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연 絶戀 - 『 第一章 천리향 』
  • [레벨:7]id: 라퀼
    조회 수: 1682, 2011-08-30 14:32:02(2011-08-18)
  • 절연 絶戀




    잔잔한 물결에 나비가 내려앉았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결에 매혹(魅惑)되어 끌리듯 내디딘 끝은 죽음일지어니 날개가 물에 젖어 잠시간 퍼덕이던 나비는 아연(俄然)히 그대로 깊고 깊은 심연(深淵)속으로 추락하였다. 하나의 생명이 꺼진 시점. 허나 호수표면은 늘 그러했듯 잔잔하고 적요(寂寥)할 따름이다.





    『 第一章 천리향 』





    본디 하늘 나라라함은 일반적으론 보이지 않는 천상(天上)에 위치한 곳. 그곳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었으니 위로는 한명의 군주(君主)를 모시며 아래로는 천계인(天界人)이라하는 뭇사람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 가유백賈流魄은 본관은 평주(蓱州), 자는 외연(嵬延)으로 주경(珠京)의 아들이다. 장대한 체격에 까무잡잡한 피부로 매우 강인해보이는 것이 과연 왕의 곁을 가장 근접한 곳에서 지키는 무인다웠다. 지금 그는 눈 앞에 쓰러져있는 한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 흐음, 어쩐다. ”



    큼지막한 손으로 턱을 어루만지며 사내를 보던 가유백은 이내 그를 어깨에 짊어지곤 걸음을 돌렸다. 유백이 도착한 곳은 그리 크지 않은 저택.  귀족의 신분을 갖고 있다하나 궁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있기에 궁 밖에 마련한 집은 크기만 좀 더 클 따름일뿐, 일반 서민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보였다. 문을 퍽차고 들어가 한 쪽에 사내를 내려놓았다. 이불을 펴 그 위에 가지런히 눕혀놓으니 사내라기보단 소년같은 얼굴을 한 남자가 보인다.



    “ 유백님, 있으십니까? ”

    “ 들어오시게. ”



    온화함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옴에 유백은 즉시 문을 열었다. 유백의 짧은 머리카락과는 달리 짙은 남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반으로 묶은 채 한 손에는 장검을 다른 손에는 술병을 든 남자는 거침없이 유백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 이 사람은? 혹 유백님의 아우십니까? 전 유백님께 아우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



    누워있는 소년을 보자마자 하는 말에 유백은 손을 홰홰 젓는다.



    “ 그럴 리가 없지않은가, 연원. 길에서 주웠다. ”



    눈을 한차례 끔벅이며 유백은 말하였다. 유백의 말에 연원緣湲은 설핏 웃는다.



    “ 서향화의 향기에 끌려 발을 옮긴 곳에 이녀석이 있었다. ”

    “ 한 마디로 몹시도 수상한 자라는게로군요. ”



    때마침 남자의 눈꺼풀이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연원의 손이 검으로 향한다.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예기(銳氣)에 유백은 연원의 손을 내리 눌렀다.



    “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이에게 그리하는 것은 예가 아닐세. ”



    단호한 유백의 눈빛에 연원은 손을 제자리로 돌렸다. 그 사이에 남자는 아니, 그 소년은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순간 벌떡 일어났다. 옆을 돌아본 눈은 놀란 듯 크게 뜨여져있었다.



    “ 여긴.. 어딥니까..? ”

    “ 그전에 구해준 이에게 이름을 밝히는게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



    아까 예기를 흘리던 치가 누구더라 싶을정도로 금새 눈빛을 누그러뜨린채 다정히 소년을 바라보는 연원의 모습에 유백은 허허롭게 웃었다. 소년은 본인의 이름이 가온이라 하였다. 어찌 그런 곳에 쓰러져있었냐는 물음엔 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말 할뿐이다. 그렇게 몇 차례의 질답(質答)이 오간 후 연원은 유백을 밖으로 불러내었다.



    “ 어딘가 이질감이 든다 싶었는데 중계인(中界人)이었나봅니다.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

    “ 어차피 갈 곳 없는 아해라면 그냥 이대로 두어도 나쁘진않다고 생각한다. ”

    “ 유백님이라면 그러하실것 같았습니다. ”



    연원의 말에 그는 그저 웃고만다. 천계에 잠시간이라도 머무른 이상 아랫세상의 공기는 이젠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닌 독이 될뿐이다. 그를 앎에 유백은 가온을 본인이 맡겠다하였다.



    “ 유백님과 모처럼의 여유로운 시간에 약주나 한 잔 하려했으나 날이 도와주질 않는군요. 잠시만 있다가려했는데 본의아니게 늦어져버린고로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

    “ 미안하게 되었네. ”

    “ 그런뜻으로 드린 말은 아닙니다. ”



    연원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곤 가볍게 인사한 후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천상의 왕이라하여도 그저 천계인들을 굽이 살피어 다스리는 존재일 뿐. 세상사 만물을 만들어낸 자는 아니란 소리에 가온은 눈을 땡그랗게 뜨고서 이야기를 듣는다.



    “ 그러한 분은 천제님이시지. 하지만 천제님을 뵙긴 힘들다하더라. 나도 뵌 적이 없어. 환랑님은 자주 뵈었다 하시던데. ”



    바위 위에 올라앉아 두 다리를 흔들며 말하던 하린河潾은 훌쩍 바위위에서 뛰어내렸다.



    “ 그럼 가온오라버니. 난 이제 청화淸華님 단장을 도와드리러 가야하니 다음에 보자. ”

    “ 그래, 다음에 보아. ”



    가온은 금방 바람처럼 뛰어나가는 하린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 곳 천계에 있게 된지 어느덧 십여일 가량의 시간이 지났다. 유백을 따라 궁에 입성하여 딱히 직위가 주어진건 아니지만 그 곳에 머무를 수 있게되었다. 하는 일은 주로 중계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반대로 여러 이들에게 천계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이 주로 가온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가온이 느낀 천계란 그야말로 평화롭고 고요하다. 본디 저가 살던 세상은 굶주림에 허덕이며 헐벗은 자들이 난무하며 권력을 쥐고 횡포를 부리는 자들과 끝없는 전쟁들. 그리고 그 끝에. 무언가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느낌에 현기증을 느끼며 가온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상하게도 자신이 천계에 오게된 일과 관련해 기억을 떠올리려하면 안개가 낀 것처럼 무언가가 생각을 막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연원님이 괜한 기억은 떠올리지않는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하였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어떤 연유로 오게된건지는 알 수 없어도 현재 자신은 이 곳에 있지않은가.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드넓이 피어있는 꽃들.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시냇물. 천상의 아름다움을 몸소 느끼며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순간 어디선가 그윽한 향이 흘러왔다. 가온은 자신도 모르게 향을 따라 움직였다.



    흐드러지게 만개한 서향의 향기가 골을 울릴 듯 진동한다. 길게 퍼진 옷자락이 땅에 끌리는 것도 의식하지 않은 채 여인은 몸을 숙여 꽃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 해류님은 서향화가 몹시도 좋으신가봅니다. ”

    “ 그윽한 향을 품은 흰 꽃잎이 너무도 예뻐서. ”



    마치 꽃과 같은 그윽한 미소다. 곱고 가녀린 손으로 백서향을 닿을듯 말듯 쓰다듬는 손길이 몹시도 조심스럽다.



    “ 새별은 서향화의 꽃말이 무언지 아니? ”

    “ 꽃말이요? ”

    “ 그래. ”



    그녀의 질문에 새별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어보인다.



    “ 꿈속의 사랑. ”



    미소와는 달리 서늘한 눈빛. 해류의 손에 백서향이 뚝 하고 끊겼다.





    사청사우 乍晴乍雨 -김시습

    乍晴乍雨雨還晴(사청사우우환청) : 잠깐 개었다 비 내리고 내렸다가 도로 개이니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 하늘의 이치도 이러한데 하물며 세상 인심이야

    譽我便是還毁我(예아편시환훼아) : 나를 칭찬하다 곧 도리어 나를 헐뜯으니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 명예를 마다더니 도리어 명예를 구하게 되네

    花開花謝春何管(화개화사춘하관) :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을 봄이 어찌 하리오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불쟁) : 구름이 오고 구름이 가는 것을 산은 다투질 않네

    寄語世人須記認(기어세인수기인) : 세상 사람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알아두소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 : 기쁨을 취하되 평생 누릴 곳은 없다는 것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시작은 달콤히 간결하게- :)
    주인공이 가온인건 아니랍니다. 매번 달라져요 ^^

    서향꽃은 봄에 피는 백색과 자주빛의 아름다운 꽃으로 독특한 향기로 인해 정원수나 조경수로 많은 사랑을 받는 수종이랍니다 :D


    보너스, 서향에 관한 전설

    옛날에 어떤 스님이 봄기운에 취해 깜박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잤을까. 꿈인듯 아닌듯 몽롱한 가운데 기분이 매우 좋아지는 향기를 맡고 스님은 그 향기를 따라 길을 나섰다. 이윽고 스님은 꽃나무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깊고 그윽한 향기가 도무지 이승의 것 같지가 않았다. 스님은 잠결에 발견한 향기로운 나무라는 뜻으로 '수향(睡香)'이라고 이 꽃나무에 이름을 붙였다가 그 향기에 끌리는 바가 매우 커서 다시 '상서로운 향기'라는 뜻의 '서향(瑞香)'으로 이름을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 전설에서 유래한 천리향의 꽃말이 '꿈속의(달콤한) 사랑'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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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해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기본적인 예의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 
    - 초면에 경어사용은 기본입니다. 서로의 허락하의 평어가 아니라면 평어는 쓰지도 받지도 않습니다.

     

댓글 18

  • [레벨:6]id: 여해류

    2011.08.18 17:06

    엄허...//ㅅ//
    뭐랄까...
    일단 가벼운 도약인건가?!ㅎ
    음...
    끝의 시는 앞을 암시?!ㅋㅋㅋ<이러고 있다...;;
  • Profile

    [레벨:7]id: 라퀼

    2011.08.18 17:14

    가볍게 가볍게 가야해 :9
    언제 무거워질지 몰라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시는- 종종 나올거야 (웃음)

  • [레벨:3]첼로와 Cello

    2011.08.18 17:12

    동양풍의 소설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걸? 앞으로도 재미난 전개를 기대할께~ :)
  • Profile

    [레벨:7]id: 라퀼

    2011.08.18 17:15

    응응, 나도 오랜만에 써보는거라 되게 낯설고 헷갈려 ;ㅁ;
    열심히 연재할게~ :D
  • [레벨:3]id: oO天留魂Oo

    2011.08.18 17:12

    오호오호-!!! 이런 분위기로 시작하는거구나ㅎㅎ
    나도 얼른 프로필을 보내야겠어!!
  • Profile

    [레벨:7]id: 라퀼

    2011.08.18 17:16

    원래 써놓은 시작부분은 따로 있는데 아마 그건 중간에 들어갈듯 ;ㅅ;
    처음부터 무거우면 왠지 부담스러워서 ㄷㄷㄷㄷ
    응응, 옌양  프로필 기대하고있을게 >ㅁ<

  • [레벨:3]id: arte

    2011.08.18 20:31

    완전 재밌을거 같아서 기대되네요 ㅋㅋ
    수능 끝나고 모아서 읽어야 될 것 같다는 아쉬움과 수능 끝나고 할 즐거운일이 생겼다는 기쁜마음이 교차하며
    소인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ㅎㅎㅎ
  • Profile

    [레벨:7]id: 라퀼

    2011.08.18 22:18

    앑소녀가 수능보고 돌아오는 그날까지 열심히 많이 써둘게!!
    랄까, 과연 몇편이나 올라오게될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 [레벨:3]세례자

    2011.08.19 00:10

    헤에~~ 드디어 나왔구나~~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 퀼양 다음도 기대할게!!+_+

  • Profile

    [레벨:7]id: 라퀼

    2011.08.19 00:14

    그러고보니 례자언니는 한자 많이 알지? +_+
    뜻 좋은 한자 있으면 좀 알려주어, (헤싯)
    랄까, 응응, 여...열심히 쓸게 ;ㅁ;ㅁ;ㅁ; 으허허허헛
  • [레벨:1]id: serecia

    2011.08.19 01:47

    1빠로 나왔어!
    오오 분위기 좋다 이거! ㅋㅋㅋㅋ
  • Profile

    [레벨:7]id: 라퀼

    2011.08.19 01:49

    첫출현의 승리감인가 ㅋㅋㅋㅋㅋ
    지금 소설 쓸 생각안하고 이미지 구상중 ㄷㄷㄷ
    원래 시작은 좀 달달하고 포근하게 하고싶었는데 T^T
  • [레벨:2]Arkept

    2011.08.19 02:29

    오오... 퀼양 동양풍도 이렇게 완벽하게 소화할줄이야...
    정말 분위기있게 잘 썼네... 아 소설 문체 이쁜 사람 너무 부러운거 같아...
    다음 내용도 기대하고 있을께!!
  • Profile

    [레벨:7]id: 라퀼

    2011.08.19 02:49

    어색한 부분도 많고 반복되는 구절도 있어서 ;ㅁ;ㅁ;ㅁ;
    원하는 분위기는 다소 안나온편이지만-
    힛, 다음엔 내가 만족할 수 있도록 열심히 쓸게 :)
  • Profile

    [레벨:2]id: HiMe☆

    2011.08.19 23:17

    우아아... 역시 고퀄리티야~~!!

    근데 주인공이 없단게 정말 사실?! 사실 안정하고 전개하다 앗! 얘가 마음에 드네 하고 주인공 시키는게 아닐까

  • Profile

    [레벨:7]id: 라퀼

    2011.08.20 03:41

    후이, 과찬은 금물 (웃음)
    주인공이 아예 없는건 아니지만- 실제로 아직 남주의 이름을 못받았어 :9
    랄까, 그렇다보니 본 스토리가 시작된건 아니라서 현재로서는
    그때그때마다 주연이 다르달까나 :)
  • [레벨:2]TaRaZed

    2011.08.25 14:45

    ㅋㅋㅋㅋ이걸 읽고 소설을 재연재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엌ㅋㅋㅋ
    글이 너무 고퀄이야 ㅠㅠㅠㅠㅠ 나한텐 이제 아리도 없는데 ㅠㅠ
  • Profile

    [레벨:7]id: 라퀼

    2011.08.30 14:32

    안돼, 오라버니 소설 기다리고 있었다구 ㅠㅠㅠㅠ
    고퀄이라니 이런 개연성없는 글이 무슨 .....ㄷㄷㄷ
    자, 올릴거라 믿는다 ? ^^ 안그러면 캐릭터 망가질지도 몰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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