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맑은 어느 날, 텐츠키와 아일린은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알렌은 연주회때문에 낮에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둘만 남은 것이다.
집에만 있기에는 너무 날이 좋았기에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 형, 어디 갈래? "
" 글세... 오락실 갈래? "
" 나참, 노는 생각 밖에 안 한다니까. "
" 그럼 넌 할 일 있어? "
" 아니. "
" 그러면서. "
두 사람이 투닥거리면서 오락실로 발길을 돌렸다.
오락실에 가던 중, 왠 아주머니 한 분이 아일린을 불러 세웠다.
아주 전형적인 아줌마 파마를 하고 있었는데, 보통의 아줌마보다는 좀 날씬하다는 게 특징이었다면 특징이었다.
" 어머, 얘. "
" ......? "
" 어머, 역시 너 맞구나~ "
" 저, 누구신지... "
" 아, 넌 날 잘 모르겠구나. 지난번에 레오랑 같이 요리학원 온 적 있었지? "
" 네. "
" 그 떄 같이 수업 받았던 아줌마야. "
" 아~ 안녕하세요. "
아일린은 기억을 더듬어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렸고, 분명 그 수업시간에 자기 옆 자리에서 같이 요리를 한 아주머니였다.
텐츠키는 아주머니와 아일린이 즐거운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자, 뒤로 한발 물러나서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 그래 그래, 어디 놀러가니? "
" 네, 형이랑 오락실에 가려구요. "
" 친형이니? "
" 아, 아뇨! 집 근처 사는 아는 형이에요. "
" 그래? 어쩐지 닮았는데 말이야. "
" 설마요! "
아일린이 강력하게 거부하자, 아주머니도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리셨다.
아마 아일린이 너무 귀엽게 보여서 그랬을 것이다.
" 아, 요즘 살인범이 돌아 다닌다더라. "
" 살인범이요? "
아일린은 못 들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아주머니와의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워낙 순진하고, 어리광 부리기 좋아하는 아일린이지만, 세츠의 도움이 있다면 간단한 감정 연기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물론 사람 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쉽게 속고는 했다.
" 그래, 얼마 전에 공원에서 살인사건 일어난 거 알지? "
" 네, 언뜻 들었어요. "
" 그 살인범이 아직도 안 잡혔다더구나. 너도 조심하렴. "
" 네~ "
" 그럼 재밌게 놀거라~ "
" 안녕히 가세요~ "
아주머니는 살인범을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아일린과 텐츠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다른 곳으로 걸어 가셨다.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남은 두 사람은 서로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 그런데 어딜 봐서 이 녀석과 내가 닮았다는 거지? "
" 에헤, 글세~ "
" 뭐, 아일린이랑 형제라고 오해받는 건 상관 없지만. "
" 세츠가 막 뭐래. "
" 무시해, 무시. "
텐츠키는 앞장 서서 오락실로 향했다.
그리고 아일린은 머리가 띵- 한 듯 손바닥으로 머리를 지긋이 누르다가 텐츠키가 부르는 소리에 웃으면서 뛰어갔다.
" 아, 재밌다~ "
" 정말~ 이렇게 재밌게 놀아 본 적은 오랜만인 것 같아~ "
" 자! 그럼 집에 가자! "
두 사람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 프로젝트는 맡고 있지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뭘 알아야 할 거 아냐. "
" 맞아, 우리 너무 태평한 것 같아. "
" Rubil에서는 벌써 치고 들어왔더구만. 우리는 그런 정보통 없나? "
" 있을리가 없잖아, 있어도 얼마나 귀한대. "
" 그렇긴 하다. "
조잘조잘, 마치 제비처럼 수다를 떨던 두 사람은 어느새 집에 거의 다 왔고, 저 멀리 알렌으로 보이는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두 사람이 알렌을 놀래줄 계획을 세우고, 뛰려는 순간...
" 읍...! "
" 뭐야...! "
어두운 골목에서 튀어나온 손이 두 사람을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가 버렸다.
단 1초의 여유도 주지 않고, 어릴 때부터 피와 어둠에 익숙한 이들마저 잡아 먹은 어둠은 도시의 하늘을 까맣게 뒤덮어 가고 있었다.
팡... 팡...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가죽 소리...
무슨 책 같은 걸 손으로 치는 듯한 소리가 텐츠키의 귀에 들려왔다.
" 크윽... 시끄러... "
아직도 머리가 울리는 지, 고개를 세차게 흔들던 텐츠키는 퀘퀘한 냄새에 정신이 퍼득, 들었다.
손은 위로 올려져 수갑이 채워지고, 굵직한 쇠사슬에 묶여져 있었을 뿐, 그 외에 별 다른 점은 없었다.
그리고 자신과는 달리 바닥의 푹신한 곳에 쓰러져 있는 아일린을 보고는 순간, 짜증이 확- 밀려오는 텐츠키였다.
" 아까 분명히 집에 가던 길이었는데...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
" 일어나셨나, 도련님. "
" 응? "
텐츠키 가까이로 다가온 이가 등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텐츠키는 넓게 퍼지는 흐릿한 불빛 덕에 상대의 얼굴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상대는 엘과 비슷한 흰색의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분명 아까는 문 근처에 있었는데 어느새 텐츠키 가까이로 다가와 있었다.
아무리 텐츠키가 붙잡혀 온 충격(?)으로 넋을 놓고 있었다고 해도, 아무런 기척도 없이 접근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아무런 기척도, 느낌도, 그 무엇도 없었다.
느낌만으로는 갑자기 텐츠키의 앞에서 솟아난 듯 했다.
" 좀 엄한 자세지? "
" 님, 매너요. "
" 농담~ 농담~ "
뭐가 그리 재밌는지 가면 쓴 그 사람은 깔깔대며 웃었다.
텐츠키가 손에 묶인 쇠사슬을 끊으려고 했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끊기기는 커녕 절그럭거리면서 텐츠키의 손을 따라왔다.
" 아, 그거. 아쉽지만 안 끊어져. 행동을 제한하려고 묶은 쇠사슬이 아니라서. "
" 당신, 여자? "
" 응~ 한번에 알아봐 주다니 기쁜걸~ "
" 닥치고 풀어. "
" 싫어, 내가 미쳤니? "
여자는 앤틱 풍의 등을 자신의 얼굴 가까이로 들어올렸고, 텐츠키는 여자의 가면을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오른쪽은 흰색, 왼쪽은 검은색으로 똑같이 절반으로 나뉘어져 칠해져 있었고, 엘과 같은 크고 명확한 꽃이 아니라 자잘하고 넝굴에 드문드문 핀 꽃이 그려져 있었다.
텐츠키는 한참동안 여자의 가면을 바라보다, 어깨가 저려오자 스르륵, 팔을 아래로 내렸다.
역시나 쇠사슬은 텐츠키의 손을 따라 주르륵- 아래로 쓸려 내려왔다.
" 이거, 행동에 제한이 없다고 했지? 그럼 이대로 싸워도... 별 상관 없다는 거지? "
" 그건 아냐. "
" 뭐가 또?! "
" 길이 제한이 있거든. "
" 뭐?! "
" 그 자리에서 무슨 짓을 해도 상관 없는데, 싸우는 거나, 뭐... 그 외 기타 등등은 좀 힘들거야. "
텐츠키가 여자의 말을 듣고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분명히 쇠사슬이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팔을 통해 전해져 왔다.
" 그것 봐, 사람 말 좀 들으라니까? "
" 우린 왜 데려온 거지? "
" 음, 이 도련님은 아직 안 깨어났네. "
여자는 텐츠키의 말을 살짝 씹어먹어 준 다음, 아일린에게로 다가갔다.
텐츠키가 한대 차줄 생각으로 발을 뻗었지만 여자의 손에 가볍게 막혔다.
" 안돼, 나 같이 연약한 여자를 차면~ "
여자는 텐츠키의 발을 놔 주면서 손을 뻗어 텐츠키의 발목을 덥석, 붙잡았다.
" 벌을 줘야지? "
여자는 텐츠키의 발목을 잡은 손에 힘을 순간적으로 강하게 넣었고, 그 순간 우득- 하는 소리와 함께 텐츠키의 발목이 축- 하고 힘 없이 여자의 손에서 떨어졌다.
" 뭐, 뭐야?! "
" 부러지지는 않았는데,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아. "
" 야! "
" 그럼 나중에 보자~ "
여자는 손바람으로 등불을 꺼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여자의 기척도 어둠 속으로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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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많이 늦었지만...
어쨌든 11화 입니다 (웃음)
3번 다시 써서 간신히 올립니다 (먼산)
납치당한거네. 그래도 납치당했지만 바보텐츠키와는 달리 좋은 대우를 받아서 기분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