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엔이었다.
나는 너무 반가운 마음에 이엔쪽으로 달려가려고 발을 뻗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루넬누나가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았지만, 내 몸은 발쪽에서부터 서서히 굳어갔다. 내 표정도 창백하게 굳어갔다. 너
무 놀란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일어선 그 상태로 멈추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내 머리도 차갑게 식
어갔다. 얼마나 흘렀는지, 나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
- 기억하면 안되요. 당신의 앞날엔 해로움만 있을 테니까.
까만 머리, 까만 눈, 그리고 하얀 뿔테안경.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내 앞의 소년을 쳐다보았다. 루넬
누나는 분명 알아보겠는데 저 사람에겐 적의까지 느껴진다. 본능적으로,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 세츠! "
소년은 반가운 듯 날 쳐다보았지만 난 두 발짝 더 물러섰다.
"....왜그래?"
그제서야 이상함을 느낀 그 소년은 내 옆의 루넬누나를 쳐다보았다. 루넬누나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단 표정. 나는 그냥 루넬누나 뒤에서 그 소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소년의 두 눈동자엔
내가 맺혀 있었지만, 난 소년이 날 쳐다보는것조차 싫어서 한 발짝 더 물러섰다.
"..세츠. 분명 아까는..."
우리 세 사람은 혼란에 쌓여있었다. 아무도 해답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한 정적만이 우리 세
사람을 둘러싸고 있었다. 맨 처음 입을 연 건 루넬누나였다.
"아무래도, 세츠에게 무언가 일어난 것 같아."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여긴 일어날 수 없는 일들로 가득찬 세계야. 그런데 넌 누구?"
"제가 묻고 싶은 말이었습니다만."
"음... 나는 루넬 아르쉘. 보아하니 너도 세츠와 같은 곳에서 온 거 같은데. 맞아?"
"이쪽은 이엔 리프크네. 그런데 왜 나한테 말을 놓는거죠? "
"그럼 놔."
"응. 나는 세츠랑 같이 여행하던 차에 알 수 없는 일로 떨어졌어. 무슨 일인진 기억나지 않아.
같은 곳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 세츠가 기억못한다는게 이상해. "
이엔이라고 불린 소년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이엔은 한껏 당황한 표정이었다. 루넬누나 역시
비슷했고. 어쨌든 우리는 수천억 년의 텀을 지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부터 어긋나있었다. 이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나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두 사람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콰쾅, 하는 엄청난 충돌음과 함께 우리 세 사람은 각자 갈라졌다. 하얗기만 한 줄 알았던 공간이
지진이 일어날때처럼 갈라졌다. 어떻게 이렇게 세 조각으로 쪼개질 수 있는지 난감하던 차에, 지
하에서부터 알 수 없는 빛이 새어나왔다. 새하얀 공간에 오색 오로라가 흐르니까 예쁘다는 생각
전에 먼저 너무 눈이 아팠다. 그리고 그 사이로 누군가가 보였다.
"아앗, 여기 맞네.... 아! 반가워요. 이엔 님, 루넬 님, 그리고 세츠 님이죠?"
나보다도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는 하얀 모자를 쓰고있었다. 눈이 연한 초록빛에 연한 파란빛. 나
와 같은 오드아이였다. 어떻게 우리의 이름을 알고있는지도 몰랐지만, 이 새하얗고 끝없는 공간에
누군가 동행했다는 게 왠지 기뻤다.
"나는 아사카에요. 아사카쨩- 이라고 불러주면 더 기쁘겠지만. 음, 이건 내가
시스템을 깨고 들어오느라고..... 뭐뭐 하여튼, 여기는 앨리스가 만든 원더랜드에요.
시간과 공간이 애매하게 혼합되어버린. "
아사카는 씩 웃었다. 보조개가 한쪽밖에 없네... 하는 가벼운 나의 생각과는 달리 루넬누나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갔다. 이엔과 나는 어벙하게 있을 뿐이었는데, 루넬누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아사카가 말
하는 걸 듣다가 입을 열었다.
".....마츠자카 아사카?"
"엇, 어떻게 아셨어요? 아아- 루넬 님 세계에선 쫌 유명하죠? 그래도 입은 닫아주세요.
내가 하는 일은 안내, 그뿐. 앨리스의 원더랜드에서 출구를 찾아주시면 끝나요. 무한정한
공간은 아니거든요. 우주가 무한하지 않듯이. 헤헤. 그렇죠? 좀 오래 들어가긴 하지만 뭐.
아아, 가끔 가다보면 다른 분들을 만날수도 있어요. 그분들도 여러분과 같은 목적으로 길
을 걷고 있거든요. 내가 길을 설..."
"빨리 말 끝내고 좀 가라."
이엔이 나른하게 말했다. 저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말툰데. 생각하자마자 머리가 부서질듯 아파서
그냥 관뒀다. 아사카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지만, 다시 밝아졌다.
"응, 빨리 끝내드릴께요. 걷다보면 회색빛 공간이 나와요. 쭉 걸어가면 출구가 나오거든요?
여러분이 회색 공간에 도착하는 그 시점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해요. 완전한 암흑에 갇히기
전에 찾아주시면 게임오버. 여러분은 승자가 되는거죠. 그럼 알아서 잘 찾아가세요-"
하아, 우리들의 입에서는 동시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유도 모른채 계속 걸어야된
다는 의미.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싶었다. 그리고 힘들었다. 초콜렛, 사탕,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엄마. ............
"우선, 출발하자."
루넬누나의 말에 우리는 일어섰다. 이엔은 나를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는데, 그 시선이 왠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서 기분이 살짝 상했다. 나는 그런 이엔의 시선에 답하지 않고 앞만 본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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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짧네요 ㄱ-
세츠가 갑자기 기억을 잃었다거나 뭐 그런 설정 ㄱ- 아 어이없어라
<<<< 뭐 하여튼 그렇다는 얘기져.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나저나 유쿠 혼자 어떻게 됬을라나;
저번 소설에서 세츠는 유쿠를 기억했으니까 나만 기억 못하는건가!![덜덜덜덜]
아무튼 너무 재밌게 잘 봤어, [웃음]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