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편]악몽5(최유기 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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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 예전에 저보고 죽인다는 말 쓴 것 있었어요?

    응? 아니, 그런 적 없는데?

    흠칫하는 오정의 모습이 낯설다.

    내가 아는 오정의 모습이 아니다. 목소리 끝이 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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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계!"


    들어온지 얼마나 됐다고...

    오정이 방으로 들어온다.


    "왜요?"

    "나 좀 나갔다 올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라."

    "흠, 언젠 기다렸나요? 신경쓰지 말고 다녀와요. 이쁜 누나들이 기다리겠네요."

    "이봐! 거긴 이제 발 끊었다구!!!"


    발끈하는 오정의 모습에 팔계는 마치 어린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를 괴롭힐 때의 느낌이 들었다.


    "푸훗, 다녀와요."

    "그래, 금방 올게."


    웃으며 보낸 팔계였지만 마음 속의 불안은 점점 커가는 걸 느낀다.

    언제부턴가 오정은 비오는 날이면 잠시 나갔다 온다고 얘길하곤 외출하곤 했다.

    예전엔 비만 오면 그 좋아하는 이쁜 누나와의 잠자리도 거부하고 집으로 달려오던 사람이었는데...


    "휴우, 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겠지요. 그래도 빗소리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겠네요. 어떤 게 좋을까..."

    CD장에서 이것저것을 굴라보던 팔계는 마음에 드는 음악이 없는지 한숨을 내쉬며 자리로 돌아갔다.


    "간찰이라..."


    [간찰-선비의 마음을 읽다.] 팔계가 읽기 위해 꺼내는 책제목이었다.

    상대의 안부를 묻고 하려는 말을 일정한 형태로 정리하여 글로 적어보내는 것을 편지라고 한다. 전통시대에는 서신, 서한, 서간, 서찰,

    서장, 간독, 간찰, 척독이라 하였다. 우리말로는 유무, 이무, 덕은 것, 긔별, 발괄, 글발, 글왈, 글월이라고 했다. 근세 이후 규격화된 작은

    종이에 적는 편지는 엽서라고 하는데, 엽서라는 말 자체는 일본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전통시대의 편지로서 원래의 형태와 필적을 그

    대로 남기고 있는 것을 특별히 간찰이라 한정하여 부르는 경향이 있다. 간찰은 본래 죽간과 목찰에 작성한 글이란 뜻인데, 종이에 적

    거나 비단에 적은 편지를 모두 가리킨다. 따라서 간찰이란 말은 꼭 원래의 형태와 필적을 지닌 편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시

    대의 편지를 모두 포괄할 수 있다.

    전통시대의 간찰은 교제의 미학을 담고 있다. 한 영혼이 다른 영혼과 관계를 맺기 위하여 모색하는 긴장이 느껴진다. 간찰은 일정한

    형식을 갖추면서도, 그 형식을 뛰어넘어 작성자의 표정과 태도를 생동감 있게 드러내준다. 그런데 어떤 간찰은 작성자 스스로의 손에 의

    해, 혹은 후대 사람들에 의해 정리되어 문집이나 서간집에 수록될 때 의도적으로 변형되거나 절록되는 경우도 있고, 부주의로 잘못 편집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간찰은 어떠한 것이라도 모두 형식의 구속과 수사적 일탈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작성자의 숨결과 생각

    의 편린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작품인 것이다. 간혹 간찰 한 장이 우연히 남아있다면 필적 자체 또한 '드라마'가 된

    다. 곧 그 필적은 작성자의 얼굴이 되고 음성이 되는 것이다.

    팔계는 그런 종류의 글들을 좋아했다. 겉으로는 근엄해보이고 찔러도 피도 안 나올 것 같은 사람의 이면에서 보이는 나약함, 어리석음,

    어리광 같은 것들... 어쩌면 그것은 팔계 자신의 모습일는 지도 몰랐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찌뿌드드해진 몸에 활력을 주기 위해 일어난 팔계는 부엌으로 나가 냉장고를 열어 끓여놓은 녹차병을 꺼냈다.


    "어라, 아직 안 들어왔네?"


    시계는 어느덧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전용컵에 녹차를 따른 팔계는 남은 책을 더 읽고 자기로 마음 먹었다.

    창 밖엔 아직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흠, 비는 언제쯤에나 그치게 될까요, 기청제라도 지내야 할까봐요..."


    문득 팔계는 자신이 평소보다 말이 많아졌다는 생각을 하곤 피식 웃는다.


    "훗, 비 때문이겠지요. 내가 생각해도 웃긴 건 사실이네요. 어디까지 읽었더라...아!"


    읽던 곳을 찾았나보다.

    어느 덧 책도 후반부를 달리고 있었다.

    새벽 세시. 오정은 아직도 함흥차사다.

    팔계는 조금씩 가셔지기 시작하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다시금 불안해 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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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위의 간찰에 대한 설명은 고려대 심경호 교수님께서 지으신 [간찰-선비의 마음을 읽다](한얼미디어)에서 발췌한 부분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기청제는 기우제의 반대의미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비가 많이 올 때 그만 오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제의이지요.

    역시 가방 끈 긴 팔계답게 전문용어가 나오는 건지...

    그리고 이 글의 저작권은 오징어빨개에게 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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