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츠키는 힘이 빠진 자신의 오른쪽 발에 억지로 힘을 주었다.
그렇지만 번번히 발목 아래로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 이런 제길... 도대체 무슨 짓을 해 놓은거래... "
이제는 하다못해 왼쪽 발로 오른쪽 발을 건들여 봤지만, 감각 신경도 마비 됬는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 아, 젠장... "
텐츠키가 한숨을 내쉬며 다리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그만두고, 옆에 쓰러져 있는 아일린을 깨우려고 했다.
손을 내리자니 앉을 만큼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힘도 안 들어가는 몹쓸 발로 서 있는 건 더더욱 무리.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양 팔로 쇠사슬에 매달려 성한 발로 여기 저기 때려보니 의자가 하나 있다.
다행이도 의자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고, 좀만 노력하면 될 것도 같았다.
찰칵.
" 응? "
" 고생하는 게 너무 안쓰러워서. "
아까 그 여자, 또 왔다.
이번엔 아까 여자가 들고 있던 등과 똑같은 모양의 등 세개를 벽에 걸어 주었다.
그러자 바깥처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밝아졌다.
여자는 등을 건 다음 의자를 텐츠키에게 가져다 주었다.
텐츠키는 의자에 털썩, 앉아 기지개를 쭉- 폈다.
" 어때, 볼만 하지? "
" 응, 괜찮네. "
텐츠키는 여자에게 반앙하기 싫어진 건지, 귀찮은 건지, 뭔지 알 수 없지만 고분고분히 여자의 말을 들어 주었다.
여자도 그런 텐츠키가 싫어지는 않았는지, 방 구석, 벽에 건 등으로도 가시지 않은 어둠 속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조작하더니 텐츠키의 팔이 툭- 하고 떨어졌다.
" 그 정도로 고분고분 해졌으니까 풀어줘도 괜찮을 것 같아서. "
" 오, 쇠사슬은 떨어졌네. "
" 족쇠는 계속 차고 계셔. 그리고 여기서 도망치려는 미련한 짓은 삼가 해주고. "
" 근데 너희 정체가 뭐야? "
" 정체? 어느 쪽을 말하는 건데? "
여자의 의미심장한 말에 텐츠키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여자도 자신이 한 말이 뭔가 이상했음을 알아 챘는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 됬다, 우리 정체따윌 생각하기 전에 저 도련님 먼저 깨워라. 뭔 도련님이 저렇게 잠이 많아? "
" 그러지. "
" 그럼. "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순식간에 여자의 기척은 사라졌다.
모습은 분명 텐츠키 앞에 있는데... 무생물과 같이, 단 한줌의 기척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 이 기술은, 너희도 Rubil도 배울 수 없는 거니까 포기하시고 다음 지시까지 기다려. "
여자가 다시금 입을 열자, 기척도 되살아 났다.
완전히 살아난 건 아니였지만, 기척이 없다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희미하게 되살아 난 것이다.
" 뭐? 다음 지시는 또 뭐야? "
" 시끄러, 닥치고 주무셔요. "
여자는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살포시 올려준 뒤, 다시금 기척을 지우고 어둠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졌다.
텐츠키는 여자를 빤-히 처다보고 있었지만, 그 기술이 무엇인지도, 여자의 정체가 뭔지도 알 수가 없었다.
" 이 꼬맹이는 언제 일어나. "
" 나 일어났으니까 닥쳐. "
" 뭐냐, 세츠냐? "
" 아일린은 깊이 잠들었어. 아무래도 한동안 일어나지 않을 모양인가 봐. "
" 불면증 환자가 치료 끝내고 자는거냐? "
" 아일린에 대해서 쓸데없는 말하면 나한테 죽을지도 몰라요, 세이씨. "
세츠가 존댓말을, 그것도 이름이 아닌 성을 부르면서 이야기 할 때는 정말로 입닥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정말로 목이 날라갈지도 모르니까.
" 여기가 어딘지는 알겠어? "
" 알면 이러고 있을까. "
" 하긴, 행동파 텐츠키가 이러고 있는데는 이유가 있겠지. 발은 괜찮아? "
" 별로. "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이렇게 밀실에 갇혔다는 사실은, 두 사람만이 이 세계에 있다고 생각 될 정도로 함께 있다는 사실은, 본부가 아닌 곳에서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 여기를 강행돌파 할까, 아니면 가만히 있을까? "
" 그냥 있는 편이 좋겠지. "
" 그래, 그래. "
두 사람은 어색한 침묵으로 이야기를 끝 마쳤다.
" 후, 이 놈의 기억은 왜 이렇게 뒤죽박죽이야. "
키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푸른빛이 감도는 타이트한 흰색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가 어딘가를 찾고 있었다.
골반까지 내려오는 갈색의 긴 머리칼은 아름답게 웨이브가 져 있었고, 손에는 진검인지 가검인지 알 수 없는 칼 한자루가 들려 있었다.
" 길이라도 물어봐야 하려나... "
" 아가씨, 뭘 그렇게 찾으시나? "
" 네? "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은 뒷골목 패거리.
Rade나 Rubil 같이 조직으로 뭉쳐진, 그리고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 단순히 사람들을 겁주고 돈 빼앗기를 좋아하는 그런 패거리인 것이다.
그녀는 생각하면서 걷다가 그만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 실례 했습니다. "
그녀는 꾸벅, 인사를 하고 뒤돌아 가려고 했지만, 패거리 중 가장 몸집이 큰 남자가 그녀의 팔을 붙잡아 끌어 당겼다.
" 이, 이거 놔! "
" 에헤, 꽤나 부잣집 아가씨인 것 같은데~ 어디 돈은 얼마나 있수? "
히죽거리며 건들거리는 남자들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녀의 인상은 눈에 띄게 찌푸려져 있었다.
" 뭐야, 기분 나쁘다는거야? "
" 그럼 나쁘지, 안 나쁘겠어? 이딴 썩은 몰골을 보고 기분 좋아할 사람이 어딨겠어? "
그녀의 싸늘한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남자들은 잠깐 넋을 놔 버렸지만 이내 다시 돌아와서는 그녀의 팔을 세게 붙들었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 이거 놔. 안 놓으면 나도 어떻게 될 지 몰라. "
" 헹! 여자 주제에 무슨! "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남자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 뭐, 뭐야?! "
" 말했지, 손대지 말라고~ "
능글맞게 웃은 그녀의 손에는 피가 질척하게 배어있는 장검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 응? 무슨 피... 크헉...! "
남자들의 몸 여기 저기서 피가 뿜어져 나오더니 하나둘씩 픽픽, 쓰러져갔다.
피바다가 되어버린 땅 위에 서 있는 것은 그녀 뿐.
" 인간의 피 위에 설 수 있는 존재는 신뿐이야. 미천한 인간이 감히 신에게 손을 대다니, 너무 어리석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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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어버렸네요a
죄송하구요~
짧아서 죄송해요~
저여자도 좀 무서운걸. 그때 그 공원살인사건은 혹시 저여자인가!?!?!
사람의 피 위에 설수 있는건 인간뿐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