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넨이야기 : 아홉번째장 ( 9-1 ) -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자는 깊은 잠, 그것이 나의 사랑.
  • 조회 수: 2417, 2010-07-13 12:03:48(2007-10-07)






































  • “ 겨울이란 춥군요 ”
    “ 아아 - ”




    시리오스의 말에 세츠는 목도리로 입을 감싸며 대답했다. 추워서 그런지 대답하기 싫어하는 듯 했다.




    “ 라퀼이 없으니 내가 다 저것들에게 명령을 내려야 하는군 ”
    “ 레이리아님한텐 쉽잖습니까? ”
    “ 귀찮으니까 그런거지,멍청한놈 같으니라고! 라퀼만 있었으면 라퀼을 니 곁에 붙여주는건데 ”
    “ 죽은사람 그만찾으십쇼 ”




    레이리아가 성질내며 라퀼라퀼 거리자, 세츠가 다른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세츠 역시 라퀼이 자꾸 생각나는 듯 했다. 그렇지 않다면 레이리아에게 그렇게 말할 리가 없다. 왠일인지 예전같으면 반항한다고 뭐라고 소리쳤을 레이리아는 세츠에게 뭐라하지 않았다. 이들 세 사람은 아르넨의 옥상에 서 있었다. 새벽이지만 하늘은 엄청 어두웠고 먹구름이 간간히 보였다.



    아무래도 눈이 내릴 듯 싶었다.
    12월 1일, 겨울이 시작되는날 전쟁은 시작되었다.
    그토록 오고 싶지 않아하던 아르넨에 어쩔수없이 발을 내딛었다.



    여러곳에서 폭팔음 소리가 들려왔고 성력밖에 없는 학생들 쪽에선 울음소리나 비명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반대로 성력이나 능력면에서 모든게 다 갖춰진 북아르넨에서는 폭팔음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 어두움 속에 울려퍼지는건 부서져버리는 소리.





    “ 레이리아는 어디로 가실겁니까 ”
    “ 글쎄, 우선 나는 마족과 마물들을 지휘해야 겠지 ”
    “ 세츠님, 우리들의 임무는 회장을 찾아내는 겁니다 ”
    “ 그래, 역시 네이가 회장이 아니었나? ”
    “ …네 ”






    시리오스는 짧게 대답한뒤 목도리로 입을 가렸다. 입김이 훌훌 나온다. 얇은 옷을 입은 이들은 무지 추운걸 느끼고 있었다.
    레이리아는 다른곳을 응시하다가 그곳으로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 죽지마라 ”





    레이리아의 그 말에 세츠와 시리오스는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의 입에서 ‘죽지마라’라는 말이 나온건 예상밖이 었기 때문이다. 그의 성격이라면 자신들을 걱정할리 없다. 죽던지 살던지 알아서 하라는 사람이다.
    세츠는 다시 시선을 돌려 북아르넨을 바라보았다.



    그런 세츠를 말없이 바라보던 시리오스.
    바람이 불어와 세츠와 시리오스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그리고 바람이 멎자 시리오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가시지요,세츠님 ”
    “ ……아, 시리오스 ”
    “ 네? ”
    “ ……나 잠시만 ”
    “ ……이루를 만나러 가는겁니까 ”
    “ 나도 잘 모르겠어. 넌 니가 하고 싶은데로 행동해 ”








































































    “ 카이!! 카이!! ”




    어둠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세사람.
    그들 사이에 흐르는건 루이넨의 외침.




    “ 내가 상처를 좀 볼게,루이넨 ”





    키엔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다가갔다. 키엔의 목소리에 놀란 루이넨이 뒤를 바라보았다. 보랏빛 머리카락에 보랏빛 눈동자. 키엔 아이루스다. 같은 선도부원이다. 그런 그가 아까 자신들을 지켜주었다. 엄청난 수의 마족과 마물들을 단한칼에 베어버렸다. 그렇게 강한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키엔은 이미 엄청나게 강해져서 아르넨에 돌아온 것이다.
    키엔은 카이를 바라보다가 루이넨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 리이넨씨는? ”
      “ 모르겠어, 보이지 않아 ”
      “ 조금 있으면 다들 이리로 올거야. 그때까지 카이가 좀 버텨주어야 할텐데… ”
    “ ……넌 누구야? ”







    루이넨의 검은 동공이 살짝 흔들렸지만 어둠에 몸을 숨기고 있던터라 키엔은 그런 루이넨의 눈동자를 보지 못했다.
    루이넨의 말에 키엔은 무표정을 유지하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 나는……키엔 아이루스 ”





    하지만 예전의 키엔과는 무언과 다른 분위기. 예전 키엔에게서 느낄수 없었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그 기운은 모든걸 파괴할듯한 그런 기분이 드는 기운이었다.
















































































    “ 유안! 어디로 가면 되는거야? ”
    “ 나도 모르겠어. 우선 모두를 만나야 이야기가 되니까…그곳에 가면 있지 않을까 싶어 ”
    “ 그곳이라면… ”
    “ 그래. 모두가 늘 모였던 곳 ”





    대지 위에서 숨박꼭질하던 곳
    모두가 늘 모여있었던 곳. 하지만 더 이상 ‘모두’가 아니다.
    유안의 품에 안겨 유안의 말을 듣고 있는 유쿠의 눈동자는 매우 슬퍼보였다.














    - 이제 이 사람의 품에 안길수 없을텐데.





    그런 생각이 들자 유쿠는 울고 싶어졌다. 무서운건 아니다.
    죽음에 대해 어느정도 많이 생각했었다. 죽음에 대한 무서움따윈 떨쳐버린지 오래다.
    그럼에도 울고 싶은 것은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








    그 점이 매우 슬프다.





















































































    “ 쿄우, 이 바보같은 놈아!! ”
    “ 시끄러워…… ”





    쿄우의 등이 붉게 물들여져 가고 있었다. 이엔은 그런 쿄우를 바라보며 울것같은 얼굴로 소리쳤다.
    이엔과 쿄우 주위엔 마족들의 시신이 조금씩 남아 있었다. 이엔의 뒤에 있던 마족이 이엔을 죽이려 하자 그걸 발견한 쿄우가 이엔을 밀치고 나서 대신 찔리고 그 틈을 타서 이엔이 재빨리 검을 휘둘렀었다.



    하지만 이미 쿄우가 찔리고 난 뒤였다.
    쿄우의 하얀색의 선도부제복은 붉게 물들여져 가고 있었다.
    붉은색은 하얀색을 삼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보였다.




    “ 하아…미치겠군 ”
    “ 쿄우! ”
    “ 조용히해… ”





    쿄우가 손을 힘들게 들더니 계속 자신의 이름만 외치며 안절부절 못하는 이엔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는 문을 발로 쾅 닫더니 침대 뒤로 기다시피 기어갔다. 사방에 깔려있다. 마족,마물의 역겨운 기운이.
    계속 이엔이 소리친다면 마족과 마물들이 이곳으로 다시 들이닥칠게 뻔했다.








    “ 버티는것도…순간이야 ”
    “ 어떻하지,쿄우? ”
    “ 내가…어떻게 알아,바보야 ”
    “ 아,나 베찌있어! ”






    그리곤 이엔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베찌를 꺼냈다. 그리고는 모두에게 도와달란 요청을 남기고는 침대뒤에 쿄우의 상처를
    바라보며 가만히 있는다. 그렇게 이 두 사람도 어둠속에 은밀히 몸을 숨긴다.

































































































    - 키익

    검날이 벽에 박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라퀼의 검날 옆에는 푸른색의 눈동자를 크게 떠 놀란 얼굴을 한체 서 있는 리진이 있었다.
    라퀼은 벽에 박힌 자신의 검과 옆에 서 있는 리진을 바라보았다.




    리진은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자신의 검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리진을 피한건 자신이었다.






    “ ……라퀼? ”
    “ 모르겠습니다 ”
    “ 어? ”
    “ 왜 이제와서 당신을 공격할수 없는지……모르겠습니다 ”





    리진이 바라보는 라퀼은 많이 혼란스러워 하는 듯 했다.
    마족과 인간, 종족간에 벽은 꼭 필요한걸까? 한때나마 웃고 즐거웠었는데.
    이젠 그 즐거움이 있는 평화는 깨져버렸다.



    리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라퀼을 빤히 바라보았다.
    라퀼은 고개를 숙인체 계속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런 라퀼을 바라본 리진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두 팔을 뻗어 라퀼을 안아주었다.



    리진의 손이 다가오자 움찔하고 놀란 라퀼은 거부하려 했지만 이상하게 거부할수 없었다.
    리진의 품이 따듯했을뿐 아니라 너무나 편안했었기에.
    그리고 주체할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은 눈물이 흘러나와 그 눈물을 리진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 괜찮아…괜찮아,라퀼
    우리는 너를 미워하지 않아. 어쩔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 우린 너희가 어떻게 변화하든간 쭉 기다릴거니까.
    그 기다림이 지루하다거나 귀찮다거나 그런게 아니니까 우린 너희를 기다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지만…그래도 슬프지 않아.
    돌아올거라 믿으니까. 우리는 슬프지 않아. ”







    리진의 말이 가슴을 애태운다.
    자꾸만 욱씬욱씬 거린다. 과거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난다.
    잊고 있었던건 아니다. 쭉 생각했다. 그럼에도 미련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 줄곧 내가 마음이 하는 말을 외면했던 거야

















































    “ 할머니…그때 같아요 ”





    무서워.
    샤인즈 일족이 사라진 그날같아.
    분명 어제는 무지 평범했었는데……왜 전쟁이 일어난거지?






    “ 이제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겠군 ”
    “ 하아…하아… ”









    나는 분명히 달이 예뻐서 나온거였어.
    그리고 잠시 달을 구경하다가…옛 생각에 빠져있었고……
    생각을 다 하자마자 폭팔음이 들려왔어.




    그리고……지금처럼 마족과 대면하고 있었어.









    “ 당신은 너무 약하군요. 이래서는 아르넨은커녕 회장따윈 지키지도 못하겠군요 ”









    회장?
    모르겠어.
    이 마족이 하는말을 하나도 못알아듣겠어…….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게 하나 있다면……난 지금 여기서 죽는다는 거겠지.










    저 녀석 말데로 나는 무지 약한 녀석이니까.
    그래서……저런 마족 한명 해치우지 못하고…당하는거겠지.










    샤인즈 일족이 멸망한건 내가 약해서였던 거야!!






















































    “ ……레이 ”
    “ 카이? 정신들어? ”





    카이가 중얼거리며 눈을 뜨자 카이에게 무릎을 내주었던 루이넨이 조금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있던 키엔은 그다지 표정의 변화가 없었지만.
    카이는 일어나려다 어깨가 욱씬거리는걸 느끼고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바라보았다.
    붉은피가 어렴풋이 보였다.






    “ 아까 마족들에게 당한거야. 이젠 괜찮아? 참을수있겠어? ”
    “ ……가야해 ”
    “ 뭐? ”
    “ 레이에게…가야해 ”






    카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사방을 둘러보다 밤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달이 크게 보였다.



    카이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선 루이넨이 카이의 이름을 살짝 불렀다.
    하지만 카이는 돌아보지 않는다.








    “ 레이가…위험해 ”

















    - 내가 레이에게 가지 않으면 안돼! 그 아이를 지킬수 있는건 나밖에 없어!














































































    “ 괜찮아,레이? ”
    “ 이루… ”
    “ 마족들이 대량으로 몰려오니 속이 메스꺼워 ”






    푸른빛의 머리카락. 늘 반짝이던 푸른빛의 머리카락은 어둠에 먹혀버려 반짝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레이는 이루인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루는 자신의 검에 묻은 마족의 피를 휙 하고 털어버렸다.
    그리고는 숨에 차 주저앉아 있는 레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 일어설수있겠어? ”
    “ 응…… ”
    “ 카이는 어쩌고 왜 여기있는거야? ”
    “ 레이!! 이루?! ”










    이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이가 오른쪽 어깨를 부여잡고 달려왔다.
    그리곤 레이는 이루의 손을 잡고 일어서면서 카이를 바라보았다. 레이의 시선은 카이의 어깨를 향했다.
    또 카이의 표정이 안좋았다.




    이루는 또 오해받을까봐 재빨리 상황을 설명한다.








    “ 오해하지마. 레이가 마족에게 당해서 구해준 것 뿐이야. 니 동생은 니가 잘챙겨 ”









    그리고 이루는 뒤돌아서 다른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이루의 발목을 붙잡는 카이의 목소리.








    “ 이루 ”
    “ …… ”
    “ 키엔이 돌아왔어 ”
    “ ……그래서? ”
    “ 모두 그곳으로 모일거야. 그곳으로 가자 ”



























































































    “ 라퀼 ”
    “ 네 ”
    “ 나 애들이 있는곳으로 가야겠어. 넌 여기에 숨어있어. ”
    “ ……숨어있으라구요? ”
    “ 응, 절대 다른곳으로 가면안돼. 난 너랑 싸우기 싫으니까 ”





    그렇게 라퀼에게 당부한 리진은 침대 머리맡쪽에 눕혀져 있는 자신의 검을 집었다.
    그리고는 방문을 열고 나가더니 방문을 닫고는 뛰어가기 시작했다.
    리진의 뛰어가는 소리가 서서히 들리지 않게 되자 라퀼은 창밖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 ……눈이 내릴거 같아 ”





































































    “ 루이넨, 오다가 리이넨씨 만나서 같이 왔어 ”





    유안의 말에 루이넨이 유안의 뒤를 바라보았다. 다행이도 리이넨은 유안의 뒤에 있었다.
    리이넨은 동아르넨 양호실에서 잠깐 졸다가 폭팔음 소리에 황급히 이곳으로 달려왔다고 설명했다.
    키엔은 이엔과 쿄우빼고 다 모이자 반갑다며 살짝 미소지으며 인사했다.
    어딘가 성숙해보이는 키엔의 모습에 다들 섣불리 다가설수 없었다.




    루이넨이 느낀거랑 똑같았다.
    키엔의 분위기가 사뭇 바뀌어있었다.








    “ 지금부터 다들…내가 말하는 곳으로 가겠어? ”
    “ 니가 말하는곳이라고? ”









    키엔의 말에 이루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러자 키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엔은 레이,카이,유안 을 부르더니 이엔과쿄우쪽으로 가라고 일러주었다.
    이엔과 쿄우가 있는 곳의 방위치를 알려주자 세 사람은 다급한 표정을 짓더니 얼른 뛰어갔다.
    ( 카이의 상처는 리이넨이 치료해주었다 )






    그리고 루이넨과 리이넨, 유쿠는 동아르넨에 가서 성력밖에 없는 학생들을 도와주라고 일러주었다.
    남은 것은 리진,루시드,이루. ( 루시드는 아까 폭팔음덕에 깨어나 혼자 이곳으로 왔다 )








    “ 리진 ”
    “ 응. 나는 어디로가면 되? ”
    “ 너는 너만의 비밀이 있잖아? ”
    “ 에… ”
    “ 그러니 혼란스러워 하는 그 사람의 곁에 잠시 있어줘 ”
    “ 있으면 되? ”
    “ 네 마음이 움직이는데로 행동해 ”













    리진은 별로 내키지 않은 표정을 한체 다시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다가 뒤를 힐끔 바라보았다. 키엔,루시드,이루의 표정은 무언가 심각해보였다.
    키엔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걸렸다. ‘네 마음이 움직이는데로 행동해’ ……리진은 벽뒤에 숨어 세사람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http://blog.naver.com/lin9105?Redirect=Log&logNo=140042426320

    (얼음연못 - 두번째달:궁OST) - 들으실분만 들으세요.














    남은건 이루와 루시드뿐.







    이루와 루시드는 말없이 한층 성숙해진 키엔을 바라보았다. 키엔은 희미하게 웃으며 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먼저 그들 앞으로 걸어갔고, 두 사람은 그런 키엔을 계속해서 주시했다. 키엔
    은 루시드와 이루를 보며 입을 열었다.








    " 루시드 "
    " 그래 "
    " 내가 일러준 곳으로 먼저가겠어? 이루랑 얘기가 조금 남았는데… "
    " 알았다. "










    그리곤 루시드는 어느새 길어버린 다리까지 내려오는 은백색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뒤돌아서 키엔이
    일러준 장소로 걸어갔다. 한편, 리진은 키엔이 자신에게 마지막에 한 말에 의아함을 느껴 벽뒤에
    숨어서 세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루시드는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루시드는 벽을 지나쳐 걷다, 벽 뒤에 숨어 있는 리진을 바라보았다.
    리진은 움찔해 도망가려 했지만 루시드의 부름에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 리진 "
    " 어,어? "
    " 따라오면 안돼. 키엔이 일러준 곳으로 가. "
    " ……알고있어 "
    " 그래,착하다 "









    그리곤 루시드는 다시 걸어갔다. 왠지 모를 씁쓸함과 그리움이 교차되면서 리진의 가슴 한구석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리곤 쭈그려 앉아 고개를 파묻었다. 왜 자신보고 숨으라고 한걸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건 키엔은 모든걸 알고 있단 것이다. 왜 자신들에게 끝을 알려주지 않는걸까.


























































    " 내가 할 말이 뭔지…알고 있지,이루? "
    " 대충 짐작하고 있어 "







    무릎까지 오는 푸른색의 머리카락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이루 스스로가 머리카락을 잘라버렸다.
    미련의 끈을 끊듯이, 머리카락을 싹둑 하고 잘라버렸다. 무릎까지 내려오던 푸른색의 머리카락은 이
    제 목뒤를 조금 넘는 길이밖에 되지 않는다. 머리를 자른 이루의 모습은 한층 더욱더 차가움을 내뿜
    고 있었다.




    이루의 푸른빛 눈동자는 한층 더 날카로워져 차가움을 내뿜고 있었다.
    반대로 키엔은 한층 온화하고 편안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더 이상 괴로워 보이지 않는다.
    아르넨에 있었던 예전의 키엔과는 다르다. 더 이상 아파하지 않는다.










    " 나는…세츠에게로 가? "
    " 아직 때가 아니니까 나랑 조금 더 얘기하자 "
    "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
    " 그래 "
    " 세츠가…죽어? "








    ‘세츠’란 이름을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이루. 이루의 차갑던 푸른빛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이루의 질문을 짐작했었는지 키엔은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천천히 두어번. 그러자,
    이루는 피식 하고 웃어버린다. 자신은 세츠를 죽인다고 여러번 다짐했다. 그리고 정말로 자신은 세
    츠를 죽여버린다.







    실감나지 않는다. 말만 죽인다고 다짐했었지, 실제로는 못할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키엔이 본 미래의 자신은 세츠를 죽인다. 망설임없이 심장을 도려낼것이다.
    여태 자신은 세츠 때문에 괴로워하고 아파했다. 그래서 자신 역시 세츠에게 똑같은 아픔을 줄것이다.
    그게 굉장히 나쁜 짓이란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은 어린아이같은 짓을 할 것이다.
    아주 아픈 말만 골라서 그에게 해줄것이다. 그래서 그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가 아파할때 나는 비웃어주며 그를 죽일것이다. 하지만 조금은 떨린다.






    몸은 긴장했는지 심장박동수는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
    슬프긴 하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운명이라면, 얼른 헤쳐나가고 싶을 뿐이다.
    얼른 이런 허무한 전쟁따위, 아무것도 얻는게 없는 전쟁따위 빨리 끝내고 싶을 뿐이다.

















    " 그럼,키엔…나는? "









    세츠를 죽이는 것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 뒤에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냥 죽어버린 세츠를 멍하니 쳐다보는거 뿐일까? 아니면 계속해서 이 전쟁을 하는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죽거나 스스로 자결하는 걸까? 알수없다.













































































    " 안녕,세츠? "










    은백색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깊은 밤 어둠속에서 루시드는 짙은 회색빛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검날을 반짝이며 서 있는 세츠에게 인사를 했다. 세츠는 차가운 무표정으로 그
    런 루시드를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루시드의 목소리는 밝았지만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키엔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낼때 혹시나 했었다. 그리고 자신의 직감이 맞은것을 알았다. 세츠가 서
    있었다. 마치 자신을 기다리기라도 한듯. 그리고 겨울이 되어서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많은 양의
    눈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금새 바닥엔 흰눈이 가득히 쌓이기 시작했다. 한밤에 내리는 흰눈.






    그 흰눈이 신호라도 된 듯 전쟁은 시작되었다.
    12월 1일 첫눈 내리는 날은 아름다우면서도 비극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 인간만 어리석은건 아닌거 같아. 마족도 어리석어. "
    " …… "
    " 그때 내가 널 데리고 왔더라면 우리가 여기서 만나진 않았을텐데 "









    루시드의 말을 가만히 듣기라도 하려는듯 세츠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표정없고 건조한 얼굴로 루
    시드를 바라볼 뿐이다. 오늘따라 루시드의 검푸른 눈동자는 더욱더 깊은 색을 내는듯 했다. 더 이상
    잃을게 없다는 얼굴. 그래서 죽음도 겁나지 않는다는 얼굴.








    " 세츠,여기는 너를 기억해
    하지만 너는 우리를 기억하지 못해. 약간의 실마리를 잡았다면 이루정도일까나?
    나는 이루가 널 죽게 하는걸 볼수 없어서…대신에 내가 좀 착한짓을 할려고 해. 이루 대신에 내가 널
    죽여줄거야. 그게 서로에게 조금은 가볍겠지. 소중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죽이려고 검을 휘두르는것
    보다는 잠깐 얼굴 마주치고 잠깐 이야기 정도 나눈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가 죽이는게 훨 나을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거든. 이의없지? "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그것이 아픔이고, 그것이 슬픔이고, 그것이 결국엔 그리움이란걸 세츠는 잘 알고 있었다.
    아까 꾸었던 자신의 기억나지 않는 그 꿈. 너무나 행복하고 평온했던 그 꿈. 갑자기 생각난다.
    꿈속에서 자신은 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루시드가 말했던 것처럼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는 아니었다.
    매일매일 만났다. 매일매일 이야기했다. 잠깐정도가 아니다. 잠깐 마추지는것도 아니다.
    많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웃었다.












    " 아르넨에서의…나는 내가 아니야 "
    " …… "




    " 어렴풋이 기억이 나. 하지만 나는…너희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어.
    소중한걸까? 기쁜걸까? 이곳에 있었단게…나한텐 어떤 의미인걸까? 알면뭐해.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
    잖아. 다시 돌아갈수 없어. 내가 잃어버린 기억은, 내가 잃어버린 시간은 너나 이루가 말한 이곳에
    존재할지도 몰라. 이곳이 나를 기억할지도 몰라.
    하지만…내가 기억하지 못하는걸. 그러니까 그건 나에겐 거짓이나 다름없는거야. "











    솔직하지 못하다.
    하고 싶은 말은 그런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루시드도, 자신도, 거짓말만 내뱉는다.
    사실은 굉장히 보고 싶었다고, 지금 자신이 느끼는 이 감정이 그리운 감정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이고, 루시드도 마찬가지.






    돌이킬수 없다.
    돌이킬수 없다면 새 삶을 개척해나아가야 한다. 기억은 얼마든지 많은걸 담아둘수 있다.
    과거보다 현재를 기억할수 있다. 과거보다 현재를 추억할수 있다.







    기억나지 않는걸 애써 기억할필요는 없다. 아프니까. 너무나 아프니까 그럴필요는 없다.
    그래서 싸운다. 모든걸 잊기 위해서. 괜히 아프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난 내 검에 피를 묻힌다.
    슬프지만 이것이 우리들의 운명이라면 어쩔수 없는 운명인거겠지.











    " 너를 죽여야 한다는게 너무나도 아프다… "
















    세츠의 말을 끝으로 루시드는 검을 빼들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말로 끝내고 싶었지만 그것은 더 이상
    소용없는,부질없는 짓이었다. 만일 말로해서 끝낼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이루가 세츠를 다시 데려왔
    을 것이다. 그렇기에 알고 있었다. 세츠는 이루가 아니면 안된다.




    하지만 이루도 세츠를 데려오는걸 실패했고, 세츠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혼자만이 시간에서 혼자만이 아파했다. 그리곤, 자신의 절친한 친우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여태 이루가 굉장히 많이 아파한걸 알고 있기에 자신은 이루를 대신에 세츠를 죽인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자신은 세츠보다 뒤떨어지는 검술능력을 가지고 있다.
    제 아무리 자신이 레이리아에게 받은 마족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해도 세츠를 이길수는 없다.
    괜히 아픔만이 느껴질 것이다.


















    세츠의 검끝을 통해서.




























































    " 응?키엔, 나는 어찌되? "






    이루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물어보았다. 키엔은 말없이 확 달라진 이루의 모습만을 바라볼 뿐, 아
    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키엔의 모습에서 자신이 어떻게 되는지를 직감한듯, 이루는 실없이
    하하 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키엔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 그래…나도 죽는구나… "
    " …… "
    " 세츠만 죽이고서…끝나는게 아니었어…… "
    " …… "
    " 아직 이야기는 많은데…그녀석만 죽고서…끝나는게 아니었어…… "










    그리곤 망연자실한듯 고개를 푹 숙였다. 이렇게 이루가 작아보인적은 없었다. 늘 강한 모습만을 보여
    주었다. 늘 웃는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늘 장난끼가 넘쳐나던 아이였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이루의
    모습을 어디가서도 찾을수가 없다. 더 이상 옛날이 아니다.








    계속해서 실감한다.
    계속해서 실감난다.
    이것이 현실이라고.











    " 키엔… "





    이루는 고개를 푹 숙인체 조용히 중얼거렸다. 키엔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이루를 내려다 보았
    다. 이루는 자신의 떨리는 오른손을 들어 키엔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리고는 놓치지 않겠다는듯이,
    꽉 잡았다. 키엔은 말없이 그런 이루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루의 등이 떨리고 있다. 희미하게 아주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루가 울고 있다는 것을 키엔은 알
    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어떤 위로의 말도 해주지 않았다. 위로해봤자 달라지는게 없으니까. 곧
    있으면 루시드는 세츠와의 싸움에서 나가떨어진다. 그걸 얘기해주면 이루는 언제 울었냐는듯, 차가운
    얼굴을 한체 세츠가 있는 곳으로 달려나갈게 뻔하다.






    세츠를 죽인다음 그는 스스로 자신을 책망하며 자결한다.
    그것이 이루와 세츠의 이야기의 끝이다. 비극적인 결말. 어느 누구하나 행복하게 죽지 못한다.
    가장 슬픈 이야기중 하나의 이야기가 막을 내린다.









    " 난 말이지……. ……실은…. ……죽는게…무섭다?…. "






    이루의 본심이 나타났다. 안무섭다. 두렵지 않다. 슬프지 않다. 늘 그런식으로 두려움을 떨쳐내려 했
    지만 결국 끝에선 어린아이의 모습이 나타난다. 죽는게 무서울것이다. 세츠를 만난다는 것 또한 두려
    울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은 세츠를 죽인다.











    " 왜……. ……우리는…이렇게나…슬픈걸까?……. "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키엔의 보랏빛 눈동자도 흔들린다.
    미련을 끊어버리겠다고, 슬픔을 끊어버리겠다고 아름답던 그 긴 푸른빛 머리카락을 잘라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마음까지 잘라버린것은 아니었다. 단지 감추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끝에와서는 결국 드러나버렸다.

















    " ……키엔…. ……키엔…아프다……. ……심장이…너무……아파서…멈춰버릴것같아… "

    그리곤 이루는 주저앉아버렸다. 무릎을 꿇은체 두 손은 땅을 짚고 고개는 여전히 푹 숙이고 있었다.
    키엔은 서서 말없이 고개를 내려 시선을 내려 울고 있는 이루만을 바라본다. 벽 뒤에 숨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내 리진의 푸른빛 눈동자는 눈물로 뿌옇게 앞을 가려버렸다.






    심장이 욱씬욱씬 거린다.
    이것이 그리움이고 슬픔이라면, 이런 감정따윈 모르는게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보면 감정없는 마족이 조금은 편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버린다.












































































    " 그렇게 약하면서 날 죽이겠다고 큰소리 친건가? "







    루시드의 검을 피하며 세츠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세츠의 말에 루시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할정도로 숨은 가빴고 움직이기도 버거운 상태였다. 몸 이곳저곳에 세츠에게 난도질 당해
    너무나도 아프고 피는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이상태라면 세츠를 죽이기보단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
    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반면 세츠는 힘들어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아직도 얼굴엔 여유만이 가득했다.
    눈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굉장히 추웠다고 느꼈었는데 더 이상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 투둑, 소리를 내며 자신의 붉은 핏방울들은 하얗디 하얀 눈위에 떨어지고 있었다.







    " 너가 죽겠네 "
    " 하아…하아… "
    " 하나만 물어볼게 있는데 대답해줄래? "








    루시드는 한쪽 무릎을 꿇고 눈위에 주저앉았다. 검은 땅에 박혔고, 루시드는 완전히 쓰러지지 않기
    위해 검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꽉 잡았다. 세츠는 자신의 검을 한번 공중에 휘둘러 루시드의 피를
    눈위에 털어냈다. 그러자,  - 투두둑 소리를 내며 핏방울들은 눈위에 이질적으로 번져갔다.




    하지만 계속해서 내리는 눈으로 인해 그 핏빛들은 안보이게 되었다.
    세츠는 한동안 루시드의 검푸른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아름답게 보였다. 붉은피와 은백색의 머리카락
    , 자신의 회색빛 머리카락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고 너무나 아름다웠다.



















    " 너희가 알고 있던 그 거짓된 시간에서 나는 행복했었어? "



















































    " 이루 "
    " ……응 "
    " 이제 그만 가야지? "
    " 어디로 가야 하지? "







    키엔의 말에 이루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방금전까지 울었던 이루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얼굴엔 차가움이 감돌았다. 자신이 흘린 마지막 눈물. 이루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고 다짐했다.
    이미 저번부터 다짐했었건만. 그 다짐은 언제나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 루시드는 지금 세츠랑 싸우고 있어 "
    " ……뭐? 걔가 왜? 왜 걔를 그곳에 보낸거야!! "
    " 난 신의 눈을 가진 예언자. 신이 정하신 운명에 따라 루시드를 그곳에 보냈어 "
    " ……루시드 죽어? "
    " 글쎄. 루시드는 쓰러져 있었으니까… "
    " ……어디로 가면 되? "

































































    " 그래, 나는 행복했었구나… "





    세츠가 한걸음 한걸음 내딛어 루시드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루시드는 가물가물 거리는 눈으로 세츠를
    바라볼 뿐이었다. 도망갈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물며, 상대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루를 대신에 세츠를 죽여 그녀석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으려 했었는데.





    자신은 역시나 약하다.
    정에 휩쓸릴 정도로 너무나 약하다.
    카넨이 정에 휩쓸려선 안된다고 누누히 말했었는데 너무나도 약하다.
    그래서 자신은 죽는다.











    " ……하지만 그 시간은 역시 거짓된 시간이니까 슬프진 않아 "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뜨겁디 뜨거운, 투명하디 투명한 눈물 한줄기가 검푸른 눈동자에서 흘러내린다.
    눈물로 앞은 뿌옇게 흐려졌다. 조용히 눈을 감아버린다.
    이제 죽는구나. 드디어…루에게 갈수 있는구나. 그 아이를 만나면 더 이상 울지 않겠지.
    영원히 행복해지겠지.








    더 이상 이런 슬픈 이야기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가 자신을 반겨줄것만 같았다. 여태 그 아이를 혼자 내버려 두었으니 얼른 가서 그 아이의 투
    정을 받아주어야 한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눈을 떴을때 자신의 몸은 눈밭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세츠의 얼굴은 쓸쓸함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츠에게서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들을수 있었다.






















    " ……안녕,루시드 "



























































    조금만 기달려,루시드…!!
    내가 널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죽지말고 기다려줘. 빨리갈테니까, 지금 열심히 뛰어
    가고 있으니까 죽지마!! 신이 정한 운명따위 빗겨나가면 되!! 길은 많아. 길은 여러개니까 죽지만
    말아줘. 내가 널 지킬게. 그래서 내가 세츠를 죽이고 널 살려줄게.






    제발 죽지 말아줘.
    나 때문에 죽지 말아줘.
    세츠에게서 죽지 말아줘….






    그녀석도 슬플거고, 나도 슬플거니까 죽지 말아줘.
    키엔의 말이 거짓이라고 내가 해명할수 있게 제발 죽지 말아줘!!


















    ‘ ……루시드 죽어? ’
    ‘ 글쎄. 루시드는 쓰러져 있었으니까… ’















    거짓말이야. 키엔이 그냥 나한테 장난치는 거니까, 죽지 말아줘.
    내가 가면 희미하게라도 미소지어줘. 내가 아는 루시드로 살아있어줘. 이곳에 남아있어줘.
    우리 모두 아까 ‘있다보자’라고 인사했잖아!! 그러니까 제발 한번이라도 좋으니 얼굴보자.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다정하게 이루라고 내 이름을 불러줘.





    죽지마!!
    너가 죽으면 어떻게 해!!
    내가 죽어야 하는데 왜 니가 죽어. 그러니까 살아라. 제발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줘.
    그래서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내 손을 잡아줘.








    너의 그 친절함을,
    너의 그 따듯함을 다시한번 느낄수 있게 살아있어줘.
    너는 죽어선 안되!!


































    " 하아…하아… "

    " 늦었구나,이루 "








    죽지 말라고 했잖아……일어나,루시드
    왜 세츠 앞에 쓰러져 있는거야? 그런데서 자고 있으면…동상걸려……얼어죽는다고.
    일어나…내가 왔어.







    " 너는 참 많은 녀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었구나 "

    " …… "
    " 부럽다. 난 이제 너에게 나쁜사람이 된거지? 그럼 넌 이제 망설이지 않고 날 죽일수 있게 됬네 "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하얀 눈 위에 이질적으로 퍼져나간 붉은색의 피.
    그리고…루시드를 붉게 물들인 피. 거짓말. ……거짓말.






    이런게 신이 정한 운명이라고?
    길은 여러개잖아…우리는 왜…생(生) 과 사(死) 로 나뉘어진거야?
    두개의 길 밖에 없는거야?






















    " 슬퍼할 시간이 없을텐데,이루? "





    너는……정말 나에게 나쁜 사람이 되어버렸어.






    " 일어나. 적을 등뒤에 두면 안되는 거야. "








    그래…이제 너는 정말로 나에게 적이 되었구나.













































    " 키엔, 이루 어디 간거야? "
    " ……리진? "
    " 빨리 말해줘!! 불안하단 말이야!! "
    " 모두가 함께 있을수 있었던 곳, 이라고 말하면 알아듣겠니? "












    키엔의 말을 들은 리진의 푸른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는 망설이지 않고 이루가 달려간 곳으로 자신도 따라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홀로 남은 키엔은 눈이 내리는 밤하늘을 미동없이 서서 바라볼 뿐이었다.
























































































































    이루는 루시드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건조한 얼굴로 세츠를 쳐다보았다. 한
    번도 그렇게 차가운 눈으로 세츠를 쳐다본적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갈등이 심한적도 없었다. 그래도,
    길은 많으니까 걷다보면 저 녀석이 눈에 보일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보이는건 아니었
    다. 몇번이고,몇번이고 저 녀석을 죽인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일은 지금 현실이 되가고 있다.
    나는 널 죽일거야. 내 안의 분노가 깨어나버렸어. 너는 아직도 내게 소중한 사람인데, 넌 내가 알고
    있는 그 소중한 사람이 아니라서 널 죽일수가 있나보다.





    넌 너의 이기심으로 아무것도 기억하려 하지 않았지.
    그러니 나 역시 나의 이기심으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널 죽일거야.
    가장 고통스럽게. 가장 괴롭게, 너를 죽여버릴거야.








    그렇게 생각한 이루의 입가가 피식, 하고 올라간다. 세츠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루를 빤히 주시할 뿐
    이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그러니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니 달라지는것 또한 없다.
    빨리 끝났으면 할 뿐이다. 저렇게 차가운 아이가 내뱉는 말이 무엇인지 짐작 또한 간다.
    가장 아픈말.















    " ……큭, 마족은 참 좋겠어 "

    " …… "
    " 마족은 천년을 사는데에 비해 우리 인간은 기껏해야 백년이니까. "
    " …… "
    " 그래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가? "















    그렇게 말하며 이루는 푸른빛 눈동자로 세츠의 회색빛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가만히 서 있던
    세츠는 허리춤에 채워진 검을 스르렁, 소리를 내며 빼들었다. 그리곤 검을 이루를 향해 겨누었다.
    세찬 바람이 불어오면서 세츠의 회색빛 머리카락은 휘날렸고, 검은색의 망토역시 휘날렸다.







    바람이 멎자 동시에 세츠가 입을 열었다.













    " 너의 입에서 그렇게 차가운 소리가 나올줄은 몰랐는데… "

    " 이제 너를 용서하고 싶지가 않구나. "













    그리고 동시에 두 사람의 검은 부딪혔다. 검과 검이 부딪히는 마찰음이 요란하게 울려왔다. 아무도
    이 둘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다. 마치 일부러 자리를 피하기라도 하는듯 아무도 없다. 오직 이 공
    간에 두 사람만이 있다.





    이루는 세츠의 검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세츠를 이길수는 없다.
    그럼에도 자신은 세츠를 죽이기 위해 검을 휘두른다. 분노가 너무 강해 헛점이 너무 많은 이루는
    세츠의 검에 베여 눈바닥을 굴렀다.







    이루의 검은 나가 떨어졌고, 이루의 입안엔 피비릿내가 진동했다.
    입안에 고인 피를 뱉고는 힘들게 손을 뻗어 검을 쥐었다. 세츠는 공격하지 않고 그런 이루를 바라보
    았다. 이루는 검을 집더니, 검을 땅에 박았다. 그리곤 한쪽무릎을 세우고 한쪽무릎을 꿇더니 입을
    열었다.



















    " 난……그래도…너가 돌아올거라 생각했다….
    서로가…서로를 강하게 끌어당기면은…서로의 마음이……확실히 전달되서…난 너가 돌아올거라고…
    믿었었어. 하지만 너는……나의 믿음을 져버렸다. "















    그리곤 울지 않겠다고 다짐한걸 잊어버리고는 눈물을 마구마구 쏟아내었다. 어차피 정해져있었다.
    이렇게 자신이 죽을것같아 보여도, 결국엔 자신은 세츠를 죽인다는것. 그 사실때문에 너무나도 심장
    이 아프다. 용서할수 없는건 사실인데도 마음은 아니라고, 실은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외친다.




    하고 싶은 세글자가 있는데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목이 메어온다. 눈은 계속해서 눈물을 쏟아낸다.
    그런 이루를 바라보던 세츠가 입을 열었다.











    " 하나만 알아둘래? 널 만나서 후회한적은 없었는데…여기서 널 만난게 후회가 되 "
















    세츠의 말을 들은 이루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피식 하고 차가운 냉소밖에 지어지지 않는다.
    뭘 망설이고 있는가. 심장을 도려내면 그만인데. 심장을 찌르면 그만인데 무얼 망설이고 있는가.
    마음이 하는 말 따윈 삼켜버리자.

























    " 쿡,그래? 나 또한 널 만나서 후회한 적이 없었어. 하지만 넌 마족이고 난 인간이니까 "

    " ……그렇기에 달라질수 밖에 없다? "
    " 너는 그 손으로 직접 동료를 해하였어. 용서를 바라나? 속죄를 바라나? "










    너가 용서를 바란다고 해서,
    너가 속죄를 바란다고 해서 용서가 되는것도 아니야. 속죄가 되는것도 아니야.
    넌 이미 알고 있잖아?









    나는 너를 괴롭게 하고 싶어서, 나는 너를 아프게 하고 싶어서 차가운 말들만 내뱉는다.
    그리고 내가 짠 작전은 성공이다. 너의 눈동자가 살짝이지만 흔들리고 있으니까. 너는 내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어쩔수 없잖아?
    우리들은 이미 처음 시작부터 어긋났었는걸.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다시 빼서 다시 끼울수 밖에 없어.
    하지만 너는 뺄수만 있지, 끼울수는 없어.





    그 단추를 나는 뜯어서 쓰레기통에 버릴 거니까.
    다시 꼬매지도 않아. 차라리 새 옷을 입을거야.





















    " 아쉽지만 이제 그때로 돌아갈수 없어 "

    " …… "
    " 같은 대지위에서 더 이상 웃으며 뛰어놀수도, 한가롭게 낮잠을 잘수도 없어.
    그 대지는 너희 마족들이 부서버렸으니까. 그러니 우리는 너희를 부서버릴거야. "










    왜 내가 아파하고 왜 내가 슬퍼하고 왜 내가 우는걸까.
    일부러 너를 괴롭게 하려고 내뱉은 말들인데, 난 내가 내뱉는 말에 내가 상처받고 있어.
    이건……뭐야?
    결국 마음이 하고 싶은 말을 난 삼켜버릴수 없단 거야?





    하지만 어쩔수 없잖아.
    넌 나를 죽이지 않을테고, 난 너를 죽일수 밖에 없잖아.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면 너가 죽어야지, 내가 죽을수는 없잖아.





    우리들의 이야긴 생과사밖에 없으니까.
    단 두개의 길 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너가 먼저 신의 곁에 가라.





    흐르는건 투명한 물줄기.
    가느다란 물줄기로 서로의 상처만이 보인다.
    애써 냉정한 얼굴과 예전과는 다른 나의 차가운 미소만 짓는 얼굴.












    …………쥘수밖에 없는 검.

























    " 이 검은 너를 절대로 용서못해. 하늘도 마치 너의 죽음을 축복하는듯 하군 "












    붉은피로 적셔진 땅을 덮는 하얀색의 눈.
    공기는 차가워지고 대기는 무거워진다.
    그 공간에서 너와 난 서로를 향해 검을 맞부딪힌다.
















































    - 더 이상 울지 않아.























































    그래도 이루는 자리에서 일어나 울지 않겠다면서,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세츠를 향해 검을 들고
    달려간다. 세츠는 무표정으로 울고 있는 이루를 바라보면서 역시 검을 든체 달려간다. 서로의 검이
    맞부딪힐 찰나에 세츠는 자신의 검을 던져버렸다.










































    그때 넌 그 검을 던져 버렸고
    그때 난 그 검을 쥐었다.



    그때 너는 내 검을 피하지 않았고,
    그때 나는 내 검을 놓지 않았다.




    어쩔수 없었던 거야.
    너가 마족이고
    내가 인간인 이상은 예상된 시나리오였어.




    한때는 웃고 행복했지만
    그건 과거일뿐이고 한때일 뿐이야.








    모순된 한때.
    거짓된 한때.
    그러니 지금은 진실이어야 겠지.
    그러니 지금은 현실이어야 겠지.


















































    - 마음이 하고 싶은 말을 꼭꼭 묻어두고 난 여전히 울면서 너에게 차가운 말을 내뱉어야 겠지.





























    " ……한번도 나는 너를 미워한적이 없었어 "

    " 마족이 그런 감정을 논하는건 무슨 심보지? "


























    붉어져 버린 하얀 눈을 감추기라도 하려는듯 하늘에선 계속해서 하얀 눈이 내려온다.
    그곳에 퍼지는 은은한 붉은피와 피 비린내.
    너는 쓰러졌고, 나는 서 있었다.





    붉은피와 투명한 물이 합쳐져 떨어지고…절대로 거짓일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

























    " ……세츠, 내 마음이 계속해서 내뱉고 싶었던 말이 뭔지 알아? "















    들리지 않지?
    지금 내뱉어도 소용없는 말이란거 가장 잘 알아.
    그리고 난 내가 내뱉었던 그 차가운 말에 오히려 내가 상처를 입었어.
    세츠, 너만 아픈게 아니야.
















    실은 나…너와 했던 시간을 붙잡아 두고 서있으려 했어.
    너가 올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잖아.
    태엽을 감아 시간을 돌리고 싶었는데, 현실은 장난감이 아니니까.










    - 난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할 수가 없었어.



















    너가 없는 세상은 이제 생각할 수가 없었어.
    우리 잠시 이별을 했었지. 그리고 가끔 만났지.
    그땐 너가 죽지 않았었으니까 가능했었던 일이었던 거야.





    하지만 지금 넌 죽어버렸어.
    난 너가 죽어버린 세상은 생각할수 없었는데.
    앞으로 생각할수도 없어.




















    - 그러니까…나도 니 곁으로 돌아갈게.



























































    " 이루!! "
    " ……리진 "
    " 이루,다친데는 없지!? "















    저 멀리서 나의 아가씨가 나를 걱정하고 있어.
    하지만 난 나의 아가씨가 아무리 내 슬픔을 달래주고 어루만져주어도 이겨낼수 없어.
    견뎌낼수가 없어.





    너가 죽어버렸으니까.
    그래서 난 이 세상을 살기가 힘들어.
    눈물은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지? 그게 증거야.





























    " 세츠…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사랑해’였다? "























    그리고 나는 너의 피가 묻은 검을 들어 내 목을 찔렀다.
    입안에 피비린내가 가득히 진동하고 난 하늘이 거꾸로 보였다. 눈바닥위에 쓰러져 고개를 힘들게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옆엔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너가 보여.



































    - 세츠……
    이제 우리 함께 할수 있지?
    손…잡아도 되지?






































    " 이루!!! "
































































    미안해요, 아가씨.
    미안해요…내 멋데로 아가씨에게 죽음을 보여줘서.
    하지만 아가씨는 나보다 강하니까 견딜수 있을거라 믿어요.








    아가씨,
    나는 이제 깊은 잠을 자려 해요.
    그러니까 깨우지 말아줘요.




    오랜만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잠을 자요.
    오랜만에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요.












    - 아가씨,
    부디 오래 사세요.















































































    p.s
    세츠와 이루가 죽었네요
    앞으론 죽는 사람이
    태반일거랍니다.

    그래도 아직 편수가 많으니
    세츠와 이루처럼
    빨리빨리 안죽일거랍니다.



    p.s
    크리스누나는
    나에게문자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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