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넨이야기 : 여섯번째장 ( 6-4 ) - 젖어버린 일기장
  • 조회 수: 2003, 2008-02-06 05:56:22(2007-09-01)

































  • 당분간은 내 마음을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아무것도 느끼려 하지도 않겠습니다.
    그 사람을 잊기 위한 방법중에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네요.
    우선은 이 방법부터 해볼까해요.
    마음을 가두는 연습부터 하다보면 그 사람을 문득 떠올려도,
    지금처럼...
    아프지 않을 수 있을것 같아요..














































    비가 쉴틈없이 부슬부슬 내린다.
    그러면 가끔은 몸이 아프다. 쑤시고,열이나고,땀나고,덥고,기운이 없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저 쉴새없이 내리는 빗소리에 내 모든걸 파묻혀 버리고 싶다.
    이상하게도 나는…그가 생각난다.

    매정하게 돌아섰던 그,
    그리고 매정하게 돌아선 그를 잡으려했던 나.
    하지만 변한건 없다.

    나는 정말로 뭘 하고 싶은걸까.
    정말로 나는 그를 죽일수 있을까? 죽일수야있다.
    나에게 가장 쉬운것이 사람죽이는것. 그러기위해 검을 잡았던건 아니지만…지금이라면 할수있다.
    하지만 아직 전쟁은 시작되지 않았다.

    그는 나를 버렸다.
    그는 나를 잊었다.
    그는 나를 모른다.

    나는 그를 주웠다.
    나는 그를 알고있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하지만 이 모든것들은 모순된 현실.
    나는 이미 앞을 직시하고 걸어가고 있다. 너무많이 걸어와버려서 돌아가려고 뒤를 돌아보아도,돌아
    갈수 있는 길이 어디인지 모르고 헤메이고 만다. 하지만 나는 마침내 길을 찾았다.

    뒤돌아서 걷는 길이 아닌 앞으로 직진할수 있는 길.
    나는 옛날을 버린다. 나는 어제를 버린다.
    그저 모든건 앞을 향해 나아간다. 나는 너를 죽일것이다.

    너와 함께했었던 추억을 끌어안아 너를 죽일것이다.
    나의 검에 너의 붉디붉은 피가 흐르겠지……난 너의 심장을 제대로 노릴것이다.
    아픔따위 영영 모르고 살 줄 알았는데, 다 너때문에 모든걸 겪게 되버렸어…라고 핑계를 대면서 너
    를 이 검으로 찔러주어야지.

    나의 이기심으로.



    852년 10월 15일 ‘테이리스 카르세인 하쟈리온 이루’








    그 아이는 나를 죽일것이다.
    이제 가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푸르고 푸르던 잎사귀들은 늘 싱그러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영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기억하지 않는다.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가끔 꿈속에서 그 아이의 웃는모습을 본다. 그뿐이다.
    그 아이가 내민 손을 여러번 갈망한다. 하지만 잡지는 않는다.
    잡으면 슬플까봐서. 잡으면 아플까봐서.

    왠지 그 아이가 내 탓을 하며 무지무지 속상해할까봐서.
    그래서 나는 그 아이가 내밀어준 손을 잡지 못한다. 가끔 후회도 하지만…….
    그 아이가 그곳에서 나없이 행복해 질수 있는것처럼,
    나 역시 그 아이가 없는 이곳에서 행복해 질수 있다고 믿는다.

    기억하는건 없지만,
    생각나는건 없지만,
    존재하는건 아쉬움,후회,슬픔,이별 밖에 없지만…그래도 나는 이곳에서 버텨보려 한다.
    그래도 나는 이곳에서 살아보려 한다.

    하나의 시련을 뛰어넘어,
    하나의 고통을 뛰어넘어 나는 그 아이를 만나러 가게되겠지.

    그 아이는 나를 위해 시퍼런 날을 갈고 갈았을것이다.
    나도 그 아이의 대련에 응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벨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죽일수 있을까?

    머리에게 물어본다.
    대답이 없다.
    가슴에게 물어본다.
    조금 욱씬거리는것 외엔 대답이 없다.

    창밖에 비춰지는 노오란 빛을 띄는 둥근 보름달은 푸른밤하늘에 그저 가만히 떠 있다.
    내가 그저 여기에 가만히 있는 것 처럼, 그가 그곳에 그저 가만히 있는 것 처럼.

    우리들은 영원하지 않는다.
    마족은 1000년이란 긴 세월을 산다. 하지만 영원은 그 시간뿐이다.
    인간은 100년이란 짧은 세월을 한다. 그들이 모든일을 하고도 남기엔 조금은 부족한 시간.
    하지만 영원은 없다.

    영원이란 없기에, 우리들은 각기 다른 길을 걷는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내 입가엔 쓸쓸함만이 묻어난다. 두렵다.무섭다. 내가 그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

    시리오스가 한 말데로, 그 아이도 나를 죽일때 어떤 눈을 하고 있을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무섭다. 두렵다. 생각만도 끔찍하다. 정말로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은 내가 자초했고, 그 일은 조금있으면 일어날 일이다.

    나는 그를 죽일수 있는가?
    아니,최선을 다하겠지만 나는 그 아이를 죽일수는 없을것이다.
    아무래도 내 가슴이 욱씬 거리는것을 보면.



    852년 10월 17일 ‘세츠 아일린’

















    나는 아주 오랜시간동안 잠재워져있던 시간을 파헤쳤다.
    그리고 나는 아주 소중하고도 소중한 기억을 잡았다. 다시는 잃고 싶지 않은 기억.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

    나는 그녀를 볼때마다 늘 가슴이 애틋했다.
    뭔가 굉장히 슬프다고 해야 하나? 그당시 그녀를 볼때면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나는 그녀를 사랑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정말로 아르넨학교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소문
    이 나있었으니 나는 감정을 착각했었다.

    한번도 사랑해본적없던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느날 꿈을 꾸었다. 나는 그녀를 누나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역시 나를 동생처럼 잘 대해주었다.

    그런 꿈을 몇일 반복해서 꾸었다.
    그러자 나는 어렸을때 잃었던 기억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되살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 그 기억을 되살리려 했다.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싶었다.

    점점 더 기억을 되살리고 싶었다.
    그럴때마다 계속해서 내 꿈엔 그녀가 나왔다. 리이넨이 나왔다.
    원래 어렸을적 이 학교에 왔을때부터 간간히 친분이 있었던 나는 쉽게 그녀를 만났다.
    혹시나 하는 김에 의남매를 맺자했다.

    그녀는 정말 기뻐하면서 그러자고 했다.
    나같은 동생이 생겨 정말 기쁘다고 했다. 나 역시 기뻤다. 행복했다.
    그러다가 결국엔 모든걸 기억해버렸다.

    어렸을적 나는 그녀에게 보호를 받았다.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체 그녀의 가녀린 품안에 웅크려 울면서 보호만 받았다.
    그리고 울고 일어났을때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그녀도 없었고, 그녀와 함께 살았던 마을도 없었다.

    모든걸 잃어버렸다.
    모든걸 지워버렸다.

    그렇게 혼자였다.
    혼자로 쭈욱 있었다.
    그리고 나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속으로 아마도 강하게 그녀를 불렀으리라.

    서로가 서로를 원한다면 언젠간 만나게 된다고 들었다.
    그녀는 그녀의 단 한명뿐인 동생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나의 단 한명뿐인 누나를 기억한다.
    이번에는 내가 그녀를 지켜줄 차례라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끝내 내가 진짜 동생이란걸 밝히고 싶진 않다.
    그저 내가 모든걸 기억하고 모든걸 알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녀에게 목숨다바쳐 지킬것을 맹세한다.


    852년 10월 20일 ‘루이넨 신 레디아스’



    이상한 일이다.
    어렸을때부터 보았던 루이넨을 보면 나는 무언가 막 설렌다. 괜히 기쁘고 행복하다.
    그와 별 말을 하는건 아니지만, 어느날 그가 다치거나 아프면 괜히 안쓰럽고 슬프다.
    그래서 나는 그를 사랑하는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내 마음을 전하려던걸 그만두었다.
    괜히 멀어지는것보다 지켜보는것만으로도 족한다고 생각했다.

    한번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성으로 사랑해 본 적이 없어서 지금 내가 그를 바라보는것이 정말로
    사랑하는것인지 의심스럽다. 이게 정말로 사랑인걸까.
    난 그를보면 기쁘다. 행복하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하는건 이성을 사랑하는 그런 마음이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양아버지께서 내게 이런말씀을 하셨다.
    사람을 사랑하는건 행복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깨달아야 진짜 사랑을 할수 있다고.
    그렇기에 나는 진짜 사랑을 하고 있지 않다.

    단지 그를 보면 기쁘고 행복하고 설레는것으로 끝내는 사랑만 한다.
    내가 그를 향해 가진 마음은 무엇일까. 어떤 사랑인걸까.

    어느날 그가 나를 은밀히 불러내었다. 무슨일일까.
    혹시나 그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게 아닐까. 괜스레 마음이 콩닥콩닥 거렸다.
    괜스레 설레였다. 그 어느때보다 더 설레였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외의 말이었다.

    의남매를 맺자고 한다.
    갑자기 기운이 빠지면서 미소를 지으며 그러자고 대답했다.
    하지만 조금 후회가 들었지만, 그와 의남매를 맺는단 생각에 기뻤다.
    그와 더욱 친해진 느낌이 들었기에.

    그의 성격은 조용하고 차분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장난치고 농담하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런 면 때문에 그는 북아르넨이나 동아르넨의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가끔 치료해주는 여학생들을 보면 내게 부럽다고 농담을 던지는 아이들이 많다.
    내가 그와 가장 친하다고 말하면서. 나는 정말 그와 친한걸까?
    나는 그와 어울리는걸까? 이성으로써? 아니면…의남매로써?

    한번 조심스레 한 여학생에게 물었다.
    나와 루이넨은 같이 있으면 어떻게 보이냐고. 그러자 그 여학생은 웃으면서 가족같다고 했다.
    가족.

    나는 그와 있으면 행복하고 기쁘고 설레인다.
    그리고 그랑 하루라도 살짝 보지 않으면 조금은 우울하다.
    하지만 조금은 기쁜일도 있다.

    유일하게 치유마법을 가진 사람은 나밖에 없어, 그가 아프거나 다쳐서 내가 찾아갈때 조금 안쓰럽
    지만 한편으론 그를 독차지 할수 있어 기쁘다. 하지만 이건 진짜 사랑이 아니다.
    아마도 나는 의남매로써 그를 사랑하는거라고 생각한다.

    이성을 한번도 사랑해본적이 없기에 나는 이 사랑이 이성을 사랑하는것이 아니라고 단정지었다.
    혹시 모르지만, 그래도 그는 나를 바라볼땐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아니기 때문에.
    사랑을 해본적은 없지만 주위사람들은 사랑을 했었다. 그때 그표정, 그때 그눈동자 하나도 잊지 않
    는다.

    그렇기에 루이넨은 나를 누나로만 보고 있다.
    그도 외로웠던걸까.



    가끔 꿈을 꾼다.
    어린 아이 두명이 나온다.
    한명은 나고 또한명은 루이넨을 닮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 아이를 루이넨이라고 단정지었다.
    나는 그와 소꿉놀이를 한다.

    그리고 또 그와 내가 어딘가를 향해 달려갈때 그가 엎어졌다.
    그래서 어린 나는 그 아이를 향해 손을 내민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나를 향해 방긋 웃으며 누나라고
    부른다. 내가 잃어버린 기억인걸까. 아니면 단지 꿈일뿐인걸까.

    사실은 모른다.
    알고싶지도 않다.

    나는 지금 이상태로도 만족할려한다.
    여기 있는 자체가 행복하고, 그를 보는것 자체가 기쁘기 때문에.




    852년 10월 25일 ‘리이넨 다이 에실레스’
















    나는 두명이다.
    진짜 나는 한명이지만, 또 하나의 내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나는 또 하나의 나에게 집착한다. 내가 아프면 또하나의 나도 아픔을 느끼고, 또 하나의
    내가 다치면 나도 그 다친곳의 부위의 통증을 정확하게 똑같이 느낀다.

    어디하나 다를데 없다.
    단지 나는 남자이고, 또 하나의 나는 여자인것 외엔 다른게 없다.
    내 이름은 카이고, 또 하나의 나의 이름은 레이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나는 그녀를 좋아한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소중히 여긴다.

    하지만 그녀는 무지 겁쟁이이다. 내가 죽는게 싫다고 했다.
    적어도 자신도 지킬수 있게 기회를 달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또 그것이 싫다.
    그 기회를 주는것이 자칫 잘못하면 내가 그녀를 죽게 내버려 두는 결과라고 생각이 들어서.

    나는 그녀보다 1분 먼저 세상에 나왔고, 그녀는 나보다 1분 늦게 세상에 나왔다.
    그뒤로 나와 그녀는 늘 함께했다. 입는 옷도 똑같았고 성격도 똑같았고 좋아하는거랑 싫어하는것도
    똑같았다. 세상엔 나와 그녀 단둘뿐이었다.

    그래서 행복했다.
    나에겐 그녀밖에 없고, 그녀에겐 나밖에 없었기에.
    하지만 그녀는 커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이다.

    그녀는 날개가 생겼고, 나는 아직 날개가 생기지 않았다.
    그녀의 흰 날개는 아름답고 컸지만, 나의 날개는 아직 아름답지도 않고 크지도 않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수 있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수 없다.

    그녀는 자꾸만 우리둘의 세계에서 나가길 원했고, 나는 그녀가 자꾸 우리둘의 세계에서 나가는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커버렸다. 계속 옛날에 머무를수는 없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무언
    가를 추구하고 추구하는 생명이기에 한곳에 계속 머무를수 없다.

    시대는 바뀌고 시간은 자꾸 흐르듯이.
    그녀도 변하고 그녀의 시간도 자꾸 흐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대로이다. 아직 그 시간에 머물렀고, 아직 변하지 않았다.

    변하는것이 두렵고 흘러가는것이 무섭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붙잡아 두고 싶었지만, 그녀는 달라졌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조금 섭섭함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의 오빠인 이상 나는 그녀가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수 있
    도록 놓아주어야만 한다. 그녀는 변했고, 그녀의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기에.

    아직 변하지 않는것도 나고, 흘러가지 않는것도 나이기에
    괜히 그녀를 내 시간에 붙잡아둘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아직도 갈길을 잡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겁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녀는 강하다.
    내가 생각했던 예상의외로 강하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놓아준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의 시간이 흘러갈수 있도록 놓아준다.

    그녀의 날개는 활짝 펴지고, 그녀의 발은 내 옆을 떠나 부웅 뜰것이다.
    나는 멀어져가는 그녀를 보며 눈물을 훔칠것이고, 아직도 그자리에 그시간에 남아있는 나를 욕하고
    원망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후회만 할것이다.

    나는 아직도 어리기에.
    나는 아직도 어리석기에.


    그래서 나는 그녀를 놓아주고 나는 그자리에 남는다.
    그녀는 두번다시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고, 나는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볼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녀를 놓아준다.

    852년 11월 1일 ‘카이 샤인즈’



    내가 아는 그 사람은 겁쟁이다.
    나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주려하지만, 변화하려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둘의 그 세계에 남아있길
    원한다. 나 역시 한때 그에게만 의지했다. 그의 손을 꼭 붙든체 놓질 않았다.
    무서웠었다.

    그의 곁을 떠나 다른 곳을 가는게 무섭고 두려웠었다.
    새로운 세계가 어떤곳인지 몰랐었기에, 나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걸 망설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그의 곁에 계속 있을수는 없었다. 언젠간 떠날날이 올줄 알았다.

    그렇기에 나는 대담하게 나의 흰 날개를 활짝 펴 그의 곁을 떠나 다른 세계로 날아가려 했었다.
    그런 나의 손을 잡아버린것은 그였다. 그의 두 눈동자엔 아직도 예전의 나처럼 두려움과 겁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날아오르려는 나의 손을 잡은 그를 보며 망설였었다.

    하지만 그것은 옳은일이 아니었다.
    그를 위해서라도, 나를 위해서라도 나는 높이 날아가야만 했다.
    그의 곁을 떠나야만 했었다.

    그래야 그의 시간도 흐를테고, 그도 변화할테니까.
    나처럼 생각이 깊어질테니까,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괜히 그에게 투정도 부렸었다.
    그는 용기가 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필사적으로 용기가 생기지만, 그 외에는 아직도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 담겨있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나는 변화했고, 나의 시간도 흘러갔다.
    아직도 변화하는 중이고, 아직도 흘러가는 중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이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하나도 흐르지 않았다.
    그저 그의 곁에서 변화하는건 나뿐이였고, 시간이 흘러가는것도 나뿐이였다.

    어떻게서든 그를 같이 데리고 변화하고 싶었고 같이 시간의 흐름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걸 거부했다. 나의 생각과는 달리 나의 마음을 하나도 알아주지 못한체 거부했다.
    결국엔 다른 세계를 향해서 날아오르는건 나였다.

    그런 나를 놓치려하지 않았던 그였다.
    하지만 그는 날아가려는 나의 손을 놓아주었다.
    거기서 깨달았다. 그도 이제 변화하려하는구나, 그의 시간도 이제 흘러가려는 구나 라고.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도 두려움과 무서움에 벌벌 떨며 절대 내 손을 놓지 않으려 했었기에.



    아직 그는 그가 변화하는것도 모르고, 그의 시간도 흐르려는걸 모르는듯이 보이지만 언젠간 깨달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찾아간 다른 세계로 그도 날아올거라 생각한다.
    나와 같이 아름답고 커다랗고 새하얀 날개를 가진체 훨훨 날아 다시 내 곁으로 올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언젠간 그가 나를 찾아올거라고 믿는다.







    852년 11월 1일 ‘레이 샤인즈’














    나는 과거 한명의 주군을 모셨고, 지금 현재 나는 한명의 어린주군을 모시고 있다.
    나는 두명의 주군을 모시게 된다는게 영광이라 생각한다. 과거 한명의 주군은 나에게 많은것을 가르
    쳐주었다. 나에게 감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현재 어린 주군은 가끔 나를 기분좋게 만들어준다.
    나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가 하면, 또 바보같은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주군을 모시는건 후회스럽지 않다.

    처음엔 후회했었다.
    하지만 과거에 주군은 나에게 지금의 어린 주군을 맡기었다. 그래서 나는 의무감에 어린주군을 현재
    모신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과거 나의 첫번째 주군은 나에게 선물이나 준게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나에게 어린 주군은 소중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를 보고 있으면 행복하다.
    다시금 웃을수 있다. 그를 놀리면, 그의 반응이 너무 재미있다.
    아마도 이게 사랑하고 있단 걸지도 모른다.

    과거의 주군에겐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단 애매한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나는 갈수록 변화하고 변화하기에, 이번에는 그런 애매모호한 말 대신에 확실한 말을 해줄
    생각이다. 나는 정말로 너를 만나 기뻤고,행복했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나는 그를 지킨다.
    무슨일이 있어도 나는 지금 모시고 있는 어린주군의 목숨을 지킨다.
    나의 목숨이 100개가 있다면, 그 100개를 다 바쳐서라도 나는 어린 주군을 지킬것이다.

    어린 주군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를 지켜줄 사람은 많다. 모두가, 아르넨이 어린주군을 지켜줄것이다.
    만일 내가 그를 지키다 눈을 감는 일이 생긴다면, 적어도 어린주군을 해하려한 자를 내가 다 죽이고
    난뒤 눈을 감았으면 한다.

    그렇게 된다면 어린 주군의 목숨을 진짜로 지킬수 있으니까.


    나는 과거의 주군을 지키지 못했다.
    내 자신이 강하다고 스스로 오만했었다. 그래서 과거의 주군을 지키지 못했다.
    나는 그를 살리려 했지만, 오히려 그가 나를 살렸다. 그래서 다시 새 삶을 주었다.
    두번다시 나는 그런 과오를 겪지 않는다.

    강해지고 강해져서 현재의 어린 주군을 지킬것이다.
    소원이 하나 있다면, 그의 곁에 쭈욱 있었으면 좋겠단 거지만 너무 무리한 소원이다.
    절대로 이루어질수 없는 소원.

    그렇기에 나는 늘 그의 얼굴을 보는걸로 만족한다.
    그가 잠들어 있는 침실에서 나는 잠도 자지 않은체 그를 지킨다.
    아무때나 전쟁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기에, 나는 밤낮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잠도 자지
    않은체 그를 지킨다.

    그리고 깊은 새벽 밤하늘에 뜬 샛별들을 바라보다, 문득 어린 주군의 잠든 얼굴을 바라본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지켜주는데 자기 혼자 편안히 자는 주군을 보면 가끔 떄려주고 싶은 생각도 들
    지만, 그래도 귀엽고 사랑스럽다란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서 내가 원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실상 몰랐다.
    아직도 과거의 주군이 현재의 어린 주군에게 무엇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그에게 만족하고 있다.
    나는 이미 그를 지켜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의무감에서 지켜주려는게 아니다.
    실질적인 내 진짜 마음이다.

    조금 어린 주군에게 안타까운 기분이 드는것은, 내가 많이 잘해주지 못했단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많은걸 받았다. 많은걸 배웠다. 어린주군 뿐 만이 아닌, 과거의 주군에게도.
    나는 두명의 주군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과거에 과거의 주군을 지키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기에 어린 주군을 지킬것이다.
    그가 나에게 많이 베풀어주었으니, 나는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그의 목숨을 지킬것이다.
    이 목숨따윈 소중하지 않다.

    나의 목숨보단 그의 목숨이 더 소중하다.





    나 하르네워 아렌스 카넨시아는 두명의 주군을 모신것을 절대 영광으로 생각하겠다.




    852년 11월 15일 ‘하르네워 아렌스 카넨시아’






    나에게 소중한 친구가 한명 있다. 아니,있었다 라고 말하는게 옳을지도 모른다.
    과거 나는 그와 소중함을 간직했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나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나날들.
    하지만 이미 그와 함께 했던 그 아름다운 나날들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는 마족이었고 나는 인간이었다.
    그는 아르넨을 빼앗을 적이었고, 나는 아르넨을 지킬 회장이었다.
    그렇기에 나와 그는 갈라져야만 했다.

    아직도 나는 그를 사랑하지만 어쩔수 없는 운명때문에 나는 그를 죽여야 한다.
    하지만 내가 그를 죽이는건 아니다. 내 곁을 늘 보좌해주는 카넨이란 사람이 그를 대신 죽여줄것이
    다. 내가 무서워하기에. 내가 소중한 사람을 죽이는걸 망설이는걸 잘 알기에.

    그 사람은 나를 위해 뭐든지 해준다.
    그 사람은 내가 원하는 모든것을 해준다.
    이미 그 사람에게 나는 소중한 사람이 되었으므로.

    나에게 역시 그 사람은 소중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잃는걸 두려워한다. 그는 죽는다. 어차피 한번은 넘어야할 관문이자 고비.
    지금은 담담하지만 받아들일수 없는 현실인건 사실이다.

    나를 지키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그것은 뻔한 사실이다. 마족들은 아르넨을 가지기 위해 회장을 찾아낼것이다.
    나는 아르넨을 지키기 위해 절대적으로 내 신변을 숨겨야 할것이다.

    만일 들켜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 전에 그 사람은 나를 지킬것이다.
    그 사람은 평소엔 차갑고 무뚝뚝해도 속으로는 나를 많이 생각해주고 사랑해준다.
    아직 그의 입에서 사랑한단 소리는 들은적이 없지만 그래도 대충 짐작할수 있다.

    내가 그를 사랑하기에.
    그리고 과거에 나는 사랑을 한적이 있기에.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기쁘다. 충분히 행복하다.
    나는 한번의 사랑을 했었고, 한번의 배신을 당해, 한번의 슬픔을 겪었었다.
    그 슬픔을 치료해준 사람은 그 사람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나도 일어서려고 노력했었다.
    그런 내 곁을 지켜준 사람은 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정말로 친절한 사람이다.
    솔직하지 못한 점이 흠이지만, 그런점도 귀엽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나는 그를 너무 좋아한다. 무지 사랑한다.

    그렇기에 나는 정말로 가슴이 찢어질듯이 아프다.
    그는 어떤 모습으로 죽을까. 그는 고통스럽지 않게 죽을수 있을까.
    우리는 슬픈 모습으로 헤어지지 않을수 있을까.

    미래를 볼수 있는 자는 키엔이란 아이다.
    그에게 가서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 아이도 힘들기 때문에 물어볼수 없다.
    그렇다고 카넨에게서 죽지말란 말을 할수 있는 노릇도 아니다.

    분명 내가 죽지 말라고 말한다면 그는 나에게 단호하게 말할것이다.
    정에 휩쓸리지 말라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도 조금은 가슴이 아려올것이다.
    그도 슬프기 때문에.

    왜 우리는 이런 운명을 타고 나야만 했던 걸까.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보통인 나날을 보낼수 없는걸까. 평범한 하루를 살아갈수 없는걸까.
    우리는 무슨 운명을 타고나서 이렇게 힘들고 아파야 하는 걸까.

    도대체 우리는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길래 헤어짐의 연속만 보아야 하는 걸까.


    무섭다.
    그가 내 곁에 사라진다는게 두렵다.
    나는 이미 그에게 길들여졌는데....그가 죽어버린다면, 나는 무지무지 슬플것이다.
    의욕상실해 아르넨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할수 없기에, 모두의 죽음을 헛되이 할수 없기에 아르넨을 지켜야만
    한다. 하지만 나 스스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때가면 모든 방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계속 그에게 기대기만 하기에.


    그렇지만 나는 시리오스와의 이별의 아픔을 이겨낸것처럼,
    카넨과의 이별의 아픔을 이겨낼수 있을것이다. 시리오스보다 시간이 좀더 많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왜냐하면 카넨, 그 사람이 나에게 준 추억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와 한 추억을 간직할것이다.
    그래서 그가 가끔 보고 싶어지면 그와 했던 추억을 가끔 꺼내볼것이다.
    그것이 나의 행복이자, 그를 잊기위한 나의 안일함이기에.



    나의 이기심이다.




    852년 11월 19일 ‘시온 라이즈’









    ---------------------------------------------------------------------------------------------------





    나머지 여덟명은
    다음편에.

댓글 4

  • 이엔

    2007.09.01 21:25

    다들 일기도 쓰고 참 새나라의 어린이구려 .
    시온은 일기 쓸때는 진지하다-_-
    .......이거 일기 맞나 ?
  • [레벨:8]id: 가리*

    2007.09.01 21:49

    ↑일기는 무슨 일기야-_- 그냥 생각하는걸 적은거지 멍청아 ㄱ-
    시온부분에서 진짜 진지해서 막 멋있다고 하고 있는데 '무지무지' 에서 깻다-_-
    아무튼 이루부터 다 멋있어 이번편 *-_-*
    근데 한편마다 한개씩 올라갔으면 더 좋았을걸 ㄱ-
  • [레벨:7]id: 크리스

    2007.09.02 00:44

    오, 이거 모두 일기인거야?
    근데 다들 귀찮아서 안 쓸것 같은데....<
    다음편도 다른사람들 생각이구나.
    이제 슬슬 결전의 날이 오는 것 같은데....
    모두 다 살아남으시길<
  • 세츠군z

    2007.09.02 09:02

    ↑제목봐제목을일기장맞아......
    ↑닥쳐가리한편씩올리면분량이더많아져........
    ↑아직멀었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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