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늦은 후회
  • 조회 수: 712, 2008-02-10 14:49:09(2004-02-14)
  • ( 2000.2.14 )



    내 눈이 나빠진건지, 하늘이 뿌옇게 흐려진건지 알 수 없었다.



    " 삼장... 삼장, 집에 있는거야? 억, 담배연기- 그만 좀 피우라니까. "



    오공의 목소리가 들리자 습관적으로 약 봉지를 뜯어 입에 털어 넣었다.
    물을 다 마셔갈 때쯤 오공이 보였다.



    " .... 왔어. "

    " 응, 밥 먹고 약 먹는거야? 빈 속에 먹으면... "

    " 상관하지마. "

    " 삼장... "



    머리가 또 울려왔다.
    억지로 삼킨 것들이 다시 올라오는 느낌마저 들었다.




    " 점심 만들어놓고 갈까? 아니면... "

    " 이제 오지마. "



    오공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그랬는데 벌써 눈물이 나왔다.  



    " 더 이상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구!!!! "



    던진 컵이 창문에 맞아 쨍그랑- 거리며 깨졌다.
    마치 내 모습 같았다.                         사랑에 허우적거리며 깨져가는 지금 내 모습.




    " 알아.... 삼장이 무슨 말 하는지 알아. "




    아니야,
    이게 아니야.                                        - 사랑해, 가지마.             너마저 가 버리면 나 죽을지도 몰라.




    "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알아. "




    웃기지마.                                           - 너도 죽어버리면 좋을텐데.




    " 삼장이 팔계랑 가장 친했던 친구란 것도, 내가 팔계 애인이었고, 삼장하고 하룻밤 잔 것도 다 기억하고 있어. "

    " 하하... 그랬었나? 그런 시절도 있었나? 팔계가 누구지? "



    아팠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조금이라도 기운내지 않으면 곧 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지쳤다.
              쉬고싶어, 모든 기억을 다 지워버렸으면 좋겠어.  


    - 왜 죽어버리지 않는거야?




    " 팔계가....................... 나 때문에 자살했다는 것도 알아. "





    팔계가 죽은 후 가끔 그의 환영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럴때마다 그는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원망하는 눈빛.      

    그리고 언젠가부터 오공의 얼굴 위로 그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미쳐버린건가?




    " 삼장이 힘들어하는 거 알아. 약도 먹는거 알아, 약을 먹지 못하면 잠 못자는 것도 알아. "




    니가 죽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벌써 이상한 생각이지?




    아니, 사랑하잖아.     사랑하는데-
    왜 죽기를 바라는거야?          

    차라리 미치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몰라.



    " 그치만........ 그치만 오늘은.. "

    " 오공.... "



    그의 눈물을 보고나서 갑자기 제 정신으로 돌아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깨진 유리조각을 밟고 오는 그의 발은 피투성이였다.
    그의 손이 나에게 다가왔다.
                                         잡고 싶었다. 그에게 내 몸을 맡겨버리면 쉴 수 있을 것 같아.



    " 발렌타인 데이잖아....? "



    잡을 수 없다.
    나는 잡을 수 없어,      



    - 니 친구가 죽었어.

    - 너 때문에 죽은거야.



    - 니가 오공이 내민 손을 잡았기 때문에 그가 [자살]한거야.




    또 순간 팔계의 얼굴이 보였다.




    " 마지막으로........ 이걸 주고 싶었어. 초콜렛, 받고싶어 했잖아? "

    " 마지막? "

    " 내가 있어서-  내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삼장이 미쳐가는거야.       그렇지? "

    " 그래, 알고 있었군. "



    이상한 웃음이 입에서 나왔다.
    달콤한 초콜렛 향기,        그래- 기대했던 선물이었어.


    사랑했으니까.

    사랑한다구.    전할 수 없었어, 단 한번도.




    " 그러니까 떠날거야. 내가 없는 편이 삼장을 도와주는 거니까. "




    그의 눈물.
    그의 초콜렛.
    그의 사랑.
    그의 음성.
    그의 향기.

    그를 향한 나의 사랑.



    혼란스러웠다.    



    " 안녕, 삼장.           이제 그만 편해지길 바랄게. "

    " ........ 오공? "

    " 내가 없으면 더 이상 팔계의 환영이 보이지도 않겠지? "

    " 오공, 오공........... "



    보이지 않은 사람인것처럼 그의 이름을 부르며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두려웠다. 그가 내 손을 잡을까봐,       내가 그를 붙잡을까봐.


    어느 쪽도 원하지 않았다.

    내릴 수 없는 결정-

    그와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랬지만.
    나는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었다.




    " 그치만 이건 들어줘. 나 정말-  사랑했어. 삼장을. "




    울고 있었다.
    안아주고 싶어,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        

    몸이 일어나지 않았다.  약 기운이 도는걸까,       몸이 나른해졌다.

    그의 피가, 그의 눈물이, 그의 절망이 내게 닿아오는데-
    사랑해. 나도 말하고 싶었어, 사랑한다고.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한다고.




    눈이 감겼다.
    마지막까지 내게 들렸던 건                  그의 울음과 잘그락- 거리며 밟히는 유리조각들. 그리고 초콜렛 내음.








    ( 2004.2.14 )



    " 에에- 벌써 들어가게? "

    " 응... 몸이 안좋아. 갈게. "



    무언가 마음 속에 가라앉은 기억이 있었다.
    기억하려고 하면 할수록 기억나지 않는 상처가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기억해내지 말라고-


    발렌타인데이는 싫었다.
    그 날은 아무런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아팠다.




    " 아, 빨리 자고싶다. "




    옷장 문을 열다가 저 안 깊숙이 박혀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꺼내보니 보랏빛의 상자.           안에는 초콜렛이 있었는지 초콜렛 향이 묻어 있었다.




    " 응? 편지...... 인가? "










    -  이걸 보고 있을때는 몇 년이 지난 후겠지?

       틀림없이 초콜렛은 쓰레기통에 버린 후에 상자는 옷장에다 던져놓을 테니까 말야.

       나 죽지는 않을거야.
      
       죽으면.... 나마저 죽으면 아마 삼장은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될지도. (농담이야)

       삼장이 살아가는 것처럼, 나도 살아보자고 힘을 냈어.

       아주 조금.


       슬퍼져,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내 옆에 팔계가 있는 것 같아.

       무섭지만 그래도-            그래도 가끔은 기뻐. 팔계가 다시 살아있는 것 같거든.




    필름이 돌아가는 것처럼.
    가라앉은 상자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처럼.           기억이 돌아왔다.

    눈물이 났다.


    아문 상처가 다시 터져버린 느낌,          
    그러나 무섭지 않았다.                        그저 오공의 얼굴만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  삼장도 매일 나처럼 팔계를 보는걸까?

       나 가끔은 무섭거든.           그 눈을 보고 있으면 나 역시 죽어야 할 것만 같아서.

       금방이라도 칼을 들고 내가  내 손목을 그어버릴 것만 같았거든.

       그럴때마다 전화하고 싶었지만, 그렇지만 할 수 없었어.
      

       너무 사랑하는데.




    이제야 깨달았다.
    오공이 더 힘들었다는 것을,       둘이서라면-  어쩌면 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 때엔 왜 몰랐던 것일까.


    그를 남겨두고 왔다.

    잊어버린 채 나 혼자만 먼 길을 돌아 도망쳐 나왔다.




    -  나 꼭꼭 숨어 살거야.  우연히 삼장을 만나면 안되잖아.
      
       삼장이 이걸 읽고 있을 때쯤엔, 오공이 누구지?     라며 편지를 구겨서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만큼 삼장은 이 상처에서 벗어난 것일 테니까.          

       그렇게 되면 나도 구원받은... 거겠지?
      
       그래도 발렌타인데이때, 누군가 초콜렛을 줬다는걸-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정성을 담아서 누군가 줬다는걸 삼장이 기억해줬으면 하고 바랄때도 있어.

       너무... 큰 욕심인걸까?



       사랑해.

       사랑해.        아주 많이.          





    눈물이 흘렀다.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아픔.
    편지를 쥐고 있는 손이 떨렸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전하고 싶었지만,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사랑한다,     라는 그 말.
    초콜렛만큼이나,    쓰레기통에 던지지 않고 차분히 먹어갔던 그 초콜렛만큼이나
    사랑스러웠던 그 아이.




    사랑했었다는 늦은 후회.









    아하하;
    마감이 오늘이란걸 알고 급하게 써버린 단편이네요;
    이상하지만 그래도올려봅니다ㅠ;

댓글 1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280 유에☆ 858 2004-04-17
279 [레벨:5]플로렌스 3716 2004-04-17
278 [레벨:5]플로렌스 712 2004-04-17
277 [레벨:3]스카이지크風 688 2004-04-17
276 루넬 952 2004-03-13
275 genjo sanzo 866 2004-02-14
274 [레벨:3]카나리아 651 2004-02-14
273 [레벨:3]きいろい땅콩-☆ 746 2004-02-14
[레벨:3]Leka:) 712 2004-02-14
271 촌놈J 778 2004-02-14

SITE LOG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