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수문학) 갈색우유병 = 4 = 내일의 부재



  • 새벽에 잠에서 깼다. 옆에서 히사야가 뒤척인다. 잠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 깨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정도로, 조금은 익숙해진 것이다, 서로의 패턴에.
    히사야가 몸을 바짝 붙여온다. 덕분에 뒤척일 수 조차 없게 되었다. 내가 깨어있다는 것을, 굳이 알리고 싶지는 않다.

    몇 분 흐르고 나서 고개를 돌려 히사야의 얼굴을 본다. 자고 있는 얼굴. 흔들리지 않는 규칙적인 숨소리. 놀랍게도 나는 히사야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것은 연인으로써의 사랑이 아닌, 히사야라는 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방안은 조용하다. 나는 머릿속으로 저녁에 히사야와 보았던 시시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일요일 저녁이면 항상 같은 시간에 해주는 언제나 시시한 애용의 공포물이다). 그리고 방 안이 조금 무덥다고 생각한다. 히사야의 몸은 차다.

    ㅡ... 소름이 끼칠 만큼.


    아침상을 치우지도 안은 채로 책을 본다. 히사야가 사온 만화책(꽤 볼만한 소년 만화야, 라고 히사야는 중얼거리곤 했다)이다. 히사야는 아침부터 레쓰비 마일드를 마셔댄다. 원샷이다. 정말이지 유유만큼이나 차가운 캔 커피를 좋아한다.

    “ 어, 그거 내 책 ”
    “ 히사야가 재밌다고 말했으니까 ”
    “ 아냐, 볼만하다고 했지 ”
    “ 그거나 그거나. 비슷하지 않아? ”

    히사야가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 틀려 ”

    그냥 수긍해주면 좋을 것을. 히사야는 빈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유쾌한 소리가 들려온다. 히사야는 바닥에 어질러져 있는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간다(마치 작은 곰과 같다). 더울 텐데, 라고 하자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 더우면서, 왜 들어가는데 ”
    “ 이불 속에 들어가 있으면, 기분이 좋아 ”

    어떤 기분인데, 하고 묻자 글쎄, 라고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한다.
    잠시 후에 덧붙인다.

    “ 작은 동물이 된 듯한 느낌이랄까 ”
    “ 하지만 ”

    히사야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 인간도 동물이니까 말이야 ”

    내말에 히사야는 웃는다. 우리들은 이렇게 건조한 상태라, 팽창된다던지 하는 법이 없다. 히사야의 말처럼, 우리는 작은 동물과도 같다. 히사야가 캔 커피를 하나 더 딴다(이번엔 맥스웰 하우스 블루엣이다).

    “ 미즈코 ”
    “ 응 ”
    “ 내일 같은 거,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 ”
    “ 뭐? ”

    그 목소리가 왠지 괴롭게 들린다고 생각되어, 나는 순간적으로 동요하고 말았다. 하지만 히사야는 미소 짓고 있었다. 내일 같은 거,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니.

    나는 히사야를 이해할 수 없었다. 히사야는 여전히 엷은 미소를 얼굴에 띄운 채, 냉장고를 뒤져 치즈 케이크를 꺼냈다. 치즈케이크의 부스러기가 히사야의 입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여전히 히사야를 이해할 수 없다.


    * 우니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10-19 19:09)

댓글 4

  • [레벨:1]초유

    2004.05.30 18:38

    에에,인간도 동물이지요[폭소]//
  • [레벨:3]우유의마법

    2004.05.30 20:50

    예에, 저도 그 기분 이해합니다... ......저도 히사야를 사랑해요오~~♥(뭐,뭐냐!!)
  • 린유z

    2004.05.30 21:03

    인간도 동물이지요 ,, 네 ,, 그렇지요 ,, ( 머엉 )
  • [레벨:3]스카이지크風

    2004.05.30 22:44

    ;ㅁ; (푸슉) 어째 미즈코가 히사야를 사랑하는 건지; 자신이 써놓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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