녕. ”

    언제나와 같이 웃는 얼굴로 사장실을 나가는 그 아이에게 인사를 보냈다.
    그래, 기쁜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항상 난 이렇게 웃어왔지. 그게 나만의 비즈니스 방식이었고, 삶의 방식이었으니까.
    오묘한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내 미소를 보면서 그들은 나에게 다가왔지.
    그 미소에서 풍기는 오묘함이 그들을 비웃는 내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말이야.
    저 아이에게만큼은 진실한 웃음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나 오늘 이렇게 또 거짓웃음 자아내고 있구나.
    비참하다. 착한 모습만을 그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난 나 자신이.
    천하의 위선자라는 건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만큼은 위선자의 모습이 아닌, ‘이연원’ 이라는 한 사람으로서 다가가고 싶었는데.
    저 아이가 나의 본모습에 실망할 거라는 생각에 위선을 떨고 말았다.
    화가 났다는 것, 도와주고 싶지 않다는 것, 이렇게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
    내 사랑이 부족할지라도 나 이 순간 너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미소로 덮어 드러내지 않은 채…….

































    그 아이가 나간 사장실 문 앞에 서서 그 아이가 잡은 손잡이를 꽉 쥐었다.
    이미 떠난 그 아이처럼 손잡이에는 그 아이의 온기가 식어버려 심장을 얼려버릴 정도로 한없이 차가웠다.  
    그대로 문에 기댄 채 쓰러지듯 앉았다. 문득 돌아본 전신거울 속에 비치는 내 자신이 죽일 만큼 한심했다.

    “ 정말 괴물이지?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까지 진심을 보이지 못하고……. ”

    거울 속 날 닮은 사람이 웃고 있었다. 왠지 거울 속 저 사람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는 정말 날 비웃는 걸까. 아니면 지금 진짜 내가 웃고 있는 걸까.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신들린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나를 향해 비웃음을 날리는 저 재수 없는 자식을 패주고 싶었다.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 자식의 얼굴이 산산조각이 났다. 분명 내가 이긴 것이 맞는데 왜 기분이 더러울까. 주먹에 피가 묻어 있었다.
    그 자식의 피 같았기에 재빨리 셔츠에 닦아냈지만 계속 흘러나오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 피가 내 피고 그 자식은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전신 거울에 내 피가 깨진 모양을 따라 스며들듯 흘러내렸다.

    “ 이거 완전 미친놈이잖아……. ”

    정말 영화 같다. 영화는 현실과 전혀 동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그러기에 다들 영화를 꿈이라고 하지만, 꿈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하필이면 왜 그 많고 많은 장르 중 새드를 선택한 걸까. 신도 야속하시지 참.
    아씨, 닦아도 계속 흐르는 피에 짜증이 났다. 아픈 느낌도 없었기에 그대로 흐르도록 내버려뒀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다.
    땅바닥을 기어 겨우 문까지 갔다. 미치도록 무거운 몸을 문에 기댔다. 순간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나 평생 동안 너를 집까지 데려다 줄 사람이 되고 싶었지. 근데 내 소망에는 커다란 오점이 있었다.
    그래서 평생 동안 집에 데려다 줄 사람까지가 내 한계가 되었나 보다. 나 항상 너를 집에 데려다 주는 사람만 되게 해 달라고 빌었어.
    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 맹세가 잘못된 거였네. 그래서 그 아이가 떠난 건가. ”

    그렇게 다음날 피범벅이 된 채 발견되기 전까지, 잠시나마 그 아이가 서 있었던 문 앞에 기대어 있었다.































    물론 그 다음날 현빈이의 잔소리를 들은 건 말할 필요도 없다.

    “ 형 병신이야? 왜 정신 나간 사람처럼 피범벅이 된 채 쓰러져 있었는데?
    그건 그렇고 그렇게 피범벅이 됐는데도 병원 안 가겠다고 버티는 건 뭔데? ”
    “ 싫어. 피 흘렸다고 해서 어지럼증 같은 거 없으니까. 어제 스스로 지혈 한 것 같더라.
    나란 인간 참 괴물이지? 그런 순간까지 내 몸 걱정해서 나도 모르게 지혈했잖냐. ”
    “ 됐네요. 아, 현화가 학교에 잠시 올 수 있냐고 하던데?
    형 이런 몸 상태로 갈 수 있겠어? 오늘은 그냥 오기부리지 말고 집에 가. 현화보고는 내가 말 해 둘게. ”
    “ 갈래. 현화씨 만나고 바로 집에 갈 테니까. ”
    “ 데려다 줄게. 형 그 몸으로 버스 탔다가는 포즈도 못 잡고 잘난 척도 못할 거 아냐. 내가 성심 써서 도와준다. 가자. ”

    현빈이는 날 부축해서 차에 태워 주었다.
    저 자식만 없었으면 어제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왠지 저놈이 밉지가 않다.
    (물론 느끼지 못했지만)피 흘리는 고통 속에서 해탈의 경지에 다다른 건가.
    지은이라는 잡념이 들지 않는다면, 이대로 정말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잡념을 못 지우고 있는 것을 보니 난 역시 부처가 될 그릇은 아닌가 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학교 앞에 도착했다. 어디서 구한 건지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꺼내는 현빈.

    “ 야, 나 그거 안타. 걸을 수 있으니까. ”
    “ 참 나, 그렇게 비틀거리는 게 걷는 거야? 바람 불면 같이 날아가겠네. ”

    결국 현화씨의 교실까지 부축해주는 현빈. 교실에 도착했을 때 현화씨는 없었다.
    현화씨의 반 아이들 중 한명에게 물어보니 교무실에 있다고 하였기에 다시 교무실까지 내려갔다.
    교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멀리서도 눈에 띠는 까만 머리카락이 보인다.

    “ 야, 이현화! ”

    여기가 교무실이라는 것을 잊은 건가. 큰 소리로 현화씨를 부르는 현빈.
    큰 목소리에 우리쪽을 보며 인상을 지으며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도착해보니 익숙한 두 개의 향수 냄새가 섞이듯 코끝을 자극한다.
    이 자리…….


































    “ 여기 다들 모여서 뭐하는 거지? ”

    돌아보니 현석형이 있었다. 현화가 또 마녀 같은 웃음을 흘린다.
    어제 그렇게 용감하게 도와달라고 말했으면서 왠지 오늘은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현빈이가 현석형과 이야기 하고 있을 동안 살짝 현화씨 옆으로 가서 속삭였다.

    ‘ 현화씨, 나 어제 차였는데도 나 도와줄 수 있겠어? ’
    ‘ 상관없어. 차인 게 무슨 대수야? 지은 선생님 진짜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그게 사실이라면 계획에 착오 없이 실행해 줘요.
    만약 거절한다 해도 난 상관없어요. 난 지은 선생님한테서 현석 선생님 떼어놓기만 하면 되니까. ’

    “ 있죠. 나 지금 수업 있으니까 나중에 점심시간에 볼래요?
    현석 선생님이랑, 현빈씨랑, 연원씨랑, 그리고 지은 선생님. 이렇게 우리 교실로 와 주세요. ”

    정말 강적이다. 솔직히 지금은 나에겐 이길 승산이 없다. 그저 이 아이가 하는 대로 바라볼 수밖에. 쉬는 시간이 끝남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저 아이는 총총 뛰어 교무실 문을 빠져 나갔다.
    살짝 어이없어하는 현석형과 이젠 익숙하다는 표정을 짓는 현빈. 현석형이 이번 시간 수업이 없었기에 학교 뒤뜰의 벤치로 갔다.
    등나무 그늘 아래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몇 십분 뒤의 폭풍전야를 실감하는 것 같았다.
    아무 말 없이 어색하게 앉아있는 셋. 현석형의 두꺼운 안경알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의 초점은 또렷했다.
    지금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어하는 내 눈동자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왠지……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초라하게 느껴졌다.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얻어 존경을 받는 현석형과 장차 유명한 브랜드의 회장 자리를 물려받을 현빈.
    물론 나 역시 야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필요가 없었을 뿐이지.
    세상에서 가장 잘난 사람은 나이고, 그래서 난 언제든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 내 생각만큼 잘난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 마음 하나 사로잡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

    ‘딩 동 댕 동’

    “ 아, 종쳤다. 갈까? ”

































    ‘ 드륵 ’

    교무실에서 지은이를 데리고 현화씨의 교실로 갔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우리를 반기는 현화씨. 그리고 현석형의 팔을 잡아끈다.

    “ 왜 이러는 거지? ”
    “ 사실, 선생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요. ”
    “ 나한테 할 말이 있었다면 저 두 사람을 부를 필요가 있었나? ”
    “ 음, 증인이 되어 줬으면 하거든요. 내가 하는 이야기, 진지하게 들어주실 수 있나요? ”
    “ 항상 진지했는데, 못 느낀 건가? ”
    “ 아뇨. 그저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물어본 거죠. 있죠. 나 선생님 좋아해요. ”

    드디어 일이 터졌다. 주변의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은이의 얼굴빛이 파랗게 변했다.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현석형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 너……장난치는 거냐? ”
    “ 장난으로 보여요? 난 진지해요.
    현석 선생님 옆에 지은 선생님이 있는 게 싫었어요. 혹시 나이 때문에 그런 거예요? ”
    “ ……너하고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는 것 같다. 간다. ”
    “ 사랑한다고요! 진짜……죽을 만큼 사랑하는데 왜 못 믿는 거예요?
    내가 싫은 거예요? 싫으면 싫다고 말하라고요, 이 외골수! ”

    묵묵히 교실을 빠져나가는 현석형 뒤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현화씨.
    주변의 웅성거림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교실을 빠져 나간다. 그 뒤를 따라가는 지은이. 어쩔 수 없이 그 둘을 쫓아갔다.

    “ 현화야, 어떻게 된 거야? 아니 그 전에……미안해. ”
    “ 아뇨. 괜찮아요. 상관없으니. ”
    “ 현석 선생님한테 마음 있다는 걸 자각한 거야? ”
    “ 그런 것 같아요. 벽창호라서 말이 안 통할 거라는 것 정도는 이미 간파했으니 그렇게 충격이 크진 않아요. ”

    생글거리며 당황한 지은이를 달래는 현화씨. 그제야 지은이의 얼굴빛이 돌아왔다. 내 쪽을 보며 이제는 가도 된다는 신호를 보낸다.
    유현빈 이 자식은 눈치를 챈 걸까. 내 쪽을 향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부축했다.

    “ 너……알면서 그렇게 웃지 마라 응? ”


































    집에 도착하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현화씨의 전화.
    대충 학교에서 적잖게 소란이 일어났고, 그 소란을 전부 현석형이 책임지게 됐다는 것.
    그리고 결국은 고백을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 등의 이야기를 혼자 하고 혼자 끊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판을 펼친 건 본인이지만 그 판을 어떻게 이용할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 드디어 쉰다. ”

    겨우 이틀 동안 시달렸는데 꼭 그 기간이 백 만년 같이 느껴졌다.
    겨우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소파에 다리를 쭉 폈다. 나른하게 잠이 쏟아졌기에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
































    오랜만에 편히 잔 듯한 느낌. 일어나서 휴대폰을 보니 벌써 8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문자 한 통.

    「 선배! 어제 피범벅 됐다면서요? 피 토한 거예요?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무튼 힘내세요! 아픈 건 싫잖아요~ 」

    지은이가 보낸 문자를 보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띠었다. 역시 어쩔 수 없나보다. 난 부처가 될 그릇은 아니니까.
    그저 이 아이가 웃는 모습 그대로 내 곁에 있었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나 다시 한 번 너에게 마음 가지려고 해. 그 적이 설령 현빈이라 해도 말이야…….










































    ---------------------






    낄낄 그냥요
    치키언니야 나 약속지켰어여
    놀러가기전에 소설쓰고가기 /ㅅ/

    음 아무리생각해봐도
    내소설에서 가장 정상적인 사람은
    지은씨 /ㅅ/



    아니뭐그냥그렇다구요
    무튼 이번편은 연원편
    그럼 다음편은 당연히 현석편이겠네요

    그리고 다시 반복 두번정도
    더 할 듯 싶어요


    아니뭐그냥그렇다구요
    무튼 할말있었는데
    꼭 쓸려고하면 까먹더라 난

    그래
    내 소설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사람은
    연원씨였어요 (.........)

    아니뭐그냥그렇다구여

    그리고유시야
    나 기준이라고했어




    아 그리고 질문
    저 소설 문장나누기가
    귀찮아서그러는데요

    그냥 일자로 쭉 쓸까요
    아니면 지금처럼
    조금씩 문장 나눌까요


댓글 5

  • [레벨:24]id: Kyo™

    2007.08.11 00:59

    우왓, 복잡한 사이...
    거울은 굳이 왜 깨셨어요;; 위험하게;;
    그나저나... 여기저기 얽힌 것 같은데 어떻게 풀려구...?
    ps. 소설, 쓰고 싶은데로 써~ 역시 그냥 쭉- 쓰는게 편하니까 그렇게 쓰는 건 어때?
  • 세츠군z

    2007.08.11 08:28

    지금처럼 문장으로 써버려-_-.........마음데로하셈<
    어떻게낄낄유는그냥병원실려갔다고만나왔어(......)
    현빈씨도이제다알아차렸구만깔깔
  • [레벨:6]id: 원조대왕마마

    2007.08.13 18:26

    조금씩만 장 나눠주세요오오오//ㅅ
    오타 발견했는데 약속 지켜줬으니 넘어갈께요오오 .♡
    꺅~ 근데 체리가 가장 어려워 하는게 연원이라고 했는데
    왜... 난 가장 마음에 들지? 특히 괴물같다고 막
    거울깨고 그러는 장면 마음에 들었어.♡
    근데 우리.. 그그....... 손목 그은 유쨩은 어떻게 된거지?!!
    와와와와... 현화 이쁜 케릭터인줄 알았는데 정말
    .... 마녀.. ?!!!<-타아아앙
  • 체리 보이 삼장♡

    2007.08.15 19:22

    엄마야 오타 말해줘 ;ㅅ; !!
    악 원래 정신나가면 본인이 이상하게 보이는 편이니까
    자해야 자해 <-
  • 유쨩

    2007.08.17 21:52

    꺅 , 나도 정상이예요 ! <
    ........ 음음 .. 난 죽었을까 (버엉)
    뭔가뭔가 많이 얽혀버렸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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