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시간의 방 / 1-6
  • [레벨:24]id: Kyo™
    조회 수: 512, 2008-02-06 05:53:43(2007-03-21)
  • 죽음, 그리고 새로운 만남






    다음날, 밝게 내리쬐는 햇살에 눈을 뜬 카즈안은 옆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는 아일린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은 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조심스런 이 아이를, 다정하게 안아줘야할 이 아이를,
    거칠게 몰아 붙였던, 온 힘을 다해 상대해 버렸다는 점이 너무나 한심스러워진 카즈안이었다.
    옷을 다 입은 카즈안은 침대 끝에 걸터 앉아,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라즈안...
    직접 죽인 것은 아니였지만, 분명 그 원인은 카즈안, 자신에게 있었다.
    그리고 이 아이를 찾았을 때는 정말로 놀랬다.
    라즈안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닮은 이 아이를 동생으로 입양하고 싶었던 것은 진심을 다한 행동이었다.
    다시는 깨트리지 않으리라, 다시는 손에서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것도 진심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카즈안 본인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 흐윽... "
    " 응? 깨었나? "

    흐느끼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무서운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 아일린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카즈안은 그런 아일린에게 손을 뻗으려다 그만 두고 벌떡 일어나 방을 나갔다.
    그가 지은 미소는 씁쓸했다.





    아일린이 눈을 떴을 때는 벌써 점심 때가 다 되어 있었다.
    식사를 가져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아직 따뜻했다.
    배는 고팠지만, 먹기는 싫었다.
    아일린은 침대 끝에 개켜져 있던 옷가지를 챙겨입고, 방을 빠져 나왔다.
    시녀들은 여전히 분주했고, 그들은 바쁜 와중에도 아일린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 안녕하세요, 아일린 도련님. "
    " 날이 참 맑죠? "

    이래저래 머릿속이 복잡한 아일린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넓은 집안을 아무 생각없이 걸어다녔다.
    멍- 하니 넋놓고 걷던 중, 푹신한 무언가와 부딫쳐 버린 아일린.
    그제야 정신이 들었고, 사과를 하기 위해 고개를 드니 그 곳에는 이즈가 손을 내밀고 서 있었다.

    " 앞은 보고 다니셔야죠, 아일린 도련님. "
    " 아, 네... "

    아일린은 이즈의 손을 잡고 일어나서 바닥에 떨어진 이불보들을 주어 이즈에게 건네 주었다.

    " 왜 이렇게 안쪽까지 들어오셨어요? "
    " 안쪽... 아, 정말이네... "
    " 카즈안 도련님 찾으세요? "
    " 아? 아, 네... "

    아일린이 대강 얼버무리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이즈는 아일린의 본심을 몰랐느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 건지 웃으면서 대답해주었다.

    " 카즈안 도련님은 일때문에 나가셨고, 주인님과 마님께서도 일이 있으셔서 저녁 늦게나 오신다셨습니다. "
    " 그럼 집에 나만... 있나요? "
    " 네. "
    " ...그럼 나도 밖에 나갔다 올게요... "

    아일린이 주저주저하다가 조그마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즈는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아일린의 팔을 잡아 끌었다.

    " 안됩니다, 몸이 안 좋으실 땐 방에서 쉬셔야죠. "
    " 에...? 몸이 안 좋다니... "
    " 카즈안 도련님께서 당부하시고 나가셨습니다. "

    결국 아일린은 이즈에게 끌려가 방에 갇히는 꼴이 되어버렸다.
    물론 정말로 갇힌 건 아니였지만, 밖에 나갈 수가 없다는 건 좀 억지였다. 아니, 이게 갇힌건가?
    더군다나 아프지도 않은데 말이다.

    " 이걸 뭐... 어쩌라는 거야... "

    그 순간, 세츠가 밖으로 튀어 나왔고, 아일린은 영문도 모른 체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 그거야 당연히 창문타면 되는 거지! "
    - 자, 잠깐만~!

    아일린이 극구 말렸지만, 세츠는 그대로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정말 다행인 것은 아일린의 방이 1층이었다는 점과, 밖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 그럼 즐겁게 산책 다녀올까~! "
    - 세, 세츠~! 제발~!
    " 응? 바꿔 달라고? "
    - 그런 게 아니라~
    " 들어갈 땐 말해~ 또 넘어가 줄게~ "

    세츠는 다시 속으로 들어가버렸고, 아일린은 이왕 이렇게 나온 김에 오랜만에 바깥 구경을 하기로 했다.
    집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간신히 저택 밖으로 나온 아일린은 수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서 어느새 시장에 도착했다.

    " 이렇게 돌아다닌 게 얼마만이야~ "

    아일린은 평소보다 훨씬 들떠 있었고, 얼굴도 훨씬 생기 넘쳤다.
    여기 저기 둘러보던 아일린은 악세사리가 펼쳐진 진열대 앞에 섰다.
    굉장히 다양한 악세사리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아일린의 눈길을 끈 것은 나비 모양의 목걸이였다.
    카즈안의 목에 새겨진 나비 문양처럼 푸른색을 띄고 있었다.

    " 저기, 이거 얼마에요? "
    " 애인 주려고, 아가씨? "
    " 네? 아가씨요? "
    " 어? 여자 아니였나? "
    " 아, 아닌데요. "

    아일린이 당황하여 손사레를 쳤고, 상점 아저씨도 당황하셨는데 땀을 삐질, 흘리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였다.

    " 그래, 이거 사려고? "
    " 네. "
    " 23 길리온만 내. "
    " 에? 그렇게 싸요? "
    " 내가 잘못했으니까, 사과하는 셈치고 싸게 줄게. "
    " 감사합니다~ "

    아일린은 돈을 꺼내어 상점 아저씨에게 건내준 뒤,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푸른 나비 장식은 햇빛을 받아 반짝 반짝 빛이 났다.

    " 헤에, 나중에 카즈안씨 주면 되겠다. "
    - 도대체 그 녀석이 뭐가 좋다고 선물까지 하냐?
    " 적어도 이렇게 편하게 살게 해줬잖아. "

    아일린은 씁쓰름한 웃음을 잠깐 지었다가, 다시 활기찬 평소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나와서 그런 지 아일린은 시간 가는 지도 모르고 열심히 시장 내를 돌아다녔고,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에야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 벌써 이렇게 됬네! 얼른 집에 가야겠다! "

    아일린은 붉게 물든 하늘을 보고는 집을 향해 열심히 뛰어갔다.
    그러다 마주 친 이상한 사람.
    검은색의 긴 천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린 사람이었다.

    " 이봐, 거기. "
    " 네? "

    아일린은 이상한 사람의 부름에 멈칫하고, 뒤돌아 봤다.
    이상한 사람은 아일린의 손목을 잡아 자기 쪽으로 확- 하고 잡아 당겼다.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아일린은 당연히 이상한 사람 쪽으로 쓰러졌고, 이상한 사람은 아일린을 잡아주는 듯 하면서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 큭, 더러운 아이로군. "
    " ...! "
    " 아무리 몰랐어도 더러운 건 더러운 거야. "

    그 순간, 아일린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오싹함이 자꾸만 아일린을 휘감아 올라왔다.
    그런데다 검은 천 사이로 의미를 알 수 없는 강렬한 눈빛이 자꾸만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쯤 되니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더럽게 여기는 것만 같아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 오늘은 이쯤 해두지. 자, 이거 받아. "

    아일린이 가늘게 떨면서 건내 받은 것은 흰색의 약병이었다.
    아일린이 이게 뭐냐는 얼굴로 이상한 사람을 올려다 보자, 이상한 사람은 비웃는 듯한 말투로 수면제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 수면... 제...? "
    " 적게 쓰면 수면제지, 그렇지만 한번에 많이 먹으면 죽을 수도 있어. 잠자는 것처럼, 아주 조용히-. "
    " 이걸 왜... "
    " 넌, 그런 더러운 몸으로, 평생을 편히 살 생각이었어? "

    또 다시 엄습해 오는 두려움과, 싸늘함, 그리고 괴로움.
    아일린의 얼굴이 눈에 띄게 파랗게 질리고, 식은 땀도 흘리고 있었다.
    세츠가 무어라 말하는 것 같았지만, 아일린은 세츠의 말이 들리지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이 사람이 너무나 무섭다는 것과,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지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이었다.

    " 잘 생각해보라고, 아키루안 가문의 새로운 도련님. "

    이상한 사람은 아일린 손에 들려 있던 목걸이를 낚아채서는 아일린이 가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아일린은 머릿속이 복잡하여, 목걸이가 빼앗긴 것에 대해서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 아일린! 아일린!!
    " 세츠... 미안한테... 집에 좀... "

    아일린은 또 다시 숨어 버렸다.
    겉으로 나온 세츠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이번에도 창문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가서는 일찌감치 침대에 누웠다.
    얼마 후, 카즈안이 돌아왔지만 세츠는 자는 척하며 카즈안을 돌려보냈다.



    새벽 3시, 모두가 잠이 든 아주 깊은 밤.
    아일린은 이 새벽에 깨어나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손에는 흰색의 약병이 들려 있었다.

    " 더러운... 아무 것도 모르는... "

    아일린의 표정은 마치 목석과 같이 아무 표정도 없었다.
    그런데도 꾸만 측은한 마음이 드는 건 해설만의 생각일까.
    아일린은 한참 동안 약병을 만지작 거리다가 뚜껑을 열어 이불 위에 약을 우루루- 하고 쏟아 냈다.
    거의 60알 정도 되 보이는 하얀 약을 보더니 차근차근히 골라내는 아일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 아일린 도련님, 아침... 아일린 도련님? "

    오늘도 여전히 태양은 하늘 위로 떠올랐지만,
    작은 새 한 마리는 눈을 뜨지 않는다.
    잠을 더 자고 싶은 것일까,
    태양이 떠올랐음을 모르는 것일까,
    작은 새 한 마리는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 으음... 불편해... "
    " 내가 더 힘들다구~! "
    " 풋-. 기운내라구, 일루젼! "


    ─‥─‥─‥─‥─‥─‥─‥─‥─‥─‥─‥─‥─


    대략 귀차니즘?

    그것보다...
    미안해요!
    수면제 급성 중독이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몰라서 그냥 어물쩡 넘어가 버렸어요!;;
    수면제를 단번에 많이 먹으면 '수면제 급성 중독'에 걸리는데,
    무슨 증상을 보이는 지, 찾아도 안 나와서...
    그냥 대강 넘어가 버렸... (도주)

    어쨌든,
    드디어 끝이 보인다! (아자)

댓글 4

  • 이루[痍淚]군

    2007.03.21 22:55

    ㄱ-저아저씨는뭐야(.......)
    결국은죽어버렸네,
    카즈안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건가(......?)
  • 이엔

    2007.03.21 23:19

    엑, 마지막에 갑자기 활기차져버렸다;..?
    아일린 죽은거야?! <
  • [레벨:3]id: oO天留魂Oo

    2007.03.21 23:40

    .....아일린 자살한거야ㅇㅁㅇ?!
    ......카즈안이 뭐라고 했는지 가르쳐줄거지(번쩍)!!!
    그리고 곧 있으면 검은소녀(...)도 나오겠네(씨익)....
    잘보구 갈게>ㅅ<//~~
  • [레벨:2]Stella

    2007.03.24 16:27

    정말 기대 만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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