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어느날 비오는 날의 밤
  • 『후예』
    조회 수: 1800, 2008-02-06 04:16:58(2007-12-27)
  • 비가 지저분하게 내린다.



    번리는 어디로 나간 것 같다.



    집 안엔 나 이외에는 다른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어차피, 번리와 그렇게 신경쓰고 사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어딘가의 빈 집을 털 때나, 그럴 때 함께 움직일 뿐이었다.



    아마, 그 녀석이 나같은 반요가 아닌 '진짜' 요괴였기 때문에 괴리감이 드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사회에서 버림받는 상황은 같다 해도, 나와 번리는 그 근본부터가 달랐기 때문에,



    그 녀석이 아무리 내게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도,



    결국은 어디까지나 그렇게 해주는 '척'일 뿐이란 것을, 은연중에 알게 된다.



    어차피, 자신의 고통 따위, 타인은 알아주지 않는다. 그저 이해해주는 척을 할 뿐이다.



    다들 자신의 고통에 연연해있을 뿐이다.





    "........"





    지금이라도 밖으로 나가 술집에 가서 여자 한 명 데리고 와서 하룻밤을 같이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귀찮다.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꺼내 마시기도 귀찮다.



    아마, 구질구질하게 떨어지는 비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그저 내 방 침대에 드러누워 멍하게 불켜진 하얀 천장을 바라만 보고 싶었다.













    [후두둑ㅡ 후둑ㅡ]





    어렸을 때부터, 비오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하룻밤 잘 곳을 찾아다니던 어릴적 나에게, 비오는 날은 천적과 다름없었다.













    [후두둑ㅡ 후두둑ㅡ]





    빗줄기가 창문을 치고 아래로 미끄러져 내린다.



    그 연속적인 소리가 나를 잠에 빠져들게 했다.



    눈이 완전히 감길 때 쯤, 누군가가 [똑똑]하면서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얕은 잠기운이 확 달아나버렸다.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켜 대문을 향해 소리질렀다.





    "밖에 누구야?"





    번리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알고 있었다. 그 녀석은 절대 대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소리질렀을 때, 밖에선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잘못 들었나.. 어쩌면 바람이 불어서 돌이 쓸려다니다가 대문을 쳤는지도 모르겠군.



    다시 침대에 누우려 하는 순간 다시 한번 들려오는 대문 두드리는 소리.





    [똑똑]





    이번엔 제대로 들은 것 같아서, 몸을 완전히 일으켜 현관으로 걸어 나온다.





    "누구야? 밖에."





    "아, 밤늦게 죄송합니다. 비를 좀 피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남자의 목소리.





    "미안하지만, 난 집에 남자는 안들여. 딴 데 가서 알아봐."





    그러자 문 틈으로 조금 뒤에 들려오는, 안타깝다는 느낌의 목소리.





    "아..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이제야 술잔을 같이 기울일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공짜술을 마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별다른 생각 없이 바로 문을 열어버렸다.





























    그 사람이 샤워하러 화장실에 들어간지 5분이 지났다.



    우산이 없었던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 젖어있었다.



    무슨, 승려인지...



    삿갓을 쓰고, 유카타같이 생긴 검은색 옷을 입고, 양 어깨엔 글자가 쓰여진 종이를 걸치고 있었다.



    30대 초반정도의 얼굴이었던 듯 싶다.



    무슨.. 승려라니.. 승려같은 사람이 우리 집에를 다 오다니.. 내참,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나온다.



    성직자같은 것. 정말 이상한 직업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중생을 구하겠다고 발악을 한다.



    결국은 타인도, 자기 자신도 최후는 좋지 않게 끝난다.



    비웃음의 웃음을 띄웠더니, 그 순간 뒤에서 이방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엇이 그렇게 재밌습니까?"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놀라서 어깨를 크게 들썩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놀래켰나요."







    "아, 아니.. 아무것도."







    "그렇습니까.."











    남자는 검고 긴(길었다 해도 겨우 어깨에 닿을 듯한 길이였지만)머리카락을 닦으며



    짐에서 술병을 꺼냈다. 아까 비때문에 물방울이 튀긴 안경을 닦아서 다시 쓰며, 천천히 술병을 열었다.















    또 정적이 흘렀다.



    빗방울이 창문을 치는 소리,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하나하나 자세히 들려온다.



    그러한 침묵을 깬 것은 그쪽이었다.





    "인간이란 생물은 참 이상해요."







    "에?"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안죽고 엉뚱한 사람이 죽어나가더군.."







    "아..."







    연결이 되지 않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어봤지만,



    저 녀석은 그러한 나를 보지 못했는지, 아니면 무시하는 건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정말.. 달빛같은 사람이었어요.



    남의 어둠을 강렬히 비춰주지 않았지요.



    단지, 은은하게 세상을 비춰주면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러한 달이 태양을 키우고 있더라구요. 만물을 강렬하게 쏘아 밝히는 태양을.



    전 두려웠지요. 그 아이가, 달보다 강해져서 만물을 강렬하게 비춰버릴까봐.



    은은한 달빛이 사라질까봐 두려워서....



    그래서, 자객을 보내서 태양을 없애버리려고 했지요. 그런데..



    그 사람이 태양을 감싸주더군요. 그리고, 태양 대신 죽어버리더군.."









    "........"











    " [달]은 참 희안한 게, 어두우면서도 밝아.



    그 두 상반된 이미지 때문에, 달이 더욱 빛나보이는 것일지도 모르죠.



    저는 그 두 이미지 중, 밝음에 끌렸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그 사람이 죽었을 때, 나는 그 사람을 기리기 위해



    그가 가지고 있던 빛을 취하려 했지만,



    그 빛도 두려웠는지, 결국은 익숙한 '어둠'을 취해서 양 어깨에 걸치고 말았죠."













    자조인지도 모른다. 저 자의 어렴풋한 미소.



















    어느 새 술병은 비었다. 밖은 여전히 빗줄기가 떨어지고 있다.









    "죄송하지만, 어디 잘 곳을 좀 빌려도 될까요? 옷도 말려야 하고.."









    "에.. 그럼 저 방을 쓰는 게 나을거야."









    하면서 나는 내 방을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그럼 죄송하지만 먼저 들어가 쉬겠습니다."





    피곤한 웃음을 지으며 남자는 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나도, 여러가지를 생각하다가 서시히 고개를 떨구며 잠에 빠졌다.







































    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었다.



    커튼을 친 창문으로 빛이 조금씩 새어나왔다.



    내 방으로 들어갔을 때, 남자는 없었다.



    꿈인가, 생각하면, 그건 아니었다.



    술병은 없어졌지만, 술잔만큼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빛이 두려웠어요]









    그 남자의.... 그 말의 어조와 목소리가 그대로 머리 속에 남아 맴돌고 있었다.



    무의식 중에 창문에 가까이 가서 태양빛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뒤로 걷어냈지만,







    "!!"





    아침의 태양임에도 불구하고, 그 빛은, 자칫하면 눈을 멀게 할 정도로,





    매우 강렬했다.













    그리고 다시 커튼을 쳤다.



















    [빛이 두려웠어요.]





    남자의 말이 다시 소생한다.



    아마 나도, 그와 같이, 태양이... 내 어둠을 내리쬐는 태양을 무서워하는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자조섞인 생각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번리때문에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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