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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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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시간은 점심께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긴 시간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살아가는데에 시간이 필요하기나 했던건가.
이 자리에 숨쉬고 있으면 그뿐...
"그래서 난 그 녀석에게 네 기억에서 삼장과 오공, 그리고 백룡을 지워달라고 말했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로
돌려달라고..."
눈 가가 벌겋게 변한 팔계가 고개를 푹 수그리며 말한다.
"잘도...잘도 마음대로 했군요. 남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뒤를 부탁한 건 너였어.."
그랬다. 뒤를 부탁한 것은 나였다.
나라면 그 자리에서 죽어넘어졌겠지만 오정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밟으면 밟을 수록 잡초처럼 일어나는, 오정은 그런 사람이다.
오정을 탓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하지만...
"오공은 어떻게 된거죠? 오공도 기억이 지워진 건가요???"
"아니, 그 녀석 말이 자기는 신이 아니므로 오공은 자기 손으로는 손 쓸 도리가 없다면서 데리고 가더군..."
"세상으로부터의 격리인가요..."
"..."
이번엔 오정이 고개를 푹 수그린다.
피같은 머리카락이 그동안의 그의 한숨을 말해주는듯 쏟아져 내린다.
몸은 무겁지만 마음만은 날아갈 것 처럼 후련하다.
팔계가 급히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오공을 데려오겠어요. 어디인가요??? 그 사람이 있는 곳인가요???"
"일단 앉아. 그 꼴로 어딜 가겠다고 그래?"
일어선 팔계는 자신의 차림을 내려다 보다 다시 주저앉았다.
확실히 얼굴이 퉁퉁 붓고 진흙탕에서 잔뜩 뒹굴고 난 몰골로는 오공에게 갈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며 병원에 도착한 팔계는 오정의 권유대로 먼저 건일의 방을 두드렸다.
아직은 진료시간 전이지만 아침잠이 없는 건일은 자주 일찍 와서 홀로 차를 들곤 했다.
똑똑똑~
"네, 들어와요."
후우... 숨을 고르곤 문고리를 돌린다.
예의 비릿한 미소를 띤 건일이 다리를 꼰 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서 와요. 아직 진료를 시작하려면..."
"오늘은 진료를 받으러 온 게 아닙니다."
"호오, 그런 것 같군요. 기억이 모두 돌아온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