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의 신부 - 5 - Flowers come out
"시르님...?"
"... 아, 카나리아."
카나리아가 미소지었다.
그녀가 마왕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막 한 발짝 옮기려 했다.
" 뷁! "
" ...예? "
" 아, 미안. 속어를 써버렸군. 거기 가만히 있어. 내가 가지. "
신부가 마왕이 쓴 속어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마왕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마왕은 그녀의 발에 밟힐 뻔한 종이 한 장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 시르님...? "
" 아, 미안. "
" 뭘 보고 계시나요? "
" ...음, 잠깐 손 좀 줘봐! "
" 예? 손을...? "
카나리아가 시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르는 그녀의 손을 종이에 갖다 댔다.
그리고 그림의 선을 따라 카나리아의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자..."
" 아아... 굉장히 아름다운 분... "
" 예쁘지? 옛날 내 애인이야. "
" 예? "
카나리아의 당황한 목소리에 시르가 웃었다.
" 하하, 농담이야. "
" 그럼 이분은 누구...? "
카나리아의 물음에 시르는 약간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하나밖에 없는 나의 어머니-... "
" 아... "
마왕은 여인의 초상화를 등뒤로 던져버렸다.
" 그런데 이 최상층은... "
" 아, 좀 춥지? "
마왕이 자신이 걸치고 있던 검은색 망토를 카나리아에게 걸쳐주었다.
" 여긴, 내가 태어난 곳이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숨이 다 한 곳이야. "
" ...네..."
" 지금은 창고로 쓴다 랄까. 어머니와 아버지의 물건은 모두 여기에 있어. "
" 추억의 방이군요. "
" 응. 별로 달갑진 않지만. "
그럴 만도 했다.
선대 마왕과 선대 마왕의 신부의 추억들만이 가득한 곳.
현 마왕의 추억은 없었다.
" ...시르님 "
" 응 "
" 우리도 우리의 추억을 만들어요. "
" 추억...? "
" 네, 나중에 저와 시르님 둘이서 돌아볼 수 있도록. 둘만의 비밀이던지... "
마왕과 카나리아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에 두 사람은 웃기 시작했다.
장난기 가득한 어린 아이들처럼
두 손을 꼭 마주잡은 채로...
…
" 어서오... "
" 루첸, 너 말이지. 그 히스테릭한 말투 고쳐! "
" 뮬더씨 당신이야말로 퉁퉁거리는 그 말투와 행동 좀 고치시지! "
아쿠는 자신의 앞에선 두 손님을 보고는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자기들만의 말다툼을 계속하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보라색 눈동자, 허리까지 땋아 내린 기다린 백발의 뮬더라는 여성은 가끔씩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소리쳐 댔다.
신경질적인 표정에 초록색 눈동자와 갈색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땋은 루첸이라는 여자는 블루 핑크빛 입술이 돋보였다.
" 저기 아줌마들. "
" 뭐야? "
' 아줌마 ' 라는 단어에 뮬더가 재빨리 반응했다.
" 웬만하면 주문해요. "
" 흐음... 떠들어대기만 해서 미안하군. "
" 더치페이라는거 알죠? 뮬더? "
" 알고 있어. "
뮬더가 의자에 털썩 소리가 나게 앉았다.
" 간단히 삶은 달걀이랑 수프로. "
" 뮬더, 돈 없으니까 그러는 거죠? "
" ...시끄러. "
맡긴 맞나보다.
뮬더는 더 이상 반론하지 않았다.
" 난 파스타와 홍차로 부탁해요, 꼬마아가씨. "
" 네... 그런데 여행자 분들이죠? 어디로 가는 거예요? "
아쿠의 물음에 뮬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마왕의 성이지. "
…
" 마왕 나와라아~!! "
몇 분동안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지만 아무 기척도 없다.
' 여기 마왕이 산다는 거, 실은 뻥 아냐? '
네코가 생각했던 무시무시한 마왕의 부하나, 요염한 서큐비스라든지 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 ..무지 썰렁하네. "
셀피나 블러드가 오기를 무턱대고 기다리는 건 싫다.
그렇다고 돌아가는 것도 싫다.
생각 끝에 네코는 무단침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 덜컹- ]
" 어라, 뭐야 이거. 의외로 쉽게 열리네! "
... 쉽게 열린 것은 아니었다.
문 한 짝은 제대로 날아갔으니...
" 마왕님? "
" ... 흥. 어떤 바보가 침입한 모양이군. "
" 바보-? "
카나리아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 가끔 자기 실력도 모르고 찾아오는 바보들이 많지. 나를 죽이려고 말야. "
" 그런.. "
" 갔다오지. "
" 죽일 건가요? "
" 그럴지도 "
카나리아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 죽이지 말아달라고 할 생각이지. 넌? "
" ...네 "
" 신부가 키스해 준다면 살릴지도 모르지, 바보를. "
마왕이 씨익 웃었다.
카나리아가 잠시 주저하다 마왕의 어깨에 두 팔을 둘렀다.
짧은 키스.
신부의 키스에 마왕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 다음엔 바보들이 더 많기를 빌어야겠어. "
" 그때는 키스 안 해 드릴지도 몰라요... "
" 흐응, 정말? "
카나리아가 웃었다.
...신부는 다른 사람의 죽음에 익숙하지 않았다.
다른 모든 인간들이 그렇듯이.
…
한편, 실피
" ...뭐지, 이 무지막지하게 높아 보이는 산은. "
실피는 지도를 펼쳐보았다.
그러나 곧 그 지도를 등뒤로 던져버렸다.
' 망할 지도로군... 실은 제대로 표기 된 것이 하나도 없어. '
사실 지도 따위를 믿으며 가는 실피는 아니었으므로, 지도 따위는 쓸 필요가 없었다.
" 이젠 나의 감각을 믿을 수밖에 없나... "
" ...어이 거기, 너 실피 아니야? "
" ...아 블러드 쿄우씨. 우연이네요. "
" 결국 한 곳에 만나게 되는 길이었나. "
" 하지만 네코 군은... "
괜찮을 거라고 말하려던 블러드도 일순간.
「걱정된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 역시... 저랑 같은 생각이죠, 블러드씨? "
" ...그런 모양이다. 네코는 아직 애야. "
" 하지만, 우리들 네코의 걱정을 할 필요가 있나요? 그래봤자 남. 인. 데. "
" ...음 "
순간 블러드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실피의 말이 틀리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차피 네코는 남 일뿐이었다.
하지만 방금 그런 위화감이 들었던 건...
「위험하다」
라는 것을 블러드가 이미 느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 자, 얼른 가죠, 블러드 쿄우씨. "
" ...그러지 "
' 이 녀석에게는 「나」가 아닌 타인은 모두 「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논리일지도 모르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잔인한 논리가 되지... '
그러나 블러드는 그렇게 생각했던 자신을 잠시 후에 비웃었다.
블러드 쿄우, 그 자신도 같은 논리 하에 살아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