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유시] 아름다운 그녀에게 -


  • 아름다운 그녀에게 -




    「나 오늘을 마지막으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내가 그녀를 본 건 아마도 3년 전 바로 그날이겠지요. 난 그저 갓 도시로 상경한 시골뜨기였고,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도시의 부잣집 따님이었지요. 검게 그을린 피부와 점 딱지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볼품없는 내 팔과는 달리 그녀의 피부는 햇살에 백자같이 하얗게 빛났고 살짝 선홍빛으로 빛나는 두 뺨은 마치 어릴 적 책으로만 읽었던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았습니다.


    그녀는 매일 아침 한 손엔 가방을 들고 내가 일하는 일터 앞을 나풀나풀 지나갔습니다. 그때 전 폐차장에서 일했기에 항상 먼지투성이에 손에는 기름때가 질 날이 없었기에 선뜻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그저 폐차장 담 너머로 몰래 바라만 볼 뿐이었죠. 그렇게 아침마다 등굣길을 나서는 그녀를 보는 것은 힘든 폐차장에서의 하루의 지침을 한결 덜어주고 더욱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를 바라본 지 반년이 다 되어갔을까요,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침마다 햇살에 비치는 그녀의 뽀얀 살결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저는 그만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진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니, 차라리 지옥이라면 순순히 받아들였겠지요. 그녀가 없는 아침을 맞는 하루하루는 저에게 있어선 하루하루의 활력을 빼앗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아갈 수는 없었죠. 일은 더 이상 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고향집에서는 제가 벌어오는 돈을 기다리고 있겠지만 저에게는 이미 그녀는 부모님의 존재조차도 뛰어넘는, 저 자신조차도 희생하고도 남을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그 결심을 한 그날로부터 폐차장을 나왔죠. 그리고 그녀가 다니던 학교의 학생들에게 그녀의 소식을 물으러 다녔죠. 그러나 학생들은 저를 무시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엔진오일에 찌든 손가락과 얼굴과 옷에 기름때 가득 낀 사람을 무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 번 퇴짜를 당한 후 저는 친절해 보이는 한 학생을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히 충격적이더군요. 그녀는 학교를 그만 둔 상태였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의 사업이 부도가 난 이후 그녀는 거의 팔려가다시피 다른 집안의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전 눈앞이 새하얘졌습니다. 저에게 그 소식을 전해 준 학생이 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간 줄도 모른 채 말이죠. 그냥 이대로 정신을 놓아버린 채 영원히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녀를 바라볼 수 없다면 저의 시간은 이대로 멈춰버린 것과도 같았기 때문이죠.


    그 순간, 문득 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내가 힘을 키워서 그녀를 데려오겠다.’ 라고 말이죠. 내가 권력과 재물을 키우면 그녀의 부모들은 내 겉치레만 보고 다시 그녀를 저에게 팔 것이 분명하니까요. 천천히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옆 건물에 비치는 제 모습을 찬찬히 살폈습니다. 제가 봐도 추하고 더럽더라고요. 전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에 나뒹굴고 있는 구인광고신문을 집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그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의 시선대신 안목을 신경 쓰게 되었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5년 정도 흘렀을까요. 전 정말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답니다. 가무잡잡한 피부와 점 딱지가 더덕더덕 달라붙어있던 피부는 그녀만큼이나 눈부시도록 하얗게 변했고 흐리멍덩하던 순진한 눈망울도 강하고 날렵하게 변했죠. 그러나 겉모습에 반대될 정도로 더러운 짓도 많이 했답니다. 덕분에 장기 하나가 날아가는 고통도 겪었고요. 그러나 그 결과는 정말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답니다. 뒷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장소에서도 저의 권위와 재물은 빛을 발산했답니다. 이젠 제가 그녀를 데려올 차례였지요. 황금으로 장식된 벤츠와 은실로 짠 카펫을 깔고 두 손에는 값진 보석으로 장식한 관을 들고 그녀를 마중 나가야 할 때였지요.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답니다. 꿈에서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다른 남자의 손에 잡혀가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항상 그 순간을 꿈꿔왔답니다. 그녀를 이 두 품안에 안는 그 날을…….


    수소문 끝에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을 알아냈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그녀는 분명 부잣집으로 이사를 갔다고 들었는데 그녀가 사는 곳은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질 것 같아 보이는 달동네였습니다. 전 옛날의 제 모습을 회상하며 하늘 끝까지 뻗어있지만 바스라질것만 같은 콘크리트 계단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오늘 아침 깨끗하게 닦은 구두가 시멘트 가루에 더러워졌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그녀는 내가 이렇게 더럽다 해도 절 이해해 주겠지요. 그렇게  몇 대의 전봇대를 지나고 거기서 거기 같아 보이는 판자촌들을 지나 그녀가 사는 집의 낡은 철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아아,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림자. 그녀였습니다. 겉모습은 많이 변했을지라도 변하지 않은 그녀였습니다. 나를 보고 놀란 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그녀를 품에 안았습니다. 전보다 더 가늘어진 그녀의 손목이 가느다랗게 떨렸습니다.

    “ 내가……데리러 왔어요. ”
    “ 5년 전, 폐차장에서의 그 분, 맞죠?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

    그녀는 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저 혼자만의 사랑이 아니었죠. 그 사실에 전 피가 끓을 것 같은 기쁨에 그녀를 더욱 더 힘껏 끌어안았고, 그녀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전 그렇게 그녀와 함께 콘크리트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혹시나 신께서 그때처럼 저를 미워하는 마음에 계단을 바스러뜨릴 것 같아 걱정했지만, 그 역시 절 인정해 주셨는지 저와 그녀는 안전하게 그 동네를 빠져나왔습니다.

    “ 저기……제 남편은 어쩌죠? ”

    그녀의 말에 전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입으로 다른 남자를 거들먹거리는 것이 싫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 그가 걱정되는 것입니까? ”
    “ 그게 아니라……그가 절 찾으러 올 거예요. 전 그 사람에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5년 동안 그에게 맞은 상처가 아직도 낫지 않고 있어요. 절 부디 보호해 주세요. 그가 절 찾을 수 없도록…….”

    전 그녀의 대답에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녀는 그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나만의 사람, 나만을 기다리는, 나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 주었습니다. 다시는 그가 세상 빛을 볼 수 없도록 아주 음밀히…….





    그렇게 그녀와 전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5년 전 사랑스러운 도시의 아가씨로 꾸며주었습니다. 그 죽일 놈 때문에 거칠어진 그녀의 살결과 검게 타버린 피부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아 주었습니다. 푸석푸석하고 끊어질듯 약해진 머리카락 역시 예전과 같이 검고 윤기 나던 머리카락으로 돌려놓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부모들이 그녀를 다시는 간섭하지 못할 만큼의 돈을 지불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될 날들만을 꿈꾸었습니다.





    그 후로 10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이 함께 있는 순간순간이 행복했습니다. 전 전보다 더 아름다워진 그녀에 버금가도록 더욱 더 높이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그녀의 미모를 만족시켜줄 수 있도록 더욱 더 많은 재산을 모았고, 누구보다도 지적인 그녀에게 걸맞도록 더욱 더 높은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본다면, 전 그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경찰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녀가 그들을 보며 두려워하고 있었기에 전 소리 지르며 저항했죠. 그러자 그들은 제 두 손목에 체인으로 연결된 은색 고리를 채웠습니다. 그녀는 끌려가는 저를 보며 눈물을 흘리며 따라오려 했으나 그들이 그녀를 막았습니다. 감히 그녀를 울리다니……!


    형사들은 저에게 그동안 뒷세계에서 거래하던 일이 전부 다 들통 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녀를 데려갔던 그를 없애도록 한 일까지도 말이죠. 그래서 교도소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겐 그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재물과, 권력이 있었으니까요.


    그녀에게 연락을 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그녀가 예전처럼 누군가에게 납치되어있을까 걱정이 된 나머지 사람을 시켜 그녀를 찾도록 하였습니다. 며칠 뒤, 그녀의 소식을 전해들은 저는 충격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경찰들에게 잡혀간 이후로 재산을 들고 다른 나라로 도망쳐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녀는 다시 제가 돌아올 동안 제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그랬던 거겠지요. 우리의 사랑이 이렇게 얕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제가 옳지 못했던 것이었을까요? 그때 그 낡은 콘크리트 계단이 무너졌어야 했었던 걸까요?


    저는 어지러운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을 시켜 그녀를 제가 있는 교도소 감방으로 데려오게 했습니다. 물론 교도관들에게 돈을 먹여 데려오게 한 것은 말할 것도 없죠. 그렇게 그녀와 마주했습니다. 그녀는 울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전 말없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제 품에 안겼습니다.





    아, 어쩌면 이렇게 아련할 수가 있을까요! 은은하게 비추는 달빛을 받아 빛나는 그녀는 세상 누구보다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녀가 설령 저를 배반했다 할지라도 뭐든지 다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울고서야 그녀는 제 얼굴을 보았습니다. 전 두 손으로 그녀의 작은 어께를 감쌌습니다. 그리고 그 작고 붉은 입술에 저의 거칠어진 입술을 살포시 포갰습니다. 그녀의 눈물이 제 볼에 묻어 흘렀습니다. 아아, 죽어서도 기억할 나의 사랑하는 사람, 내 모든 걸 포기해도 좋을 거라던 맹세, 지금에서야 지키게 되는군요. 그렇게 저는 달빛의 장막을 피해 어둠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오랫동안 지켜보았습니다.





    이제 제 역할은 끝났습니다. 며칠 전 그녀는 제가 저질렀던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끝까지 그녀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제가 없는 세상에서 혼자 남을 그녀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폐차장 너머로 보이던 그녀의 모습을. 그녀는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평생 그녀의 순수한 모습을 그대로 지켜주고 싶었는데…….


    저는 오늘 밤 그녀와 마지막 만났던 달빛 아래에서 결심을 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나가려는 결심을요. 전 죄가 없기 때문에 여기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오직 죄가 있다면, 입에 발린 말처럼 들리겠지만 그녀를 사랑한 죄밖에 없겠지요. 내 몸뚱이는 여기에 두고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의 영혼만은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 몸을 그녀 곁으로 갈 수 없겠지만 나의 영혼만은 영원히 그녀를 지킬 것입니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나의 이 마지막 글을 발견하신 분이 계신다면 부디 아름다운 그녀에게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평생 한 사람만을 바라본 미천한 남자의 마지막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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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ppy Birthday To 유시
    생일은 엄청 지났지만 그래도 생일 축하해요 -

    길진 않지만 나름 열심히 썼어요
    그리고 아마 앞으로 내 소설은 줄칸 심하게 나누지 않을것 같아
    왠지 그게 날 위해서라도 나을 것 같으니까 -

댓글 4

  • [레벨:5]id: 이엔[EN]

    2007.09.16 21:26

    아, 맞아..
    나 세츠꺼 까먹고 있었ㄷ <님
  • [레벨:3]감귤〃

    2007.09.17 01:47

    ..... 이엔말에 뜨끔했어 < 
  • 세츠군z

    2007.09.17 16:14

    됐어너희들
    아무튼 고마워 주인님
    괜찮은 소설이야
  • Profile

    [레벨:3]id: 유시안

    2008.02.22 16:20

    깜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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